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환자 내쫓는다" 전담 요양병원 지정에 날벼락

김민욱 2021. 2. 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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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서울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보호자들이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 지정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 보호자


4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 “일방적인 강제지정” “대책 없는 강제 퇴원·전원” 문구가 적힌 붉은색 현수막이 펼쳐졌다.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 보호자 8명이 추운 날씨 속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 병원은 지난달 8일 서울시·중앙사고수습본부에 의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됐다. 262명 환자(3일 기준)가 입원 중이지만 오는 15일까지 병실을 비워줘야 한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진 환자와 그 보호자로서는 날벼락 같은 조처다. 보호자들은 찬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부당하다”고 외쳤다.

정부는 지난 1월 요양병원 집단감염 대책으로 '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을 내놨다. 요양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비감염 환자와 빨리 분리할 수 있도록 전담 요양병원을 마련해 따로 돌보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잇따라 터지자 방역당국은 해당 병원에 코호트 격리(동일집단 격리) 조치를 내렸다. 병원 내 감염 환자와 비감염 환자, 의료진 등을 통째로 격리했다. 그러나 감염에 취약한 노인 환자들이 모인 요양병원에 대한 코호트 격리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감염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병원 내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노인 환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한 채 숨지기도 했다. 전담 요양병원은 뼈아픈 실책 이후 내놓은 대책이다. 11곳이 지정됐고 현재 7곳이 기존 환자를 내보내고 가동에 들어갔다. 행복요양병원을 포함한 4곳은 환자·보호자, 병원 측 반발로 아직 문을 열지 못했다.


"뚜렷한 전원 대책 없이 내쫓아"
행복요양병원의 보호자 대표 현모(57)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시가 지난 1일 자로 (전담 요양병원 지정과 관련한) 강제시행 명령을 발동했다”며 “4일부터 환자를 소산(퇴원·전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뚜렷한 전원 대책도 없다. 단순히 수도권 내 120여 개 요양병원이 있으니 그쪽으로 옮겨주겠다고 한 상황이다. 시흥으로 갈지, 안산으로 갈지 알 수 없다. 엄동설한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말했다.

이 병원 내 장기요양환자는 대부분 80~90대 중증 환자다. 파킨슨병·뇌졸중 등을 앓아 콧줄을 달고 산다. 보호자들은 "전원하게 되면 평소 돌보던 주치의·간호사·간병인과 떨어져 환자의 안정이 깨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병원이 구립이라 믿음이 간다고 했다. 보호자들은 시설·환경이 우수한데다 로봇보조 보행치료, 수중치료 등 특화 프로그램까지 잘 운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낙 인기라 대기만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정도라고 한다. 보호자들은 간병인을 통해 환자가 동의한 강제전원 거부서를 받았다. 200장 이상이 모였다.

보호자들은 “환자에게 간호사·간병인은 가족과 같다”며 “강제전원은 가족을 두고 혼자 이사가라는 것이다. 외부 시선으로는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우리 부모님의 건강이 달린 문제다”고 말했다.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사진 홈페이지 캡처


병원 측도 지정 반대
병원 측도 환자·보호자와 입장이 같다. 장문주 행복요양병원 원장은 “환자를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기는게 쉽지 않다. 또 감염병 전담요양병원으로 전환되면 240명 의료진이 대부분 ‘사직하겠다’는 뜻을 밝혀 난감한 상황이다. (서울시·중수본이) 지정을 다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특히 장 원장은 “서울시는 감염병관리법 37조에 따라 감염병관리기관 지정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하지만 조치 대상기관이 병원·종합병원으로 한정돼 있다. 요양병원은 포함되지 않는 등 위법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병원 측은 전담병원 지정이 취소되지 않으면 행정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중구 서울시청. 뉴스1


서울시 "계속 설득할 것"
이에 대해 윤보영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법적 문제가 없다”며 “감염병 전담요양병원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윤 과장은 “현재 환자들이 원하는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섭외, 이송 등을 지원하고 행복요양병원도 계속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수본 관계자는 “12월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터진 뒤 요양병원협회 쪽에서 전담 요양병원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했다. 이에 중수본이 집단감염이 터졌던 시ㆍ도에 전담 요양병원 지정할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추천을 받아 지난 1월 초 지정한 것이다”라며 “행복요양병원의 경우 서울시의 유일한 공립 요양병원이라 서울시가 추천한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집단감염이 터졌을 때 환자를 볼 요양병원은 필요하다. 한 달 이상의 기간이 있었던 만큼 준비시간이 짧은 건 아니라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김준래 변호사(전 건보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는 “비상 상황에서 전담병원을 일시적으로 지정할 수 있겠지만 해당 병원의 기본권·재산권 제한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가야 한다”며 “무엇보다 충분한 소통 통해 정책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고 충분한 보상·지원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경·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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