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혔지만 열 수있는' 한국 전통가옥과 흙마당.. 집이 전하는 사연들

김현길 2021. 2. 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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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은 전원주택들은 방이 막히고 마당은 열려 있다.

'열려 있지만 막아야 하는 곳'이 미국의 단독주택이라면 '닫혀 있지만 열 수 있는 곳'이 한국의 전통가옥인 셈이다.

전통가옥의 마당은 조경수나 돌이 깔린 정원이 아닌 흙바닥이 보통이다.

전통가옥의 마당에 연원을 둔 70-80년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들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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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집의 사연, 신동훈 지음, 따비, 272쪽, 1만8000원.


최근 지은 전원주택들은 방이 막히고 마당은 열려 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봐온 주택 단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마당까지 시야가 트여 개방감이 느껴지지만, 온전한 의미의 개인 공간이라 하기 어렵다. 실내가 훤히 드러나는 밤에는 커튼으로 창을 가려야 한다

책 ‘집의 사연’에서 설명하는 한국의 전통가옥은 이와 반대다. 담으로 외부와 차단하지만 방은 열어놓을 수 있다. 대청과 방에서도 편안한 복장으로 있을 수 있는 건 어중간한 높이의 담 때문이다. ‘열려 있지만 막아야 하는 곳’이 미국의 단독주택이라면 ‘닫혀 있지만 열 수 있는 곳’이 한국의 전통가옥인 셈이다.

전통가옥의 휑한 마당이 주는 의미도 남다르다. 전통가옥의 마당은 조경수나 돌이 깔린 정원이 아닌 흙바닥이 보통이다. 묘지를 떠올리는 것을 꺼려해 풀을 깔지 않았다는 설명이 그럴 듯하지만 책은 다른 이유에 집중한다. 문 밖에 나서면 밟게 되는 길, 동네 공터의 바닥이 모두 흙인 상황에서 바깥세상과의 연결을 위해 흙바닥을 유지한다고 설명한다.

휑한 마당은 정원의 화려함은 없지만, 사람들이 엇갈리는 무대 역할도 해왔다. 전통가옥의 마당에 연원을 둔 70-80년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들이 대표적이다. 아들이 마당 수도꼭지에서 세수를 하는 중에 부엌에서 나오는 어머니와 마주치고, 약수를 받아 마당으로 들어오는 아버지가 둘 사이에 끼어든다. 건넌방에 사는 젊은 총각까지 더해지면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마당은 정원의 화려함이나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쓰임만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아도 풍성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무언가 일어날 수 있는 긴장감 가득한 무대가 바로 마당인 것이다.”

책이 전하는 집의 사연은 전통 건축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창, 방, 배열, 외양, 마당, 담, 자연 대(對) 집을 소재로, 각 소재에 맞는 국내외 건축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우디, 안도 다다오, 루이스 칸 같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나 건물 등이 예시된다. 국내 건축이나 건축 문화에 대한 저자의 뾰족함도 담겨 있다. 일례로 방패연을 본떠 상부를 만든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 갓 모양을 본떠 만든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전통을 가져왔으나 건물의 의미와의 접점이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판에 박힌 아파트 구조에 그나마 변화를 줄 수 있는 ‘발코니’를 확장해 그 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에 대한 일침도 잊지 않는다. 군데군데 맞춤법이 틀려 거슬리는 것은 흠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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