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얘기 안들어봐서.." 女비하 사과하다 더 꼬인 日모리
도쿄올림픽 6개월 앞 "역대 최대 위기"
자원봉사자 이탈, 성화봉송 주자도 사퇴
Q : 기자 : “당신이 조직위원장을 맡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A :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Q : 기자 :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A : 모리 위원장 : “그럼 그렇게 알아 두겠다”
“여성 이사가 많으면 회의가 오래 걸린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이 사죄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냈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면서다. 아사히 신문 등 주요 언론은 모리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모리 위원장은 지난 4일 문제의 발언이 보도되자 당일 오후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전날 발언에 대해선 올림픽 정신에 반하는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으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 발언을 철회하겠다. 불쾌한 마음을 갖게 한 여러분께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뒤이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졌다. 모리 위원장은 자신의 진퇴에 대해 “사임할 생각은 없다”면서 “나는 (도쿄올림픽을 위해) 헌신적이고 열심히 7년간 도와왔다. 방해가 된다면, 내가 대형쓰레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쓸어내 버리면 되지 않나”라며 사퇴 요구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기자가 “여성은 말이 길다고 생각하냐”라고 묻자 “최근엔 여성의 얘기를 듣지 않아서 모르겠다”고도 했다. 질문이 거듭되자 아예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분위기를) 웃기게 만들고 싶어서 묻는 거냐”라며 받아치는 장면도 나왔다.
기자의 질문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답변을 시작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좋게 보려고 해도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질의응답이 진행되면서, (모리 위원장의) 표정에서도 명확히 불쾌감이 드러났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장면이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되는 동안 트위터 등에는 모리 위원장의 태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 트위터에는 “일본의 수치(日本の恥)”라는 단어가 트랜드 검색어로 상위에 올랐다.
모리 위원장의 이 같은 대응은 안팎에서 파문을 낳고 있다. 안 그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약 80%가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오히려 역효과만 냈다”(조직위 간부)는 분위기다. 조직위원회 한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엠블렘 표절 문제, 1년 연기 등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이번이 가장 위기”라고 토로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이날 기자들에게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큰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마이니치 신문은 올림픽 개최도시인 도쿄도에 항의 전화가 쏟아지는 한편, 올림픽 자원봉사자를 거부하겠다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기 개그맨 다무라 아쓰시(田村淳)는 성화봉송 주자를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억지로 올림픽을 치르면 누가 행복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조직위 측에) 사퇴하겠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모리 위원장을 향한 사퇴 요구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모리 회장의 사임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런 뒤틀린 생각을 가진 사람 아래서 개최되는 올림픽이란 대체 무엇인가. 거금을 들여 세계에 수치를 알리는 것뿐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마이니치 신문도 “올림픽 책임자로서 실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전날 국회에 출석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있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면서도 모리 위원장의 진퇴는 언급하지 않았다. 당장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장을 바꾸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모리 위원장은 과거에도 잦은 실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국회의원 시절엔 “아이를 한명도 낳지 않는 여성을 세금으로 돌봐주는 건 잘못”이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올림픽 조직위원장에 취임한 뒤인 2014년엔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아사다 마오(浅田真央) 피겨스케이트 선수를 가리켜 “저 아이는 중요한 순간엔 꼭 넘어진다”라고 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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