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글쓰기로 참사랑 일깨우는 착한 선생님의 노트

2021. 2. 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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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지음, 문학동네, 284쪽, 1만6000원
작가이면서 글쓰기 교사인 이슬아가 펴낸 ‘부지런한 사랑’은 10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의 기록이다. 책에 실린 아이들의 모습과 글을 통해 “사랑과 우정과 존중을 배달하는 라이더로서의 글쓰기”를 발견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 박혜진 평론가가 소개한 ‘기억의 발굴’은 저자 웬디 C. 오티즈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회고록으로 미국 포틀랜드에서 최초 출간되었다. 책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대만의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하는데, 이는 하나의 독서 경험이 이전의 다른 독서 경험을 끌어올리는, 애틋하고 지적인 연상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두 책에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청소년 여성이 있고 ‘선생’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악용하여 그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어른 남성이 있다. 이러한 연상을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일이다.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기억의 발굴’이 픽션의 형식을 빌린 회고록이고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논픽션과 다름없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결국 두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은 맥락을 품는다. 그루밍 성폭력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피해자성. 문학은 오목거울이나 볼록렌즈 같아서, 폭력의 양상을 그대로 내비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독자인 우리는 거기에 비친 우리의 얼굴을 결국 알아볼 수 있다. 미간을 구긴 채 끝내 들여다보면 일그러지고 구부러진 진실을 살필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게 가해자의 변명이 아니듯이, 피해자의 ‘피해자다움’ 또한 아닐 것이다.

가해자는 교사였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대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자리다. 우리나라도 일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교사에 의한 성범죄 뉴스가 잦다. 밝혀진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사태의 심각성과 사회적 위기감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가볍고, 밝혀지지 않은 가해 사실은 이보다 적지는 않으리라 짐작된다. 어떤 이들에게 학교는 첫사랑의 추억이 깃든 낙원이 결코 될 수 없다. 되레 그들에게 학교는 고통의 기억이 발굴되는 공간이다. 많은 경우 고통의 발생은 학교의 권력자인 선생님에게서 비롯된다. 근래 몇몇 학교에서 있었던 ‘스쿨미투’ 운동은 학교를 더는 고통의 공간으로 두지 않겠다고 하는 피해자들의 선언이지 않을까.


분위기를 바꾸려 좋은 선생님 생각을 해보았다. 내게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문예반 담당 선생님이 있었다. 그가 내게 해준 일은 “너는 글을 참 잘 써” 하는 간단한 칭찬이었다. 칭찬받을 일 별로 없는, 야생이나 사막 같던 고등학교 시절 저 짧은 말은 나를 계속 쓰게 했다.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이슬아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며 그 시절의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안타깝게도 이슬아만큼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한 것 같다. 문예반 선생님은 이슬아 선생님만큼 다정하지 않았다. 이슬아 선생님처럼 학생을 사랑한 것 같지도 않다. 나는 그저 선생님의 짧은 칭찬을 하나뿐인 동아줄처럼 붙잡았던 듯하다. 그만큼 간절하고 딱 그만큼 취약한 나날이었으니까. 이 간절함과 취약함은 가끔 방향을 지닌 꿈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주 결점과 약점이 되고는 한다. 어떤 어른은 지독하게도 이곳을 파고든다.

다시 좋은 선생님 이야기로 돌아오자.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는 출판인이자 탄탄한 사유와 좋은 문장을 지닌 작가로 알려진 이슬아는 사실 ‘글쓰기 선생님’으로서의 자의식을 오랫동안 우선하여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럴 만하다는 생각을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며 새삼 반복하게 되었다. ‘부지런한 사랑’은 10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의 이슬아의 기록이다. 책에는 이슬아의 학생이 되었던 청소년 작가들의 글이 있는데, 한 편 한 편 허락을 받아 실렸을 그 글이 어떤 이론서나 학습서보다도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거기에 작가가 묘사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글의 매력을 따라 읽다 보면 생전 본 적 없는 이 아이들에게 깊디깊은 애정까지 생겨 버린다. 그렇다, 이슬아의 영향력은 나에게 또 다른 사랑의 능력을 심어 주었다. 자신의 사랑을 알려줌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실로 부지런한 사랑이 아닐 수가 없다.

책은 또한 글쓰기의 가능성을 종이에 펼쳐놓는다.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글씨와 그것과 별다를 게 없는 작가의 필체에서, 사랑과 우정과 존중을 배달하는 라이더로서의 글쓰기를 발견한다. 오티즈와 팡쓰치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처음 글을 쓰는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바로 이슬아 같은 선생님을 만나면 될 텐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 그의 책을 먼저 읽기 권한다. 그의 모든 저서에 그의 부지런한 사랑이 있을 것이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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