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기관상 수상' 건보공단, 이 분들도 챙겨야 합니다

이상윤 2021. 2. 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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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상담사 파업 릴레이 기고④] 저평가 된 상담업무, 고통받는 노동자들

[이상윤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CI.
ⓒ 국민건강보험공단
  
2020년은 '건강보험공단'이 기관으로 통합된 지 20년 되던 해였다. 2000년 이전에는 건강보험이 '지역' 건강보험과 '직장' 건강보험으로 나뉘어 있었다. 둘로 나뉜 제도와 기관은 의료보장체계의 연대성 원칙에 바람직하지 않으며 비효율과 불평등을 양산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노동시민사회의 '의료보험통합운동'으로 2000년에 현재의 통합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탄생했다.

당시 건강보험 제도와 기관 통합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사회보험과 여러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의료기관들과 다수의 의사는 공단이 통합되어 규모가 커지는 것을 반대했다. 공단의 규모가 커지면 공단과 의료기관, 의사 간 힘의 균형추가 무너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이들을 포함한 통합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아서 건강보험 통합 과정은 10년에 걸친 사회운동을 통해서야 가능했다. 많은 노동조합, 농민운동 단체,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이 '시민'의 의견을 대표해 여론을 형성하며 나뉘어 있던 건강보험 제도와 기관을 통합시켰다.

하지만 노동시민사회 진영도 커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 하나는 기관이 커지면 자기 이해가 생기고 관료화되면서 서비스 이용자인 국민의 이해에 충실하기보다는 조직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동시민사회의 우려에 대해 당시 건강보험 통합을 주장하던 분들은 통합 시 '공단의 체질을 환골탈태하여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기관으로 만들자'고 설득했다.

의료보험통합 이후 지금까지 굴곡은 있었지만, 건강보험은 시민 모두를 포괄하는 이러한 방향으로 잘 운영해 왔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OECD 국가들 평균에 못 미치는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나 혜택에 예외적인 시민들이 있는 제도 자체에 한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회보험 운영기관에 견줘 대국민 서비스의 양과 질이 높고 국민을 우선하는 서비스를 펴온 것도 사실이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하며 산재보험 담당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 이러저러한 쓴소리를 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건강보험공단에 좀 배우라는 말을 한 적도 많다. 이런 이유로 많은 시민이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지지와 더불어 운영기관인 공단에 대한 신뢰도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데 최근 실망스러운 얘기를 접했다. 건강보험 제도 운영에 필수 불가결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저평가된 상담 업무, 고통받는 상담 노동자들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상담노동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건강보험 상담센터 업무는 건강보험 제도 운영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업무다. 국민건강보험이 포괄하는 대상과 그 업무 내용의 범위, 그리고 사회보장제도로의 특성상 여러 가지 대민 행정 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건강보험공단의 역할이자 의무다.

최근 들어 민원 업무를 챗봇이나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자동응답 프로그램에 맡기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기는 하나, 건강보험의 경우 그 업무의 특성상 이런 방식을 전면화해서 해결할 수 없다. 건강보험 민원 서비스의 주된 대상자들은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고령 인구나 정보 접근이 취약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험료 부과 및 징수, 소득 파악 및 피부양자 범위, 의료 이용 급여 및 보장 등 민원에서 제기되는 온갖 문제들은 다른 공공 행정 업무의 특성과 연관되어 파악할 수밖에 없고, 공공 행정 업무 민원은 정확성과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상호 소통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업무는 사람이 해야 한다. 사회변화 인구집단 변화 등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민원은 사람이 해결할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제도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이 충원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그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

공단이 관료화되지 않고 조직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으며,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공공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시민 접촉 창구인 상담센터의 역할과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공공기관인 공단은 이렇게 중요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저임금, 고강도 노동, 극도로 높은 직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 방치한 채 겉으로만 건강보험이 상징하는 연대성, 민주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과실만 챙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1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건보 고객센터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과 직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11곳의 조합원은 이날부터 동시에 파업에 돌입했다. 공단은 민간위탁 방식으로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고객센터 근로자는 공단 협력업체 직원이다.
ⓒ 연합뉴스
 
콜센터 상담 업무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고위험 직업이다. 주로 여성들이 이 직무를 수행하기에 업무의 위험과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어,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 힘들지도 않은 업무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콜센터 업무는 직무 스트레스가 높아 그로 인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은 업무이다.

위험이 높은 업무는 이를 잘 관리하여 실제 노동자에게 건강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콜센터 회사는 영세한 인력 운영업체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관리를 할 능력도 여력도 없는 게 대부분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린다. 대부분 컴퓨터와 헤드셋을 가지고 일하게 되는데, 몸에 맞지도 않는 책상과 의자에 의지해 부적절한 자세로 장시간 반복 작업을 수행하다가 목, 어깨, 손목, 허리 등에 병을 얻게 된다. 말 하는 것, 듣는 것, 보는 것과 관련된 건강 증상도 흔하다.

온종일 말하다 보면 목소리 관련 증상이 나타나고, 헤드셋을 끼고 일하다가 볼륨 문제 등으로 청각에 손상을 입는 경우도 흔하다. 온종일 컴퓨터 모니터랑 씨름하다 보면 눈이 충혈되고 건성안에 시달리기 일쑤이다. 민원인과의 통화 과정에서 언어폭력과 희롱, 갑질에 시달린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언어폭력과 희롱, 갑질에 시달리다 보면 정신·심리적 건강 문제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힘든 업무이므로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의 질을 위해서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직 및 업무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콜센터 회사는 영세기업이기에 이들의 조직 및 업무 관리 방식은 오히려 노동자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업무 분장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인력 관리가 필요한데 그럴 역량도 노하우도 없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노동자 간 경쟁을 유도해 강압적인 형태로 일을 시키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고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 업무를 맡은 콜센터 노동자들도 이러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국민의 건강 보장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업무를 하는 데도, 낮은 보수에 건강을 헤쳐가며 일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 제도로 이익을 얻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건보공단은 노동권 보장하고 증진할 의무가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사장은 공단 통합 시 그 누구 보다 앞장서서 활동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분 중 하나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공단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이유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다. 건강 위험이 높은 노동자들은 효과적이고 적절한 인력 관리로 건강 위험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분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학자로서, 사회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경력도 쌓으신 분이니만큼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슈 해결에 정치인으로서 역량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고용관계 문제가 단번에 해결이 힘들다면 논의 테이블이라도 만들기 바란다.

이들의 노동 가치에 걸맞은 처우와 노동조건 개선은 업체가 책임질 문제라는 공허한 얘기를 되풀이하지 말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공공기관으로서 서비스 공급 혹은 가치 사슬 내 있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증진할 의무가 있다.

[기획 / 건강보험공단 상담사 파업 릴레이 기고]
① 건강보험공단 직원과 통화하기 어려운 이유, 이겁니다 http://omn.kr/1rxd7
② 끝없는 외주화... 누가 나의 의료정보에 손대나 http://omn.kr/1rx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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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노동건강연대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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