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기업 '선한 독점' 말로만? 혁신 막는 '나쁜 독점' 안돼요

나건웅 2021. 2. 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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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업을 ‘선한 독점’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독점 폐해는 줄이고 플랫폼 효용은 극대화하는 방안을 여러 플랫폼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플랫폼 독점은 자연스러운 현상

▷혁신 저해하는 독점만 규제를

플랫폼 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규제는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공통 의견이다. 플랫폼 기업이 시장 경제에 주는 여러 순기능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용카드’의 예를 들면 이해가 쉽다. 신용카드 플랫폼은 신용카드 이용자와 가맹점을 연결하는데, 플랫폼 규모가 커질수록 이용자와 가맹점 모두 ‘윈윈’이다. 신용카드 이용자 수가 증가하면 가맹점 이익이 늘어난다. 반대로 가맹점 수가 늘어날수록 이용자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기 때문에 좋다. 독점을 막기 위해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플랫폼에서 얻을 수 있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되도록 클수록 좋다. 탐색 비용 같은 경제 주체 간 비효율이 줄어드는 것이다. 지역과 국적을 초월해 모든 것이 연결되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 그렇다”고 설명했다.

모든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독점과 대형화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에 한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게다가 모든 플랫폼에서 규모가 커질수록 경제 주체 효용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검색 플랫폼’이 좋은 예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색 결과로 노출되는 광고가 너무 많으면 이용자는 물론 사용 업체도 떨어져나갈 수 있다. 특히 검색 엔진이 본인 서비스를 우선 홍보하는 ‘자기 우대 행위’가 장기적으로 다른 입점 업체 배제 효과를 갖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신규 진입 경쟁자를 부당하게 배제하는 경우에도 규제가 필요하다. 그간 문제가 돼왔던 플랫폼 기업들의 ‘최혜국 대우 조항(MFN)’이 좋은 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숙박 플랫폼 ‘부킹닷컴(Booking.com)’은 숙박업소가 경쟁 플랫폼이나 숙박업소 자체 웹사이트에 예약을 올릴 때, 부킹닷컴과 같거나 더 낮은 가격을 책정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합리적 이유 없이 소비자와 사업자의 권리를 방해한다는 측면에서 규제 대상으로 지적받는다.

손영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이 혁신의 결과라면 문제 삼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혁신의 싹을 자르는 행위는 규제해야 한다. MFN 외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신생 업체의 새로운 서비스를 베껴 유입을 막는 행위, 또 지배적 지위에 있는 기업이 미래 대체재를 공급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매수해 잠재적으로 경쟁 상대를 배제하는 ‘말살 매수’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강압적인 ‘규제’가 아닌 자발적인 ‘공개’를 통해서도 독점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눈길을 끈다. 이용약관만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작성돼도 독점에 따른 폐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김진우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이 먼저 사용자에게 ‘대안’을 소개하도록 만드는 방안도 있다. 유럽연합 온라인 플랫폼 법안을 살펴보면, 검색 플랫폼이 자사 상품을 우선 노출하는 ‘차별 대우’조차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차별 대우 이유를 설명할 것을 요구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은 최근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들여 도시에 주택을 공급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거대 기술 기업이 지역 주택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비판에 사회 환원으로 대응한 선한 독점 사례다. <아마존 제공>

▶플랫폼 종류 워낙 다양해져

▷일괄 규제 피하고 실태 조사 꼼꼼히

모든 플랫폼에 같은 잣대를 들이밀어 ‘일괄 규제’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전문가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답했다. 최근 플랫폼 종류가 워낙 다양해진 만큼 각각의 특성을 반영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플랫폼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정보 검색 플랫폼’을 필두로 쿠팡·이베이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 페이스북·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있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 등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배달의민족이 속한 ‘O2O 플랫폼’ 등 그 종류를 셀 수도 없다.

게다가 최근 플랫폼 종류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추세다. 네이버가 전자상거래에 뛰어들고 쿠팡이 OTT 플랫폼을 출범하는 세상이다. 이런 가운데 독점 플랫폼 일괄 규제는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조대곤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요새는 플랫폼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시장 자체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중이다. 영상을 제공한다고 해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동일한 플랫폼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플랫폼 범주를 규정짓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시장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실제로 해당 플랫폼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지도 알기가 매우 어렵다. 규제에 앞서 아주 면밀하고 정확한 실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국내 기업에 한정된 플랫폼 규제는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힘을 얻는다. 이수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EU가 최근 플랫폼 기업 규제 강도를 높이는 이유도 결국 자국 이익 확보를 위해서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 미국 플랫폼 사업자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국내 업체끼리 치열하게 경쟁 중인 한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시장은 유럽과 상황이 다르다. 각 시장 상황에 맞는 정책적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선한 기업으로 거듭나야

▷언론 지원 ‘구글’, 주택 공급 ‘아마존’

무엇보다 플랫폼 기업 스스로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점 기업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벗고 아군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SNS에서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한 페이스북은 매년 수억달러를 쓰면서 지역 언론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구글 역시 그동안 언론사 기사를 무료로 검색해 보여주던 관행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언론 기금’을 마련했다. 지난해 4월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빠진 뉴스 산업을 돕기 위해 ‘저널리즘 긴급 구제 펀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구글은 전 세계 140개국 5300개 언론사에 각각 5000달러에서 최대 3만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지난 1월 아마존이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들여 도시에 주택을 공급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마존은 자사 직원이 많이 근무하는 시애틀 등지에 저소득자를 위한 저가 주택을 2만채 이상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거대 기술 기업은 그간 인구 유입으로 지역 주택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플랫폼 기업이 오랫동안 존속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으로 얻은 이익을 소비자와 사용자 그리고 사회에 나눌 필요가 있다. 무작정 사회 기부보다는 스스로 독점 부작용에 따른 폐해를 줄이는 방향으로의 맞춤형 지원이 좋다. 또 다른 플랫폼 혁신 기업을 육성하는 사업도 부정적 이미지 희석에 효과적일 것이다.”

조대곤 교수의 제언이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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