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는 되는데 그랜저는 왜 안되나"..대기업 중고차 진입 딜레마

이창환 2021. 2. 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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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가 낳은 역차별②]역차별에 신음하는 국내 완성차 회사들
중고차 시장 규제로 국산차 발 못 붙이는 동안, 수입차 회사 몸집 껑충

[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국내 중고자동차 산업은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외국계 기업과 국내 기업 간의 역차별이 심한 시장 중에 하나로 꼽힌다.

정부의 대기업 사업제한 조치에 현대차와 기아 등 국산 자동차 회사들이 발을 들이지 못하는 동안 벤츠와 BMW, 아우디 등 모든 수입차 회사가 중고차 인증시장을 발판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어서다.

진출구조가 왜곡된 사이에 중고차시장은 불법거래와 사기판매 등이 판치는 혼탁한 모습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한 경제를 만들자는 정부 규제가 빚은 역설이다.

몸집 커진 중고차시장, 수입차 놀이터 되나

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거래된 중고차 수는 역대 최대인 387만대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다. 중고차 거래시장이 2010년 이후 매년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해 400만대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신규로 등록된 자동차가 191만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중고차시장은 신차시장에 비해 2배 이상 커졌다는 분석이다.

중고차시장이 커지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주요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중고차시장 규모가 3624만대에서 2019년 4081만대로 늘었고 같은 기간 중국은 920만대에서 1492만대로 증가했다.

중고차 산업이 세계적으로 호황인 이유는 장기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서 신차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고차에 눈을 돌리는 고객이 늘어난 데다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신차 판매로 내수시장에 안착한 수입차 브랜드들이 자체 인증 중고차 판매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중고차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부쩍 키우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BMW의 경우 2014년 인증 중고차 판매량이 3820대에서 2018년 1만1687대로 뛰었고, 벤츠는 같은 기간 550대에서 4640대로 늘었다. 같은 기간 아우디는 0대에서 4582대로, 재규어랜드로버는 61대에서 2677대로 증가했다.

제값 받는 수입차, 발목 잡힌 국산차

이처럼 중고차시장이 커지고 수입차들이 브랜드에 대한 인기를 바탕으로 사업을 급속도로 키워나가고 있음에도 정작 현대차와 기아 등 토종 자동차 회사들은 정부 규제와 중고차 업계의 반발에 가로막혀 사업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국내 완성차 회사들의 진출이 막혔지만 2019년 초 기한이 만료됐다. 기한 만료 후 국내 완성차 회사들은 중고차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고차 업계가 여전히 반발하며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중고차 거래시장에 국내 완성차 업체 진입이 규제되면서 수입차보다 국산 중고차 경쟁력이 떨어지고 소비자 불신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국내 중고차시장에서 2017년식 제네시스 G80 가격은 신차 대비 30.7% 떨어졌지만,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벤츠의 E클래스는 25.5%, GLC는 20.6% 하락하는 데 그쳤다. 2017년식 현대차 쏘나타는 45.7%, BMW3 시리즈는 40.9% 하락했다.

반면 완성차업체에 대한 중고차시장 진입 제한이 없는 미국에서는 한국 브랜드와 외국 브랜드 중고차 감가율 간의 큰 차이가 없고, 차종에 따라선 한국 브랜드 가격이 오히려 높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국내 완성차업계의 중고차시장 참여가 제한된 국내 중고차시장에서는 중고차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허위매물 등 불완전한 거래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가 더욱 우려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9년 말 발표한 중고차시장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76.4%가 국내 중고차시장이 불투명, 혼탁 낙후됐다고 인식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최근 소득 향상에 따라 고급화, 개성화, 다양화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신차뿐만 아니라 중고차시장도 차별화와 고급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중고차 경쟁력이 신차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완성차업체들과 수입차와의 역차별은 조속히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좌)더 뉴 메르세데스 벤츠 GLA 내부 / (우)더 뉴 그랜저 외장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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