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사법이 정치화 됐다..명백한 삼권분립 위반"

이수정 2021. 2. 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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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발언에 "입법부 예속" 비판
"사법농단 사태 보고 뭘 배웠나
임 판사 사표 안 받아준 것 자체가
김 대법원장의 직권 남용 해당"

“재판 이외의 사정으로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탄핵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국회와 내응(內應·몰래 적과 내통)하는 듯한 발언이 대법원장 입에서 나왔다는 건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입니다.”

4일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탄핵 추진 움직임을 이유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의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데 대해 분노를 표하면서다. 전날만 해도 의혹을 부인했던 김 대법원장은 이날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사실과)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녹취록.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법원은 들끓었다.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에 따른 법원 신뢰도 추락도 문제지만, 판사들이 보다 심각하게 여기는 건 그의 발언들이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 및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 훼손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에서 대법원장은 배운 것도, 그로 인해 바뀐 것도 전혀 없다는 의미”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행정부에 너무 예속됐던 것이 문제고, 지금은 그 상대가 입법부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전날의 문희상 국회의장 초청 만찬과 당일의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서 이틀 연속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발언의 배경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의 행보에 대한 실망감까지 더해지면서 김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 강도는 한층 강해졌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정치권과 법원 내부의 정파적 의견에 대해 중심을 잡지 못한, 우유부단했던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대표적으로 표출된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그동안 법원행정처 판사 수 감축 등 내용의 개혁안을 보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법원 수장이 (사법 독립을 중요시하지 않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개혁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부 판사는 대법원장 거취에 대한 언급도 서슴지 않았다. 한 부장판사는 “이 건은 대놓고 저지른 범죄며 김 대법원장 스스로 거취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탄핵 추진 언급 자체가 탄핵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법원장의 행위가 불법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당시 임 부장판사가 사직하는데 징계 등 결격사유가 전혀 없었다”며 “사표를 수리 안 할 정당한 이유가 전혀 없었던 만큼 이유 없이 권한을 남용해 사직하지 못하게 한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인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이날 직무유기와 명예훼손 혐의로 김 대법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이 커지고 있다. 김종민(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사법의 정치화에 대해 평가할 수 있을 만한 중대 사건인 만큼 대법원장이 사퇴에 준하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 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 외풍으로부터 삼권분립과 사법독립을 위해 나서야 할 사람”이라며 “대법원장의 자질이 전혀 없다는 걸 자신이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길에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안타까운 결과”라며 “임 부장판사와 실망을 드린 모든 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취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수정·박현주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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