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이 죽었다.. TV에선 사망 장면 생중계 [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림수진 2021. 2. 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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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무너진 체계, 코로나 빈부격차

[림수진 기자]

 
 당일 24시간 동안 1803명 사망, 2만2339명 확진을 알리면서 방송이 시작된다. 지난 12월 한 달 동안 1만9867명이 사망하였고, 1월 21일 1월 중 사망자가 전 달의 사망자 수치를 뛰어 넘어 2만367명에 이른 날이다.
ⓒ IMAGEN 화면캡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뉴스는 어떤 소식들로 채워질까?

1년 가까이 방송사 메인 뉴스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코로나바이러스 소식 일색이다. 대략 30여 분 동안 진행되는 뉴스 포맷은 이제 눈을 감고도 훤히 꿰뚫을 정도다.

첫 뉴스는 어김없이 그날 하루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가장 놀랄 만한' 소식이고, 그 다음엔 지난 24시간 동안 발생한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가 그래프와 함께 설명된다. 2020년 3월 18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곧 세상이 망할 것 같이 호들갑스러웠던 앵커의 목소리는 요즘 들어 하루 20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오는 동안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 다음엔 세계 TOP3 혹은 TOP4 국가들의 비교가 이어진다. 물론, 확진자와 사망자 기준이다. 언제나 부동의 1위는 미국, 그리고 2위는 브라질이다. 멕시코는 3위에 머물다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인도에 잠시 3위 자리를 내준 채 4위에 머무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3위로 올라섰다. 미국, 브라질, 인도 모두 멕시코보다 인구수가 많은 나라다. 1억 3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멕시코가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열 배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들과 사망자 순위를 다툰다.

코로나 확진자 사망 순간 그대로 방송

어김없이 이어지는 그 다음 순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죽어가는 환자들이다. 멕시코 뉴스에서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사망하는 그 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송에 노출되는 죽음 대부분은 병원 밖에서 이루어진다. 집 혹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길 어디쯤이다. 이미 16만 명을 넘어선 사망자 중 53%는 죽음의 순간까지 병원에 들지 못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향해 인터뷰를 청하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하나의 방편인 듯하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시민들이 그런 장면에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여과 없이 지켜보는 타인의 죽음 앞에 무덤덤해진 듯하다.

이어 경제와 스포츠 이슈가 다뤄지지만, 이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식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 관련 소식은 1년 내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마이너스 성장 일편이고 스포츠 또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취소 소식이 대부분이다.

뉴스가 호들갑스러워질 때는 당일 하루 사망자 숫자가 역사적 기록을 깬 날 뿐이다. 그마저 며칠 후면 평범의 범주에 드는 기록이 된다. 그렇게 매일의 뉴스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작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끝난다. 태곳적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전의 세상이 어떠하였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 시절, 시시콜콜했을 것 같은 뉴스가 그리워진다.

늘 그날이 그날 같이 오직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식만이 백색소음처럼 깔리는 뉴스에 최근 다시 한 번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난주 멕시코 정치, 경제, 종교 수장들이 일시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노르베르토 리베라 추기경은 감염 이후 한때 위중하여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2월 4일 현재 인공호흡기는 뗀 상태다. 교황 후보로 거론될 만큼 가톨릭계의 유력 인사다.
ⓒ MILENIO 화면캡처
 
정치에서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대통령이었고, 경제에서는 멕시코 최고 부호인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이었고, 종교에서는 노르베르토 리베라(Norberto Rivera) 추기경이었다. 리베라 추기경은 상태가 위중하여 인공호흡기를 단 채 중환자실에 입원하였고 AMLO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그리고 카를로스 슬림은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 명의 확진 소식이 한 주 사이에 전해졌다.
 
 지난 1월 29일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치료 중이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항간에 떠도는 건강악화설을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궁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이는 상황이지만, 업무를 보고 있음을 피력했다.
ⓒ IMAGEN 화면캡처
 
대통령·재벌1위·추기경 감염에 놀란 이유

대통령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소식은 그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던 대통령 행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항간에는 대통령이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서 마스크 대신 부적을 더 신뢰했다는 소문까지 돈다. 대통령이 감염되었지만, 그가 어디에서 감염되었는지 이후 어떤 동선으로 이동하였는지에 대한 발표는 전혀 없었다. 보안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이다. 멕시코에서 단 한 번도 동선 공개 혹은 동선 추적에 대한 뉴스를 들은 바 없고, 밀접 접촉자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동선을 확보하거나 밀접 접촉자를 가려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여력 또한 없다.

그간 활발한 지방 순회를 이어가면서 단 한 번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사실과 유난히 시민들과의 물리적 접촉을 강조하던 대통령이었기에 언제 걸려도 이상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수차례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확진 판정을 받는 와중에 아슬아슬하게 감염을 피해가는 것 같았으나 이번엔 피치 못한 셈이다. 확진 판정을 받던 당일 지방을 순회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일반 여객기에 탑승하여 수도로 돌아왔지만, 그에 대한 우려는 뉴스 축에 들지 못하였다.
 
 카를로스 슬림. 2010년대 초반 빌 게이츠를 앞질러 세계 최대 부호로 등극했으나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세계 부호 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호 순위 4위를 점했으나 2020년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멕시코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 '카르소 그룹'을 통해 의료, 미디어, 에너지, 부동산, 소매업과 같은 산업 분야에 포진하고 있다. 1940년 생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고위험군에 속하지만, 무사히 회복했다. 부친이 레바논계 이민자이며,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출생하였다.
ⓒ 위키커먼스
 
이와 달리 카를로스 슬림의 감염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적이 놀라워하는 눈치다. 무엇보다도 큰 놀라움은 '그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과연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구나'라는 것이었다. 카를로스 슬림은 한때 세계 재력 1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10위권 안팎에 머물고 있지만, 그가 가진 부는 일반 서민들의 상상 밖에 존재한다. 그러니 그간 개인 방역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을 것인데 막상 그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니 사람들은 그제야 다시 한 번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재와 그 위력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망한 연예인 걱정이라더니, 근자에 멕시코 국내외 언론이 빅3라 불리는 정치, 경제, 종교 수장들의 감염 사실을 전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 세 명이야 말로 멕시코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것이었다. 그러니 설령 감염이 되었다 한들, 서민의 상황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사설 병원 코로나 치료비 5500만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보건 당국과 의료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불안과 공포 속에 각개 전투를 치르며 한 해를 살아온 서민들의 사정은 오히려 해가 바뀌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산소 순례(peregrinación de oxígeno)'라는 말이 생겼고 산소를 사 담을 산소통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때를 노려 값을 대폭 상승시킨 폭리 앞에 속수무책이다.

정부에서는 집 안에 더 이상 사용치 않는 산소통이 있거든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라고 방송을 통해 종용하지만 이 시기 멕시코에서 정치, 경제, 종교의 수장들마저 피하지 못한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다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산소통은 기존 있던 곳에 더 깊이 숨어들고 가격은 갈수록 비현실적이 되어간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산소 순례를 다룬 IMAGEN 12월 27일 뉴스. 멕시코시티에서는 산소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전 날 미리 번호표를 나눠주고 하루에 50명 씩에게만 산소를 팔고 있다.
ⓒ IMAGEN 화면캡처
 
산소 순례자라 불리는 이들 대부분은 집 안에 확진자 가족을 둔 경우지만, 환자를 별도로 격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이상 가족 감염은 면키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은 연일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산소를 충전할 수 있는 가게들을 찾아 빈 산소통을 들고 거리를 전전한다. 산소를 기다리며 몇 시간씩 줄을 서도 산소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수 시간 줄을 섰던 산소 가게에 더 이상 산소가 없다는 소리가 전해질 때 절망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멕시코에 왜 이토록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한 대목이다.

더 슬픈 사실은 공공병원의 병상이 이미 포화에 이르러 수많은 환자들이 병원에 들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와중임에도 사설 병원은 병상의 여유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민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사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중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치료의 경우 사설 병원 치료비는 백만 페소(한화 5500만원) 이상이다. 하루 최저임금이 6천 원 정도이고 고급 사무직이나 연구직이라도 매달 2백만 원 이상의 급여를 받기 어려운 멕시코 상황을 감안한다면, 게다가 문화적으로 저축 개념이 없는 이들에게 사설병원이란 선택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지난주부터 뉴스에서는 두 종류 사망 통계를 동시에 전한다. 그간의 보건부 수치에 통계청 수치가 더해졌다. 애석하게도 통계청에서 전하는 숫자는 보건부의 것보다 더 심각하다. 2021년 2월 3일 현재 보건부 사망자 숫자는 16만1240명이고 통계청에서 낸 사망자 숫자는 19만4881명이다. 둘 사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여전히 사망자 중 50% 이상이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집에서 죽기 때문이다. 이들과는 별개로 이미 오래 전부터 유력 외신들이 전하는 멕시코 사망자 숫자는 이 두 통계를 훌쩍 뛰어 넘는다.

지난 연말, 이 나라 최대 명절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말라는 국가의 권고보다 모여야 하는 가족을 택했다. 그리고 지난 1월 한 달 사이 3만 2797명(보건부 통계)이 사망했다. 그 사망의 광풍을 내가 사는 작은 소읍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었던지, 지난 1월 중순 이후 여섯 명의 이웃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자는 훨씬 더 많겠지만 확인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늦은 밤까지 90명 이상이 산소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장면. 산소가 떨어져간다는 직원의 말에 사람들이 절망했다.
ⓒ IMAGEN 화면캡처
 
멀쩡하던 이웃도 하나둘 사망

불똥은 읍사무소로 튀었다. 죽은 사람들 중 두 명이 읍사무소 직원이었고 상당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지난 1월 중순, 몇 날에 걸쳐 읍사무소를 수차례 드나들었던 기억과 함께 순간 불안해졌지만,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안도했다. 밀접 접촉자는 물론이요 동선 공개를 통해 혹시 모를 근거리 접촉자까지 찾아내고 직장에서 한 명이 확진되면 직장인 전원이 검사를 받는 그런 한국식 방역 수준을 생각한다면, 이곳에선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지난 주말엔, 바로 우리 집 건너편 이웃이 돌아가셨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났을 때 너무 멀쩡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라고 했다. 그 댁 가족들과도 오며 가며 수시로 마주치고 길에 서서 이야길 했으니 다시 한 번 불안이 몰려왔다. 불편하게도 슬픔보다 불안이 먼저 밀려왔다. 역시나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슬픔 위에 얹힌 불안을 끄집어 내렸다.

이상한 것은 체념에서 나온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주문이 어쩌면 마법의 효과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1년 가까이 마을 밖을 나가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급여가 밀리다 결국 삭감되기도 하지만, 시시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내 옆을 습자지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지만, 혹시 감염이 된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지만, 극단적으론 나 역시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죽어가는 53%의 사망자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여긴 멕시코니까'라는 주문을 외우는 순간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나 원망이 사라진다. 거기에 덤으로 불안과 공포가 주는 스트레스도 한결 완화된다.

불과 보름 사이 여섯 명이 죽고 보이지 않는 숱한 감염자들이 생겨났겠지만 마을은 비교적 평화롭다.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페스트가 프랑스령 알제리 해안도시 오랑을 덮쳤을 때 그곳의 의사 리유가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던데, 어쩌면 우리 마을 사람들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습관처럼 입에 붙은 '신이 원하신다면(Si Dios quiera)', 그 말로 모든 말의 마침표를 대신하면서 말이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 원망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코로나 시대의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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