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5년차 文, 대통령의 '숙명' 레임덕 첫 예외될까
뇌관은 역시 검찰.. 역대 레임덕, 권력형 비리 수사로 시작
“제가 원조 친문이다.”(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는 데 선봉에 설 것.”(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친문재인(친문) 마케팅에 나선 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의 말이다. 집권 5년 차, 다음 대선이 1년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여당 내 문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180석에 육박하는 집권여당, 40%대 안팎의 지지율(리얼미터 기준) 등 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안정적인 집권 5년 차를 시작했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의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단임제 대통령의 숙명이라는 레임덕, 문 대통령은 첫 번째 예외가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사례가 될까.
문 대통령은 지난해 ‘추미애·윤석열’ 정국 터널을 빠져나온 뒤 지지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역대 대통령의 5년 차 지지율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차기 대선이 내년 3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가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데 지금까지는 역대급 지지율”이라며 “촛불집회에서 시작한 정부라는 연대감이 지지층을 공고하게 묶고 있다”고 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사면 등 지지층이 반발하는 현안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또 중도층의 이탈을 가져왔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신년사에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174석 여당은 의회에서 문 대통령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인 친문 당원들은 여당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레임덕의 신호로 통상 ①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는 데드크로스(Dead Cross) ②여당보다 높은 야당 지지율 ③대통령보다 높은 여당 지지율을 꼽는다.
문 대통령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긴 했다. 하지만 여당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을 추월하거나 야당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을 뛰어넘었다는 조사는 드물다.
또 다른 레임덕 현상은 차기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차별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아직 이런 신호가 감지되지 않는다.
‘100년 만의 세계사적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문 대통령님께서 그 자리에 계신 게 얼마나 다행인가.’ 비문재인(비문) 차기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18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친문 주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올해 초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띄웠으나 문 대통령이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하자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제3후보인 정세균 국무총리는 문 대통령과의 주례 회동에 대해 “대통령이 경청을 잘해주고 건강한 건의에 수용성 높은 입장을 보여줘 항상 감사하다”고 했다.
야권 후보로 분류되는 윤석열 검찰총장조차 문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 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에 대해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규정했다. 공교롭게도 이후 윤 총장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윤 총장을 ‘야권 후보’로 생각했던 지지층이 빠져나갔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야 할 것 없이 유력 후보의 경우엔 모두 문 대통령 영향 아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레임덕은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과 같다는 반론도 많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레임덕 없는 대통령은 없다. 레임덕이 약하냐 강하냐의 차이일 뿐”이라며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레임덕’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미 조금씩 시작됐다고 본다”고 했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지지자와 윤 총장 임기를 보장하려는 문 대통령의 이견에서 보듯 이미 지지층과 대통령 사이에 ‘균열’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레임덕이 없다면 전 세계 최초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최초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미국 대통령 지지율보다 우리나라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고 폭이 컸다는 점”이라고 했다. 지금 지지율을 임기 끝까지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뇌관은 검찰에 있다. 역대 대통령 레임덕은 집권 말기 친인척·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로 시작됐다.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지지율 추락→여당의 반란→국정 동력 상실이 레임덕의 기승전결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정권도 이 법칙을 피해 가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로 무너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집권 5년 차인 2012년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이 불거지며 일가가 특검 수사를 받았다.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도 검찰 수사를 피해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윤 총장은 역대 어느 검찰총장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원칙적 수사 기조를 유지해 왔다. 2019년 7월 취임 이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등 여권과 끝없이 충돌해 왔다. 검찰이 문재인정부의 비리를 발견한다면 어떤 사건보다 독하게 수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친인척 비리는 없었다. 다만 청와대까지 불이 옮겨붙을 수 있는 수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일상 회복, 부동산 등 민생 정책에서도 손에 잡힐 성과가 필요하다. 신율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정부가 11월까지 집단면역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코로나가 계속 유행하면 임기 말 지지율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했다.
결국 문재인정부가 자랑해온 방역과 경제에서 차기 대통령이 기꺼이 이어받을 만한 ‘자산’을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 배철호 위원은 “레임덕을 최소화하는 것은 결국 후임 정권과의 호흡”이라며 “후임 정권이 전임 정권의 업적을 충분히 인정하고 계승하면 자연스레 바통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된다”고 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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