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경제 해법 찾았다..善한 독점

명순영 2021. 2. 4. 16: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1998년 인터넷 결제 서비스 기업 페이팔(Paypal)을 창업해 온라인 상거래 주춧돌을 놓은 피터 틸(Peter Thiel)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담은 책 ‘제로투원(0 to 1)’에서 “경쟁은 피하면 피할수록 좋다. 경쟁을 피하고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것을 하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은 자신의 비즈니스가 ‘독점’으로 규정지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독점으로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라면서도 독점으로 인식되기는 피하는 것이다. 독점은 시장 경제에서 ‘악(惡)’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 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며 독점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 혁신에 앞선 1등 기업의 독식을 피하기 어렵다면 ‘선한’ 독점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색·SNS·상거래 플랫폼 ‘승자독식’ 혁신하며 확장…‘착한 중개자’로 키워야

‘Don't be evil(악해지지 말아라)’.

구글 설립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구글은 이상적인 회사”라며 이 같은 좌우명을 내세웠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도 담겼다. 이 모토는 구글이 전 세계 검색 플랫폼을 장악한 지금 더 주목받는다. 전 세계 모바일 검색 90% 이상을 독점한 구글은 검색 광고로만 1350억달러(약 149조원, 2019년 기준)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그야말로 ‘독점 중의 독점’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구글의 독점 형태는 전통적인 독점과는 다른 면이 있다. 전통적인 독점은 제품 생산과 유통망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석유 회사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을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는 석유왕이라고 불리는 록펠러가 1863년 세운 정유 회사다. 인수합병(M&A) 전략으로 회사를 키웠고 1880년 미국 내 석유 유통 95%를 장악했다. 1911년 독점금지법에 따라 34개 회사로 분할·해체될 때까지 제왕적 위치를 차지했다. 석유라는 제품은 물론 유통망까지 완전히 지배한 형태로 가격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졌다. 별다른 혁신도 필요 없었기에, 독점이 소비자에게 폐해로 다가올 수 있는 사례였다.

현대 사회에서의 독점은 주로 플랫폼 기업이 해당된다. 플랫폼 기업은 스탠더드오일처럼 생산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사용자를 연결, 네트워크 효과로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을 장악해나가는 식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 영향력을 더욱 높였다. 비대면이라는 메가급 트렌드에 1등 기업이 반사이익을 톡톡히 챙겼다. 구글이 검색 90% 이상 장악했고, 페이스북은 SNS 70%, 넷플릭스는 동영상 서비스(OTT) 60%를 차지했다. 아마존은 미국 온라인 유통 50%를 도맡는다. 이들 기업은 모두 코로나19 국면에 최고의 실적을 냈다. 과거 일부 산업에서 목격됐던 ‘20 대 80 현상(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른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경제다. 플랫폼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더욱 크게 누릴 수 있다. 덩치를 더 키운다고 딱히 비용이 크게 추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으로 말하면 한계비용이 제로(0)에 가깝다.

▶20 대 80 승자독식 더 강화

▷코로나19로 플랫폼 기업 영향력 쑥

플랫폼 독점은 명과 암은 뚜렷하다. 플랫폼 기업은 혁신을 이어갈 때만 독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특정 기업이 독점했다 하더라도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전환 비용’이 매우 낮다. 이 때문에 혁신이 없으면 언제라도 소비자가 떠나갈 수 있다. 전통적인 독점 기업이 독점의 과실만 누릴 뿐, 혁신에 소홀했던 것과 다르다. 혁신은 경제 발전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순기능으로 볼 여지가 크다. 또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벌어들인 돈으로 대규모 신규 투자를 단행한다. 예를 들어 구글은 2030년까지 약 6조원 이상을 들여 5기가와트(GW)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는 ‘탄소 제로 에너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플랫폼 기업은 외부 평가에 민감해 소비자 등 참여자에 바짝 다가선다. 그렇지 못하면 금방 독점적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어서다. 우버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다. 우버 택시는 한때 시장을 90% 이상 장악하며 사실상 독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사에게 돌아가는 요금을 줄이자 강력한 반발을 샀다. 기사들은 이탈하고, 소비자도 우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사내 성추행, 불법 소프트웨어 운영 사실까지 알려지며 ‘#딜리트우버(DeleteUBER)’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우버는 결국 후발주자였던 리프트에 시장점유율을 30% 이상 내줬다. 반대로 리프트는 선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노출해 열세를 만회했다.

물론 독점의 폐해는 남아 있다. 넷플릭스는 2017년 미국 내 월 구독료를 기습 인상했다. 넷플릭스에 적응한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인상된 요금에 따라야만 했다. 구글은 최근 인앱 결제 강제 정책을 모든 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독점적 지위에 기반을 둔 정책으로 IT 서비스 기업들은 물론 소비자 사이에서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플랫폼 기업이 승자독식을 누리는 추세가 더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독점 불가피론’마저 나온다. 토종 독점 기업을 키워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독점을 피할 수 없다면 선한 독점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방안으로 중개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네이버가 쇼핑 검색 순위 조작으로 과징금을 받은 게 하나의 사례다. 독점으로 발생한 권력을 자체적으로 분산시키는 방안도 나온다. SNS에서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한 페이스북이 매년 수억달러를 쓰면서 지역 언론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한 게 좋은 사례다. 페이스북은 권력 분산으로 선한 독점에 다가가고 우군까지 확보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이 오래 ‘누리기’ 위해 부작용, 폐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는 조대곤 카이스트 경영학부 교수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명순영·노승욱·나건웅·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