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대법원장 대화 녹취파일 공개.. 야당, 김명수 대법원장 맞불 탄핵 추진할 듯(종합)

최석진 2021. 2. 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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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 관한 기사를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4일 국회에서 가결된 가운데 임 부장판사가 이날 공개한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취파일의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특히 전날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한 김 대법원장의 해명이 녹취파일을 통해 하루 만에 거짓으로 판명되며, 야권에서는 "탄핵 대상은 김 대법원장이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의석 배분을 고려할 때 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실제 발의되더라도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사법권 독립을 위해 정치권의 외풍으로부터 법관들을 보호하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될 사법부 수장이 도리어 '정치권의 눈치를 봤다'는 사유로 탄핵소추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김 대법원장 본인이나 사법부 전체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의힘 탄핵거래 진상조사단 발족… 김 대법원장 탄핵 추진도

야권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려는 임 부장판사에게 정치권에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 추진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해야 될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한 사실이 녹취파일을 통해 드러나자 김 대법원장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김 대법원장이 여당의 탄핵 추진을 염두에 두고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후배의 목을 권력에 뇌물로 바친 것"이라며 "사법부 스스로가 권력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수차례 김 대법원장이 진즉 탄핵을 당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사법부 독립성 차원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김 대법원장은 오욕의 이름을 사법사에 남기지 말고 본인의 거취를 결정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법을 농단한 대법원장은 당장 사퇴하라'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사법부의 수장이란 사람이 대놓고 정치적 고려를 한다며 민주당의 눈치를 살피고 1심에서 무죄 선고된 후배법관을 탄핵시키기 위해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며 "거기에다 사법부의 수장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을 겨냥해 '탄핵거래 진상조사단'을 발족했다. 진상조사단은 김기현 의원이 단장을 맡았고 김도읍· 장제원·유상범·김웅·전주혜 의원 등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로 구성됐다.

5일 오전 김 단장이 대법원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 뒤 조사단원 전원이 대법원을 항의방문해 진상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대법원 앞 1인 시위는 다음주 월요일 오전 주호영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릴레이 시위가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은 김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 대법원장에게 거짓말 논란의 진상을 직접 물으려고 한다"며 "별도로 김 대법원장 탄핵안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정 사상 첫 법관탄핵에 대법원장 거짓말까지… 충격에 휩싸인 법원

이날 가장 큰 충격에 휩싸인 건 법원 내부였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된 것도 충격적이지만 대법원장의 공식적인 해명이 하루 만에 거짓말로 드러난 것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법관이 대법원장을 면담하며 대화 내용을 녹취하고 그 녹취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야 되는 상황을 개탄하는 판사도 적지 않았다.

재경지법의 A부장판사는 "형사재판에서도 무죄가 났는데, 이미 사의를 표명하고 재임용 신청도 포기해 퇴직을 앞둔 임 부장판사를 기어이 탄핵심판으로 몰아가는 저의가 의심된다"며 "어차피 헌재가 '각하'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탄핵을 밀어붙이는 건 분명 다른 목적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 B씨는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판사들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본인 입으로 정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얘기한 건 충격적"이라며 "결국 본인이 비난받게 될까하는 우려 때문에 후배 법관을 희생시킨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C부장판사는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 해도 판사가 대법원장과 면담하면서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놓고, 그걸 자신이 난처해진 상황에 공개한 건 충격적"이라며 "거짓 해명을 한 김 대법원장이나 몰래 녹취한 파일을 공개한 임 부장판사나 둘 다 문제가 있다"고 탄식했다.

한편 이날 오후 법원 내부망에 이번 사태와 관련된 첫 실명 글도 올라왔다.

정욱도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망에 '지금 누가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통해 "언론과 논지에 따라 두 분이 마치 법원 내에서 각각 어느 한편의 정치 진영을 대표하는 양 묘사되고 있다"며 "심각하게 왜곡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임 부장판사에 대해 "정치적 함의가 큰 사안에서 공방의 큰 축인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재판 수정을 시도해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받을 만도 하다"며 "재판 독립이라는 중대한 헌법상 가치가 훼손된 면이 분명히 있고, 이에 대해 형사절차나 징계절차와 별도로 헌법적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뚜렷하다"고 탄핵소추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탄핵 추진에 정치색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헌법상 절차에 없는 언행으로 이를 막아야 한다는 요구는 초헌법적 주장, 정파적 논리"라며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불가피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헤프닝에 대해서는 "사직 반려 경위에 관해 정정당당히 대응하는 대신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듯한 외관을 만든 점, 특히 논란이 불거진 후 사실과 다른 해명으로 논란을 부추긴 점은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정 부장판사는 "탄핵도 비판도 정치 과정의 하나이고 헌법상 보장되는 일이지만, 사법부 구성원들까지 외부의 부당한 정치화에 휘말려 자중지란을 벌이는 일이 부디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명수 "탄핵소추안 의결 안타까운 결과"… "임 부장판사·국민에 사과"

이날 김 대법원장은 퇴근길에 대기 중이던 기자들에게 임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또 임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파일로 인해 자신의 거짓 해명이 드러난 것과 관련 임 부장판사와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은 퇴근길 임 부장판사의 녹취록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만난 지 9개월이나 가까이 지났고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며 "이유야 어찌됐든 임 부장판사와 실망을 드린 모든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김 대법원장은 국회에서 임 부장판사에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것을 두고 "안타까운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이 또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법원장은 녹취파일과 관련해 사법부 수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봤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과 향후 거취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날 국회에서는 여당의 주도로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찬성 179표·반대 102표·기권 3표·무효 4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전날 언론보도를 통해 임 부장판사가 지난해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고 김 대법원을 면담했으나 김 대법원장이 사표를 수리하면 자신이 국회의 탄핵 논의를 막는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사표를 반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전날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다"며 전면 부인했지만 이날 임 부장판사가 녹취파일을 공개하면서 거짓으로 확인된 것.

김 대법원장은 녹취파일이 공개된 뒤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지난해 5월경에 있었던 임성근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녹음자료에서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울러,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한편 임 부장판사 측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대법원의 해명에 대한 추가 입장'을 통해 "어제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한 대법원장의 대국민, 대국회 답변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드린 바 있다"며 "하지만 진실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 국민들이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어제 대법원의 입장표명에 대해 저희 측의 해명이 있었음에도 언론에서는 '진실공방' 차원에서 사실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며 "더구나 이미 일부 언론에서 녹취파일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침묵을 지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보더라도 도리가 아니고, 사법부의 미래 등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도 녹취파일을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돼 부득이 이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녹취파일 공개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임 부장판사 측이 공개한 4개의 녹취파일에는 임 부장판사가 지난해 사표를 제출할 당시 김 대법원장과 면담하며 나눈 대화 내용이 담겨있다.

녹취파일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 5월 22일 임 부장판사와 면담에서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며 "지금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고 했다.

또 김 대법원장은 "탄핵이라는 제도,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일단은 정치적인 상황은 다른 문제니까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할 수 없게 돼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사법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논의를 의식해 사표 수리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임 부장판사에게 양해를 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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