'北원전' 때도 똑같았다..靑브리핑으로 본 '文격노'의 공식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 원전 지원’ 문건과 관련한 야당의 총공세가 이어지자 청와대에서는 돌연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激怒)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수많은 마타도어를 받아봤지만, 이건 용납하기 어렵다”는 구체적 비공개 발언까지 청와대 관계자들을 통해 여과 없이 공개됐다.
이는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 충격적 이적행위”라고 주장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한 말이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구시대의 유물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공개 언급했다. 직후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이 연이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 위원장을 비판하자 ‘대통령의 격노’는 공식화됐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의 감정 상태는 극도로 제한적으로만 알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적 중대사를 최종 결정해야 하는 책무와 감정적 대응은 서로 상극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특정 사안과 타이밍에는 의도적으로 대통령의 감정 상태를 드러냈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적폐청산 등 정권의 기반이 되는 핵심 가치들이 도전받았을 때 문 대통령은 분노했다.
2018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적폐 청산 수사는 보수를 궤멸시키려는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에서는 “별도의 입장표명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오전 문 대통령은 박수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것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는 메시지를 공개했다.
적폐청산은 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출범한 이 정부의 정당성과 직결된 가치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특히 친구이자 동지인 노 전 대통령의 서거까지 끌어들여 정부의 정당성을 폄훼하려는 시도는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를 넘을 때다. 청와대가 지지층 결집 효과를 의도했든 안했든 대통령의 공개적 분노는 결국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2019년 2월에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과 관련 “분노를 느낀다. 저도 맞서 싸우겠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광주지역 원로들을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서다. 5ㆍ18은 문 대통령 스스로 “헌법 전문에 넣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대통령에겐 중요한 가치다. 특히 현 정부의 주된 지지 기반인 호남 정서에 미치는 파괴력이 큰 문제란 점에서 문 대통령의 '분노'가 더욱 주목을 끌었다.
대북정책이나 방역 등 자신이 애착을 갖는 정책에 대한 도전도 문 대통령은 참지 못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코로나 2차 펜데믹 상황에서 일부 보수단체들이 광화문 집회를 강행하자 “국가방역 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는 공개 발언을 했다.
이번 북한 원전 지원 논란도 마찬가지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집권 말기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려고 하는데, 야당의 주장은 대북정책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대통령의 '분노'는 정치권에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2019년 9월 고민정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개별기록관이 추진된다는 보도가 나온 뒤 “문 대통령이 관련 뉴스를 보며 ‘당혹스럽다’고 하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고 브리핑을 했다.
전날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172억원을 들여 문 대통령의 개별 기록관을 짓는다”고 발표하자 야당의 비난이 폭주한 상황이었다. 결국 개별 기록관 설립 계획은 백지화됐고, 논란도 잦아들었다.
당시는 이른바 ‘조국 사태’로 코너에 몰린 시기였다. 특히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당시 청와대가 대변인 실명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불같은 화’를 공개하자 야당 일각에선 “지지율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한 의도된 격노”로 이를 평가절하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감정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 역시 고도의 정치행위”라며 “지지율이 높았을 경우에는 강력한 지지층 결집 효과를 낼 수 있고, 지지율이 낮을 때는 중도층 확장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배 소장은 다만 “집권 초기와 달리 이번 원전 문건 관련 대응은 중요한 선거를 앞둔 문 대통령의 절박함이 보다 절실하게 반영된 결정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선거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격노'를 부각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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