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버는 건지 쓰는 건지.." 어느 농부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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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균 기자]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겨울의 긴 농한기를 보내는 것으로 해마다 제주도를 생각했었다. 번번이 때를 놓쳤는데 올 겨울은 제주도에 있는 페이스북 친구의 도움으로 감귤 농장에서 일하며 쉬고 있다.
마을과는 거리가 있어서 인터넷망 연결이 되지 않았고, TV도 없지만 불편함은 없다. 며칠에 한번씩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즐거움과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좋다.
▲ 감귤수레 20kg 무게의 컨테이너 상자 2개를 실은 손수레로 감귤을 옮긴다. |
ⓒ 오창균 |
나의 시간과 바꾼, 일당을 받는 농사
감귤의 꼭지를 가위로 따는 일이 여성노동자의 일이라면, 남성노동자들은 가득 채우면 10키로그램 정도 무게가 되는 감귤 바구니를 20키로그램 무게의 컨테이너 상자에 담아서 옮기는 일을 한다. 감귤나무 사이로 수레를 끌고 다니며 바구니를 비우고, 상자를 옮기느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감귤은 11월에서 2월까지 수확을 하는데 감귤 뿐만 아니라, 밭에서도 양배추, 브로콜리, 무우, 콜라비, 쪽파 등의 채소를 수확하느라 바쁘다. 제주도의 겨울은 농사일이 가장 바쁘고 일손도 부족하다. 때문에 육지에서 섬으로 농사일을 하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육지에서 섬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농사를 마치고 들어오는 이들도 있다. 겨울 농한기 몇 달 일과 휴식을 하려고 오는 경우도 있고, 농사 수입만으로는 어려운 살림에 보태려고 일당 품삯을 벌러 오기도 한다.
▲ 브로콜리 적당한 크기와 모양이 가격을 결정한다 |
ⓒ 오창균 |
뺄셈이 거듭되는 농사
어느 날은 감귤 농장 인근의 밭에서 브로콜리를 수확했다. 브로콜리 크기가 들쑥날쑥 한 것이 한눈에 봐도 농사가 잘 안 되었고, 그 이유를 농부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귀농한 지 8년이 되었지만, 내려오고 3년 동안은 밭을 구할 수가 없어서 이런저런 일을 했다.
주민들과 교류를 하면서 친분이 생겼고 소개로 감귤 농장을 임대하고, 채소밭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농사 짓기 좋은 밭은 아니었다. 육지에서 온 사람이 농사 짓기 적합한 밭을 임대하거나 구입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다고 했다.
서울의 가락동 도매시장으로 올라갈 브로콜리는 1등급의 크기만 골라서 수확을 했고, 8kg 박스에 두 줄로 쌓으면 20여 개가 들어갔다. 농부는 한 박스에 2만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면 잘 받는 것이라고 했다. 포장도 가격을 좌우한다면서 수확한 브로콜리를 골라서 본인이 직접 했다.
농협에 경매위탁을 맡긴 브로콜리는 다음날 서울로 운송되고 경매로 낙찰된 가격이 농부의 스마트폰으로 전달된다. 낙찰된 가격에서 10%정도는 위탁과 경매수수료를 빼고 입금된다. 농부는 입금된 금액에서 또 다시 뺄셈을 할 것이다. 인건비, 비료, 농약, 모종 등 각종 농자재 값을 빼고 남는 것이 농부의 몫이다. 그리고, 농지 구입으로 융자 받은 빚의 이자도 빼야 한다.
농협에 위탁한 브로콜리 상자를 내려놓고 돌아오는 트럭에서 그는 농사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인지, 돈을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제주도의 푸른 밭 너머로 파란 바다의 수평선이 붉은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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