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AESA 레이다의 개발
[김선주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무장한 적의 기동차량들이 대공미사일의 엄호 하에 기습을 꾀하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사령관은 적의 기습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후, 기습 전 적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공군기지에서는 6대의 전투기들이 출격하고, 출격한 전투기들은 통신채널을 이용하여 서로의 주 임무를 확인한다. 1번, 2번 기는 지상 공격을 수행하고, 3번, 4번 기는 적의 방공망을 제압(SEAD: Supression of enemy defenses)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5번, 6번 기는 공중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공중전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다중모드 운용이 가능한 최신의 AESA 레이다를 탑재한 아군 전투기들은 AESA 레이다를 이용하여 구체적으로 다음의 임무를 수행한다. 지상공격을 수행하는 1, 2번 전투기는 전투기 탑재 AESA 레이다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느리게 이동하는 지상 표적을 탐지/추적함은 물론 지상 표적의 식별과 공격 효과의 판단을 위한 지상 영상정보를 획득한다. 방공망 제압의 임무를 수행하는 3, 4번 전투기는 대공 미사일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한 전자파 송출 감시기능과 영상정보 획득 기능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공중전을 수행하는 5번, 6번 전투기는 공중 표적의 탐지/추적 및 교전과 관련된 다양한 공대공 모드를 수행하며, 성공적으로 적을 소탕한다.
전투기는 원거리 정밀타격체계(kill-chain)의 최전방에서 운용되는 일종의 무기(weapon)다. 상대보다 먼저 보고(first look), 먼저 발사(first shoot)해 먼저 제압(first kill)해야만 자신의 생존성이 보장되고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전투기의 임무에 있어 탑재된 AESA 레이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전투기라는 제한적 공간에 탑재되어야 하므로 크기나 무게 뿐 만아니라 전력소모량도 매우 제한적이며, 전투기가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운용모드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재밍과 같은 적의 전자전 공격에도 불구하고, 표적을 가능한 적보다 먼저 탐지/추적해야 하며, 고속 기동하는 전투기라는 플랫폼 환경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난제를 해결해야한다. 이를 모두 해결해야 비로소 구현 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에 전투기탑재 AESA 레이다를 ‘레이다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은 2000년부터 AESA 레이다를 미공군의 F-15C와 해군의 F-18E/F(일명 수퍼호넷)에 탑재하기 시작했다.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으면서 현재까지도 공중전에서는 최고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F-22(일명 랩터)를 개발할 때, 미 정부는 레이다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노드롭그루먼사와 레이시온사의 기술력을 결합해 F-22에 탑재될 AESA 레이다를 완성했다. 미국의 F-22 개발 이후, 유럽과 러시아는 경쟁적으로 AESA 레이다를 탑재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집중하게 됐다.
▲ 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1998년, “반도체 회로의 집적 성능은 18개월 마다 2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한 인텔의 창업자이며 컴퓨터 혁명을 이끈 고든 무어(Gordon Earle Moore)는 한 논문에서 “집적화된 초고주파 소자를 이용하는 위상배열 안테나의 성공적인 구현은 레이다 분야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대혁신을 가져올 것” 이라고 했다. 2020년 현재 초고주파 집적회로(MMIC)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무어의 예견처럼 레이다의 대혁신을 가져왔다. X대역 위상배열 안테나의 단일 칩 내에 4개 이상의 송수신 모듈과 제어회로를 내장할 수 있으며, 주파수가 더 높은 밀리미터파 영역에서는 단일 칩 혹은 웨이퍼 상에 전체 송수신 모듈과 제어회로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레이다는 초고주파 집적회로의 발전으로 인한 현재의 혁신 이후에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레이다 시스템의 미래 모습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레이다가 극복해야 하는 직면한 환경(표적특성, 운용환경)과 기술 발전추세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첫째, 레이다 시스템은 네트워크 작전 중심으로 진화할 것이다. 표적은 최저고도 혹은 초고속과 같이 극단적인 환경에서 운용될 것이고, 스텔스 기술의 향상으로 매우 낮은 레이다 반사면적(RCS)을 지닐 것이다. 또한 전자파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전자파 교란이 심해지고, 의도적인 적의 전자 공격은 훨씬 지능화될 것이다.
작전 시나리오는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레이다는 보다 높은 수준의 융통성, 기민성 및 정확함을 지녀야 하고, 단일 센서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타 센서들과의 정보를 융합할 것이다. 나아가 기존 단일 플랫폼 중심의 작전은 다양한 플랫폼에 탑재된 센서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네트워크 중심의 작전(NCW)으로 전환될 것이며, 상황인식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광대역 주파수 특성을 갖는 다중모드/다기능 RF 시스템(Multifunction RF System)이 개발되고 있다. 광대역의 AESA 하드웨어를 레이다, 전자전 및 데이터링크 기능에 공통으로 사용하면 기술적, 작전 운용상의 간결함 등 다양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둘째, 학습기능을 지닌 스마트 레이다가 등장할 것이다. 최근까지의 레이다는 경험했던 정보들을 바탕으로 수신부에서 데이터를 신호처리해 부분적으로 레이다 능력을 최적화했다. 미래의 레이다는 수신부 뿐 아니라, 송신부에서도 경험을 통해 레이다의 환경에 맞는 레이다 파형을 조정/송신함으로서 기능과 성능 측면에서 완전히 최적화된 인지 레이다(cognitive Radar) 기술을 갖추게 될 것이다.
특히 이전에 경험했던 정보와 더불어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하여 잠재적인 표적들에 대한 탐지와 식별능력이 상당 수준 향상될 것이다. 즉 인간의 뇌가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것처럼 미래의 레이다는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생각하며 추론과 판단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이러한 과정은 기억과 학습을 통해 발전될 것이다.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상대보다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레이다는 타 센서들과 정보를 융합하고, 현재 환경에 최적화된 판단을 수행하는 스마트 레이다(Smart Radar)로 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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