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애플, 대리점 시연폰 강매 갑질로 작년에만 300억 챙겼다

정길준 2021. 2. 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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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의의결 내용에서 빠져, 대리점 '분통'
서울 중구 프리스비 명동점에서 고객들이 아이폰12 시리즈 기기들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플이 국내 이동통신 대리점에 시연폰을 강매해 작년에만 300억원 가까이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최근 이동통신사에 광고비와 수리비 등을 떠넘기는 '갑질'에 대한 규제 당국의 제재(동의의결)에 이 내용이 빠져 대리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4일 일간스포츠가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이하 이통유통협)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출시된 '아이폰12 시리즈' 4종의 시연폰을 마련하기 위해 각 대리점은 348만100원을 지불했다. 현재 전국에는 8000여 개의 휴대폰 대리점이 존재하는데, 작년 시연폰 구매에만 총 278억4080만원이 든 것이다.

일간스포츠가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로부터 확보한 아이폰12 시리즈 대리점 시연폰 가격표.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시연폰을 구매하는 대리점에 20~30%의 비용을 지원한다. 아이폰12 시리즈의 경우 최소 27%에서 최대 29%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줬다. 삼성전자는 최근 출시한 '갤럭시S21 시리즈'를 기준으로 공식 체험존인 'S존'을 설치한 대리점에 40%, 그렇지 않은 곳에는 30%를 지원했다.

문제는 애플의 시연폰 강매 정책이다. 삼성전자와 비교해 지원 금액이 적을 뿐 아니라 시연폰을 진열하지 않은 대리점을 대상으로 한 갑질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통유통협 관계자는 "애플은 시연폰을 구매하지 않은 대리점에 신규 단말기 판매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또 대리점이 시연폰 구매 후 6개월이 지나야 직원이나 중고폰 사업자, 고객에게 팔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1년 동안 시연폰을 판매하지 못 하게 했지만, 그나마 2020년에 6개월로 완화한 것이다"고 말했다.

애플은 또 수시로 대리점을 모니터링해 신규 단말기를 진열하지 않은 곳은 곧바로 이동통신사에 전달해 항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대리점이 시연폰을 진열하지 않아도 신규 단말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시연폰 구매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 중고로 파는 시기도 제약이 없다.

애플의 시연폰 구매 후 일정 기간이 지나 고객에게 판다고 해도 손실은 고스란히 대리점 몫이다. '아이폰12 프로'나 '아이폰12 프로 맥스'는 중고 시세가 높아 고객에게 팔 때 손실률이 10% 미만이지만, '아이폰12'나 '아이폰12 미니'는 가격이 30~40% 가까이 떨어져 애플이 보탠 지원금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전국 대리점들은 매해 수백억원의 피해가 발생하자 2018년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으며, 2019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던 추혜선 전 정의당 의원이 지원 사격을 했는데, 갑자기 LG유플러스 비상임 자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제대로 끝을 보지 못했다.

공정위는 지난 3일 애플이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고객 보호·중소기업 상생을 도모하는 내용의 동의의결안을 확정했다. 이통사를 상대로 갑질을 한 것에 대한 조치다. 그런데 동의의결 협의 과정에서 대리점 시연폰 강매 갑질 개선은 논의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동의의결은 공정위가 문제의 사업자가 내놓은 자진 시정 방안이 타당할 경우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로, 애플은 1000억원을 내고 이통사 갑질 혐의에서 벗어났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통사들로부터 광고비, 보증 수리비를 받은 행위와 특허권 무상 라이선스 조건 설정 등 동의의결 관련 6건에 대해서만 의견이 오갔다"며 "시연폰 강매와 관련해선 신고가 접수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정길준 기자 jeong.kilj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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