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운영한 당구장도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다"
[김종훈 기자]
▲ 인천 부평구에서 39년째 당구장을 운영하는 삼촌은 대화 내내 "뾰족한 수가 없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당구장에 마련된 국제식 대대. |
ⓒ 김종훈 |
엄마의 첫째 동생, 그러니까 큰외삼촌은 현재 인천시 부평구에서 130평 규모의 당구장을 운영한다. 1983년 이십대 중후반에 당구장을 시작한 이후 당구인으로 한길만 걸었으니 햇수만 따져도 어느새 39년이 됐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지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부평 삼산동 먹자골목에 위치한 탓에, 밤 9시를 기해 가장 분주해지던 삼촌의 당구장은 '밤 9시 영업금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지난 1월 17일까지 41일 동안 영업이 중단돼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내몰렸다.
하지만 월세 320만 원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 전기세와 난방비 등 운영비 200만 원과 아르바이트 비용 210만 원은 들쭉날쭉한 영업 속에도 매달 반드시 지출되는 항목으로 유지됐다. 보증금 수천만 원이 진즉에 사라진 까닭이다.
그런데도 삼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삼촌은 "지금까지 당구 하나만 알고 살아온 것이 40년"이라면서 "당구가 좋아서 버틴 거다. IMF도 무리 없이 견뎠다. 이것 또한 잘 이겨내지 않겠냐"라고 쓴웃음 지어 보이며 말했다.
지난 31일 정부는 현재 적용 중인 거리두기 단계인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를 1일 오전 0시부터 14일 자정까지 2주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당구장 등 실내체육시설업 역시 밤 9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가 그대로 유지됐다.
▲ 당구장 바로 앞 편의점에 "정부의 집합금지 명령으로 21시부터 착석 및 취식이 금지된다. 협조 부탁드린다"라는 문구가 붙었다. |
ⓒ 김종훈 |
지난 2일 삼촌은 코로나19 상황 전과 다르지 않은 오전 10시 30분께 당구장 문을 열었다. 점심 무렵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4시까지 당구장을 찾는 손님은 없었다. 삼촌은 "어제(1일)는 그래도 낮에 손님들이 좀 있었는데 오늘(2일)은 아예 없다"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삼촌의 당구장을 찾는 손님들은 다수가 밤에 온다. 간혹 당구동호회 사람들이나 근처 식당 사장님들이 낮에 찾기도 하지만 절대다수는 퇴근하고 저녁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한 게임 칠까?' 하며 찾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 경로는 지난 1년 내내 완전히 차단됐다.
삼촌은 "먹자골목 거리가 밤 9시면 불이 다 꺼진다"면서 "밥 먹고 술 한 잔 한 뒤 당구 한 게임 치는 게 크게 보면 하나의 흐름인데 그것이 막혔으니 장사가 될 리 있냐"라고 자조했다. 그러면서 삼촌은 "(지난해 12월) 영업정지 했을 때 그때 강하게 3단계로 올려서 원천차단했으면 이렇게 아쉽거나 서운한 감정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에서 누구는 허용하고 누구는 막았다. 마스크 끼고 땀 하나 흘리지 않는 당구장이 위험한지 밥 먹으며 침 튀고 말하는 곳이 위험한지는 누가 봐도 다 아는데 눈치만 보다 실내스포츠를 전부 영업정지했다. 그 사이 정부는 백화점도 열고, 대형마트도 열어놨다. 그곳은 사람이 없나? 처음부터 다 같이 위기를 극복했다면 이렇게 분노하지도 않을 텐데, 정책이 세심하지 않았다."
당구장 바로 앞 편의점에는 "정부의 집합금지 명령으로 21시부터 착석 및 취식이 금지된다. 협조 부탁드린다"라는 문구가 붙었다. 실제로 밤 9시가 되자 부평구 삼산동 먹자골목엔 금세 적막이 내려앉았다. 삼촌 역시 밤 9시에 맞춰 당구장 문을 닫았다.
평년 대비 매출 20% 미만
이날 삼촌은 대화 내내 "뾰족한 수가 전혀 없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40년 가까이 당구인으로 살아오며 당구장을 운영했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더 이상 당구장을 운영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라는 탄식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건물주가 지난해 3월부터 3개월 동안 임대료 30%를 깎아주긴 했지만 이후에는 영업정지 기간을 포함해 임대료를 단 한 번도 깎아주거나 유예해준 적이 없다"면서 "오히려 '정부에서 영업정지에 대한 지원금 300만 원을 받았는데 왜 밀리냐'라고 말한다. 한 달 월세도 안 되는 지원금을 보며 왜 내가 이렇게까지 당구장에만 목을 매왔는지 후회가 된다"라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삼촌의 당구장은 '국제식대대'로 불리는 파란색 당구대 6대와 '국제식중대'로 불리는 당구대 9대가 있다. 삼촌은 "여기가 부평에서 가장 시설이 좋고 큰 규모의 당구장 중 하나"라면서 "지금까지 돈을 벌면 당구장에 계속 투자해 왔다. 이것만이 전부라 생각했다. 남들처럼 집이나 다른 것에 투자하지 못한 게 요즘은 너무 아쉽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 삼촌은 이른 아침까지 당구장을 운영했다. 삼촌의 당구장 한편에 잠시 몸을 뉘어 쉴 수 있는 소파가 자리한 이유다. 그러나 현재 소파엔 먼지만 하얗게 쌓여있다.
▲ 당구장에 코로나19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
ⓒ 김종훈 |
4일 대한당구장협회, 대한볼링경영자협회 등 20개 중소상인 및 자영업자 단체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상은 없고 금지만 있는 집합금지조치는 위헌"이라며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에 대해 2차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지난달 29일 1차 헌법소원 청구에 이어 두 번째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에 따르면, 전국 당구장의 지난 12월 매출액은 평년 대비 19.43%에 불과했다. 302만 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반면 당구장의 월 임대료는 평균 43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정인성 대한당구장협회 전무이사는 "전국 2만 5000명의 당구장 운영자 중 이미 20%가 폐업했다"라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일 코로나19 등과 같은 1급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자영업자에게 임대료와 영업이익의 최대 70%까지 보상하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발의된 특별법에는 당구장과 같이 '집합금지' 대상에 대해 정부가 70%, 임대인이 30% 임대료를 부담하도록 명시됐다. 식당과 같이 '집합제한' 대상의 경우엔 임차인이 50%, 정부 30%, 임대인 20% 비율로 분담하도록 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야권 단일화 관심 없다, 서울을 가능성의 도시로"
- 헌정사상 최초 판사탄핵소추 가결, 헌재의 판단은?
- "판사는 신입니까?" 179명 찬성 끌어낸 이탄희 국회 연설 다시보기
- 하사의 삶 짓밟고도... 한국 육군, 참 못났다
- 최악의 미얀마, 아웅 산 수치의 결정적 약점
- 법관 탄핵 가결, 판사가 드디어 인간이 됐다
- 홍준표 "대선경선 나가려고?"... 정세균 "본인 얘기?" 응수
- 미 정보당국자 "북한의 가장 큰 안보우려는 미국 아닌 내부"
- 조해진 "대법원장, 정권과 짜고 탄핵" vs. 정세균 "사실 아냐"
- 이인영 "한미연합훈련,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식 찾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