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도보다리와 원전 의혹

2021. 2. 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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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남북 데탕트 국면의 몇몇 장면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기 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냈다.

보수 야당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일을 비밀리에 추진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배경에는 바로 2018년의 뜨거웠던 남북 대화 무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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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택 정치부 차장


2018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남북 데탕트 국면의 몇몇 장면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기 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냈다. 이 회담은 당시 12시간에 달했던 남북 정상의 일정 가운데 일체의 음성 지원 없이 영상만 공개된 유일한 것이었다. 카메라가 두 정상을 비추는 동안 주변의 새 소리가 함께 들리도록 한 연출도 흥미로웠다. 도보다리에 새로 설치한 벤치에 앉은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마주 보고 제스처를 하면서 한참을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경청하면서 동의하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무언가 되묻는 것 같았다. 30여분간 생중계된 이 벤치 회담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공개된 것은 없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도보다리 회담을 궁금해하는 기자들 질문에 자신도 궁금하다고 답했다.

2018년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진행된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다. 김 위원장이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문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갑자기 성사된 회담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다음 날 2차 정상회담 내용을 전하면서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헤어지기 전에 서로 끌어안으며 인사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자신의 얼굴을 문 대통령의 양 볼에 가져다 댔다. 스위스 유학을 다녀온 김 위원장의 ‘유럽식 볼 인사’라는 낯간지러운 기사를 낳게 한 장면이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중국식 사회주의 인사법을 과포장해선 안 된다”면서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당시의 남북 대화는 분명히 이전과 다른 것이었다. 유럽식이건 중국식이건 간에 남북 정상이 별 준비도 없이 만나 교감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당시는 정부 당국자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까지 나서서 창의적인 비핵화 해법과 남북 교류 활성화 방안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최근 북풍 논란을 일으킨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문건을 만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역시 한반도의 봄에 걸맞은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압박 또는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압박을 받지 않고서야 내부 검토 자료를 만드는 공무원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이라는 내용을, 그것도 문건의 가장 윗부분에 ‘※’ 표시를 하면서 적어놨을 리 만무하다(이와 비슷한 양식의 공문을 찾기도 매우 어렵다).

문제의 원전 관련 문건이 처음 생성된 시점은 1차와 2차 남북 정상회담 사이였다. 이 기간에 남측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대북 확성기 방송시설을 철거했다. 북한은 기자들을 불러 놓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문에 명시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약속을 착착 이행해가던 중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이 “우리도 이렇게 빨리 진도가 나갈 줄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로 남과 북은 가까웠었다.

보수 야당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일을 비밀리에 추진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배경에는 바로 2018년의 뜨거웠던 남북 대화 무드가 있다. 남북 정상이 불투명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번개 회동을 할 정도로 가까웠으니 북한의 전력난을 덜어주는 약속을 맺었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색깔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런 의혹 제기에는 남북 대화뿐 아니라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정보공개 수준이 국민적 관심이나 기대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탓도 있다.

김경택 정치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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