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가 SNS에 쓴 문장을 고쳐 보았습니다

장호철 2021. 2. 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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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겨찻집] '노력을 경주하다'→'노력을 기울이다'로.. 어려운 한자어도 우리말로 바꿔 쓰자

[장호철 기자]

  
 일상에서 쓰이는 한자어 가운데 어떤 말은 한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뜻을 해득하기가 쉽지 않다.
ⓒ 장호철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오랜만에 '경주하다'라는 낱말을 들었다. 홍남기 부총리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쓴 글에 "~ 노력을 최대한 경주해 나가겠습니다"로 나왔는데, 워낙 커다랗게 화면에 띄워 주어서 한참 들여다봤다. 하, 아직도 저걸 쓰는구나, 하고 감탄하는데 문득 40년도 훨씬 지난 내 20대 병영 생활이 떠올랐다. 

나는 보병 부대의 '상벌계'에 해당하는 보직인 대대 행정서기병으로 근무했다. 징계와 포상 관련 업무가 주 임무였는데 둘 다 머리를 여간 짜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정기적인 포상 시기가 되면 대대의 해당 사병과 장교들의 공적서를 쓰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아직도 쓰이는 어려운 한자어들

글쎄,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걸 좀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일이 영 마뜩잖았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공적을 키우기 위해서 그럭저럭한 일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등의 관용적 문구로 칠갑을 하는 것이었다.

이 '경주(傾注)하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홍 부총리나 내가 쓴 뜻은 "힘이나 정신을 한곳에만 기울이다"이다. "노력을 경주하다", "전력을 경주하다"에서와 같이 쓰는데, 경(傾)은 '기울다', '주(注)'는 '물 대다'의 뜻이다. 직역하면 "기울여 물 대다"이니 쉽게 쓰면 '기울이다'가 된다.
 
 '경주하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사실상 '힘이나 정신을 한곳에만 기울이다'의 뜻으로만 쓰인다. '경도하다'는 비슷한 형식의 한자어다.
ⓒ 장호철
 
<표준국어대사전>이 제시하는 나머지 뜻으로 쓰인 '경주하다'를 나는 보지 못했다. "강물이 쏜살같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다", "(비유적으로) 비가 퍼붓듯 쏟아지다", "물 따위를 기울여 붓거나 쏟다"는 뜻으로 쓰인 예문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울 경 자가 쓰인 낱말로 흔히 쓰이는 '경사(傾斜)', '경향(傾向)', '좌경(左傾)·우경(右傾)' 등이 있지만, '경주하다'와 같은 방식으로 쓰이는 예는 드물다. "온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거나 열중하다"는 뜻으로 쓰는 '경도(傾倒)하다'는 비슷한 예로 볼 수 있겠다. '기울 경'에 '넘어질 도'로 이루어져 직역하면 '기울어져 넘어지다'인데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는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려운 한자어 '다듬기'

다음은 국어생활연구원 자료 가운데 '국어 다듬기'에 나오는 '일상에서 쓰이는 어려운 한자어'다. 무심코 쓰지만, 우리말로 풀어서 쓰면 그 뜻이 훨씬 명료해지는 낱말들이다. '미연에 방지하다 : 미리 막다', '만전을 기하다(일본식 표현) : 빈틈없이 하다', '난색을 표명하다 : 어려운 빛을 나타내다(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 등은 이미 관용구로 굳어버린 듯한 표현이지만, 한글로 풀어쓰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어려운 한자어 다듬기. 국어생활연구원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표.
ⓒ 장호철
   
 '심심하다'나 '해태하다'도 '깊다'나 '게을리하다' 정도로 얼마든지 바꾸어 쓸 수 있는 낱말이다.
ⓒ 장호철
우리말로 풀어 써도 충분한 말인데도 굳이 한자어로 쓰이는 말로 '심심(甚深)하다'가 있다. '심할 심(甚)'에 '깊을 심(深)'을 쓴 말인데, 이 낱말을 즐겨 쓰는 이들은 그게 한자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의례적인 문어로 이 말은 여전히 축사나 회고사 따위에 오르내린다. '깊은'으로 풀면 되는 말을 굳이 '심심하다'고 쓰는 건 정말 '심심해서'는 아니지 않는가. 

'해태'와 '해태하다'는 뜻이 사뭇 다르다

최근 성추행을 저지른 정치인의 직위 해제와 관련해 소속 정당에서는 "당 대표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현저히 해태한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태(懈怠)'는 법률 용어로 자주 쓰이는데, "어떤 법률 행위를 할 기일을 이유 없이 넘겨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위 사례에서는 '게을리한'으로 바꾸어 쓰면 충분한데 굳이 '해태'를 썼다. 

그런데 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는 것처럼 '해태'는 명사로는 위와 같은 뜻이지만, 접미사 '-하다'를 붙여서 파생한 형용사 '해태하다'의 뜻은 그와는 사뭇 다르다. '해태하다'는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데가 있다"는 뜻으로 '해타하다'가 비슷한 말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게을리하다'라는 뜻으로 '해태하다'를 쓰는 것은 국어사전에 없는 말을 쓰는 셈이 된다. 어렵고 알쏭달쏭한 '해태하다' 대신 우리말로 '게을리하다'로 쓰는 게 마땅한 이유다. 

법률 용어도 마찬가지다. 굳이 그걸 '해태'라고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말이다. 국회와 법제처 등에서 법률 용어 순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바, 이처럼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 대체하는 일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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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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