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꼭 봐야 할 전시 '빌 비올라, 조우'_인싸 전시 #20

김초혜 2021. 2. 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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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하는 명상이란 이런 것이다. 느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입춘을 맞으며 이르게 봄이 찾아온 부산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가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개인전이다. 빌 비올라는 지난 40여 년간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작품으로 ‘영상의 구도자’로 불린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별관에 이우환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특별 공간을 마련해둔 부산시립미술관은 2019년부터 연례 기획으로 ‘이우환과 그 친구들’을 시작했다. 이우환 화백과 맥락을 함께하며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 그 두 번째 순서로 〈빌 비올라, 조우〉 전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이우환 공간과 부산시립미술관 본관 3개 전시실에서 1970년대의 초기 작품부터 현재까지 빌 비올라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망라한다. 특히 4~5개의 스크린으로 이뤄진 〈순교자들〉,〈밀레니엄의 다섯 천사〉,〈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를 완전체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에 아쉬움이 없는 거의 유일무이한 기회이다.

Earth Martyr [흙의 순교자], 2014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flat panel display Photo: Kira Perov © Bill Viola Studio

사면에 스크린이 설치된 어둑한 공간에 들어서면 구부정하게 서서 쏟아지는 흙더미를 받아내는 남자, 밧줄에 매달려 바람에 종잇장처럼 흔들리는 여자, 화염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채 의자에 붙박인 남자, 거꾸로 매달려 세찬 물줄기를 온몸으로 견디는 남자가 직사각형 스크린에 떠올라 있다. 각각 〈흙의 순교자〉, 〈공기의 순교자〉, 〈불의 순교자〉, 〈물의 순교자〉라는 제목을 가진 ‘순교자’ 시리즈로 르네상스 시대 성당에서 다빈치, 카라바조 등 뛰어난 화가에게 성화 제작을 주문했던 역사를 잇는 방식으로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이 빌 비올라에 작업을 의뢰해 영구 설치된 비디오 아트 버전의 현대판 성화다. 언제 15초짜리 틱톡 영상에 익숙했었냐는 듯, 7분 15초 동안 원룸 정도 되는 크기의 전시실을 천천히 돌면서 극단적인 고통을 받는 육체를 매우 느린 움직임으로 재생하는 영상을 시작부터 끝까지 남김없이 보았다.

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 i. “Departing Angel” [떠나는 천사] © Bill Viola Studio
The Reflecting Pool [투영하는 연못], 1977-9 Color videotape Photo: Kira Perov © Bill Viola Studio

젊은 시절 일본에 살며 선불교를 공부하기도 한 빌 비올라는 상업적인 이익과 엔터테인먼트에 복무하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현대미술에 도입해 동양사상에 기반한 명상적이고 상징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을 창조해낸다. 느리게 움직이는 행위들을 몇 분에서 몇 십 분 동안 보면서 경험하는 경이로움과 숭고의 감정 뒤에는 삶과 죽음, 믿음과 불신, 고통과 희열 등 삶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 사유하는 침잠의 시간이 찾아온다. 속도를 늦추고 감각과 생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체험이 되는 ‘미술로 하는 명상’이라 부를 만 하다.

4월 4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 ‘인싸전시’ 지금 가장 핫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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