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사회 전염시키는 '감염병'
애덤 쿠차르스키 지음, 고호관 옮김
세종서적, 380쪽, 1만9000원.
감염재생산지수(R값)는 ‘감염자 한 명이 평균적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감염자 수’를 뜻한다.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이후 익숙해진 용어 중 하나다. 정부 브리핑이나 언론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 R값은 감염병 창궐 여부를 판단하는데 유용한데, 1보다 크면 평균적으로 감염 수준이 올라가 대규모 감염병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2003년 발생한 사스의 R값은 2~3이고, 인간이 박멸한 유일한 전염병인 천연두는 4~6이었다. 가장 높은 것은 홍역으로, 홍역 환자 1명은 평균 20명 이상을 새로 감염시킬 수 있다. 병에 따라 R값이 다른 건 네 가지(전염성을 띠는 기간, 전파 기회의 평균값, 전파 확률, 감염 인구 비율)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감염 사례가 얼마나 많이 퍼질까’라는 아이디어를 역학 말고 다른 사회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는 이같은 물음에 답을 주는 책이다. 수학자이자 역학자인 애덤 쿠차르스키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 교수는 생물학이나 의학의 전염 원리를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입해 설명한다. 금융위기, 총기사고, 가짜뉴스, 컴퓨터 바이러스 등의 문제에 감염병 연구 성과를 적용하고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들려준다.
책이 질병 밖 감염 사례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다. 당시 공포가 시스템을 장악하면서 투자자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너도나도 자산을 팔았고, 은행도 연달아 돈줄을 죄었다. 금융위기 전 몇 개의 대형 은행이 네트워크를 지배해 슈퍼 전파자가 될 가능성을 키운 점, 기업별 위험 분산 방법마저 비슷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쉽게 시스템을 만든 것도 위기의 전파 가능성을 높였다. 책은 은행 간 대출로 생긴 연결고리와 에이즈 같은 성병 연구를 비교한다. 영국은행 수석 경제학자 앤디 홀데인은 “전염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리먼(브러더스)이 금융 시스템을 무너뜨린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총격 사건을 포함한 폭력도 전염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시카고 총기 폭력 패턴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해당 연구는 총기 폭력이 사회적 접촉과 얽힌 경우가 많다는 데서 출발했다. 46만2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00명이 총에 맞을 때 마다 후속 공격이 63건 일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R값으로 따지자면 0.63이다. 1보다 아래로 대다수는 총격 한 번에 그쳤지만 대규모 전염과 마찬가지로 500건이나 되는 연관된 총격 사건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미국 도시 살인사건 지도에 나타난 군집화 모양이 방글라데시 콜레라 지도와 닮은 것이나 르완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소말리아의 콜레라 그래프와 비슷하다는 것도 폭력과 전염의 상관관계를 떠올린다.
온라인상에서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이나 가짜 뉴스 등의 전파 메커니즘을 다룬 부분은 온라인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적잖은 시사점을 안긴다. 그 중 온라인 인플루언서의 효용에 대한 설명이 우선 눈에 띈다. 온라인상에서 빠른 확산이 일어나기 위해선 ‘영향에 아주 민감하면서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 필요한데, 둘 다 만족시키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또 인기인은 인기인끼리 집단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 초기 확산은 빨라도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벗어나기 힘들다.
더 인기를 끄는 콘텐츠 유형을 파악했다 해도 그 같은 결론이 얼마 못 간다는 것,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밈들은 “적당한 인기를 누렸던 것”,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이 보통 팔로어가 적음에도 가짜뉴스가 갖는 새로움 때문에 정보가 빨리 퍼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정치인이나 기자에게 인용되기 위해 이들을 타깃으로 잘못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흘리기도 한다. “대중이 비주류 웹사이트를 피한다 해도 가짜 정보가 널리 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정보 세탁의 한 형태다.” “계량화가 목적이 되면 더는 좋은 계량화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통해 클릭 수나 ‘좋아요’에 목매는 상황을 돌아보게도 한다.
‘사회적 감염’의 해법 역시 생물학적 감염과 연결된다. 감염병의 경우 감염 고리를 끊거나 백신을 통해 집단 면역 체계를 구축한다. 총기 폭력 사건에선 백신을 접종하는 천연두 관리와 비슷한 방식이 도입됐다. 이미 알고 있는 사회적 고리를 통해 전파되는 총기 폭력사건의 특성상 사건 관련자를 접촉해 보복 공격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실효성은 수치로 입증됐다. 관련 제도를 도입한 볼티모어 지역의 경우 프로그램 도입 이후 2년 간 총격 사건 35건과 살인사건 5건을 예방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온라인에서 가짜 뉴스 같은 잘못된 정보의 전염을 막기 위해선 이를 가급적 빨리 교정할 필요가 있다. 책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당시 가스탱크가 폭발해 독성 비가 내릴 수 있다는 한 트위터 사용자의 주장을 예로 든다. 지자체에서 소문을 바로 잡는 트윗을 두 시간 더 빨리 올렸다면 소문이 퍼지는 정도를 25% 정도 줄였을 것이란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또 페이스북의 경우 사기성 글을 공유했을 때 친구들이 바로 지적한다면 당사자가 해당 글을 삭제할 확률이 20%까지 높아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기도 한다. 인도에선 거짓 소문과 관련한 폭행이 발생하자 해당 애플리케이션 회사가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 대상을 100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총기 난사나 테러 같은 범죄 보도 시 불필요한 내용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론이 증폭하지 않아도 어차피 퍼지게 되어 있다’는 회의론도 있지만 온라인 전염에 대한 연구 결과는 “증폭하는 방송 이벤트가 없으면 콘텐츠는 웬만해선 멀리 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저자는 이처럼 사회 현상 등을 다루는 데 감염병 연구 방법론의 효용과 실제 적용 사례를 반복해 들려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살’ ‘가짜뉴스’ 같은 사회적 전염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그 해답을 감염병 연구 방법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폭력을 단순히 ‘나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로 보지 않고 감염병처럼 치료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1880년대와 1890년대에 ‘나쁜 공기’ 때문에 병에 걸린다는 생각을 거부하던 일이 반복된 것이다.”
감염병이나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전망하는 책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수학자가 알려주는”이라는 말이 제목에 있지만 어려운 수학 개념이 나오거나 수학 원리를 적용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진 않는다. 원제는 ‘전염의 규칙(The Rules of Contagion)’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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