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5면이 바다" 순창여중 현수막 보셨나요
[최육상 기자]
▲ 순창여자중학교 학생회가 후문에 내건 졸업 축하 현수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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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5면이 바다이죠, 동해, 서해, 남해, 선배님들 사랑해! 그리고 졸업을 축하해!"
학교 후문 쪽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동안 익숙하던 중고등학교의 현수막은 "'축' 홍길동 ○○외고 합격", "'축' △△대학교 0명 합격" 등의 부류였다. 그런데 '어라, 이건 뭐지?'
'5해'를 졸업 축하 문구 삼은 '학생회 이름의 현수막'에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지난달 29일 오후, 밤사이 내린 눈이 수북하게 쌓인 전북 순창군의 순창여자중학교 교정을 찾았다. 전·현직 학생회장단 황현서(3학년·전 회장), 신미소(3학년·전 총무), 박은혜(2학년·회장), 원가은(2학년·부회장), 이한별(1학년·부회장) 등 5명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 왼쪽부터 순창여중 이한별(1학년), 박은혜(2학년), 신미소(3학년), 황현서(3학년), 원가은(2학년) 학생. 마스크를 쓴 채 대화를 나누었고, 사진 촬영을 위해 아주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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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 현수막'을 제작한 주인공은 지난해 학생회장단 선거에서 비대면 투표로 진행된 5개 선거본부의 경쟁 속에 당선된 박은혜·원가은 학생(1학년 부회장은 별도 선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만든 문구"라고 밝게 웃었다.
"코로나19로 힘들었을 선배들이 졸업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유튜브에서 '주접 댓글'이라고, 오글거리는 댓글들을 보다가 우리도 기억에 남게, 재미있게 해보자고 했어요. 하하하.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에게 요청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걸었어요. 학교에서 항상 학생들 의견을 들어주는 편이에요."
'순창여중의 자랑을 해달라'고 하자, 황현서 학생은 전직 회장다운(!) 답을 했다.
"저희가 순창군에서 유일하게 여자 학교잖아요. 여자들만 있으니까, 아무런 내숭도 안 떨고 스스럼없이 자기 자신을 보여줘요. 체육대회나 행사, 무슨 대회 같은 게 있으면 정말 열심히 해요. 여자애들끼리 학생회 단합도 잘 되고, 협동도 완전 잘 돼요."
전북 순창군에는 초등학교 15곳, 중학교 7곳, 고등학교 3곳이 있다. 남자 중학교 2곳과 순창여중을 제외한 모든 학교는 남녀공학이다. 신미소 학생에게 '전직 회장의 답변이 너무 모범적인 것 아니냐?'고 추궁(?)을 했다. 신미소 학생은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여학교만의 비밀(?)을 실토했다.
"어떤 친구가요, 학교에서는 완전 왈가닥처럼 행동하는데 밖에 나가면 되게 점잖은 척해요. 목소리도 하이로 좀 올리고요.(웃음) ('그런 학생들이 어느 정도나 되냐'고 다시 묻자,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한 50% 정도는 그러지 않을까요.(웃음)"
체육대회·축제·수련회·음악골든벨… 즐거운 기억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것들이 있느냐'는 물음에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코로나19로 받은 영향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작년에 학생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했던 체육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달 전부터 연습하고,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들께서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 주셨어요. 1학년 시작부터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제대로 사귈 기회가 없었는데, 그래도 체육대회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재미있고 즐거웠어요."(이한별)
"매년 학교에서 하는 축제가 정말 재미있어요.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작년에는 못 해서 아쉬웠지만요. 올해는 코로나도 겹치고, 눈도 많이 오고 그랬잖아요? 졸업하기 전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눈싸움한 건 즐거웠어요."(신미소)
"작년 학교에 학생회실을 만든 게 기억에 남아요. 후관에 공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친구들과 함께 학생회실을 꾸몄거든요. 저희들은 코로나 때문에 잘 사용하지 못했지만, 후배들은 코로나가 빨리 사라져서 좋은 환경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황현서)
"1학년 때 수련회 갔던 게 기억나요. 첫 날은 어색해서 잘 못 놀았는데, 이틀째부턴 긴장이 풀리면서 엄청 재미있게 놀았어요. 원래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는데,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가서 아쉬웠어요."(원가은)
"저는 학생회 활동을 늦게 시작했는데, 음악골든벨을 했었을 때 얘들이 너무 재미있어했어요. 아이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함께 협동하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박은혜)
"순창여중 선생님들이 정말 좋아요"
학생들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았다. 박은혜 학생이 "모든 선생님들께서 어떤 질문을 드려도 친절하게 답변해 주시고, 질문한 것보다 더 알려주시고 그런 것이 참 좋다"고 말하자, 나머지 학생들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나누는 중간중간 학생들에게 '학교 자랑 말고, 후배들을 위해서 개선했으면 좋을 점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여러 차례 물었다. 결국, 5일 졸업하는 신미소 학생이 총대(?)를 멨다.
"여학생들만 있다 보니 화장실 환경에 굉장히 민감해요. 학교에서 1, 2, 3층 화장실과 강당 화장실을 조금만 더 청결하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코로나도 그렇고, 위생 문제는 정말 중요하잖아요."(일동 완전동의)
학생들과 대화하기 전에 교장실에서 만났던 최순삼 교장은 순창여중 자랑을 교사들의 평을 빌어 말했다.
"11개 학급, 246명으로 순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교예요. 제가 정년을 3년 앞두고 고향인 순창에 다시 부임했는데, 저랑 같이 우리 학교에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순창여중 학생들은 정말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소통과 화합이 잘 된다'고요. 선생님들의 만족도가 높은 건데요. 올해 66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학교 구성원들이 만들어 온 역사, 그게 전통이고 순창여중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순창여중 본관 1층 현관문 안쪽 벽면에 학생들의 다양한 꿈들이 그림으로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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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여중 본관 현관문 안쪽 벽에는 학생들의 꿈이 앙증맞은 그림으로 걸려있다. 교육학자, 농부, 사진작가,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 미용사, 요리사, 패션디자이너, 경찰, 군인, 운동선수, 성우, 배우, 아이돌 매니저, 바리스타(커피 제조사), 파티시에(제과제빵사), 큐레이터(전시 기획자), CEO(최고경영자), 판사, 간호사, 의사, 시나리오 작가, 선생님 등 정말 다양했다.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한 가지를 약속했다. '먼 훗날 어떤 희망을 키워서 이때를 떠올리게 될지 함께 지켜보자'고. 그래서였다. "꿈이 뭐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 건.
교정을 나오는 길, 일부러 흰 눈이 가득 쌓인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뽀드득뽀드득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대화 내내 마스크 위로 환한 눈웃음을 주고받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발자국을 따라왔다.
다섯 학생은 "꿈 이야기"를 카카오톡으로 전해왔다. 정호승 시인은 "어둠을 밟고 가야 별이 빛난다"고 했다. 어떤 역경을 밟으며 꿈을 빛나게 할지는 학생들의 몫이다. '꿈을 함께 지켜보자'는 약속을, 여기 발자국으로 새긴다.
"공부하면서 생각해 보고 있고 다른 직업 체험을 하면서 꿈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꿈은 없지만 아나운서나 예능 피디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이한별)
"중등교사. 어떤 웹툰의 주인공이 선생님이었는데 그런 생활이 너무 멋져 보였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 중등교사가 되고 싶습니다."(원가은)
"웹툰 작가. 작년부터 웹툰을 깊이 있게 보면서 배운 것들도 많고 위로도 받고, 웹툰 자체가 저한테 치유가 됐어요. 저도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웹툰을 그리고 싶어요."(박은혜)
"주얼리(보석·장신구) 브랜드 경영인, 아름다운 액세서리에 꿈과 환상을 담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요. 누구나 아름다운 주얼리를 착용할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신미소)
▲ 순창여중을 배경으로 왼쪽부터 이한별(1학년), 박은혜(2학년), 신미소(3학년), 황현서(3학년), 원가은(2학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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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2월 4일자에도 보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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