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플랫폼 독점..독점기업이 더 혁신 vs 지배력 남용

노승욱, 김기진 2021. 2. 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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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선(善), 독점은 악(惡)’.

시장 경제에서 금과옥조처럼 회자되는 얘기다. 과연 사실일까. 적잖은 경제학자들의 답은 ‘No’다. 일부 독점은 선할 수도 있다는 것. 통신, 수도, 전기, 가스, 철도 등의 ‘자연 독점’이 대표 사례다. 대대적인 초기 투자와 장기적인 수익 회수가 이뤄지는 특성상, 여러 기업이 생산하기보다 한 기업이 독점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독점을 말한다. 최근에는 ‘플랫폼 독점’도 추가 사례로 언급된다. 19~20세기 전통 산업의 독점과 달리 독점 유지력이 현저히 낮고,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거나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기 위해 독점 플랫폼 기업 육성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플랫폼 독점에 대한 기대와 걱정의 목소리를 살펴봤다.

시선 1긍정론

슘페터 “독점 기업이 가장 혁신적”

“혁신 기업이 독점하고, 언제든 교체 가능.”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모두 각자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이들이 시장을 독과점한다 해서 혁신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오히려 더 혁신적이라고 말한다. BCG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50’에서 이들을 1~5위로 꼽은 것. 독점을 하면 경쟁이 줄어 혁신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염려를 반박하는 단적인 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독점은 19~20세기 전통 산업 시대의 그것과 다르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온라인 플랫폼은 ‘네트워크 효과(잠깐용어 참조)’가 중요하다. 이런 특성에 비춰볼 때 특정 기업이 독점했을 때 오히려 소비자 후생이 극대화될 수 있다. 또 온라인 서비스는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전환 비용’이 낮다. 독점 기업도 혁신하지 않으면 독점이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이다. 플랫폼 컨설팅 기업 ‘애플리코(applico)’의 알렉스 모아제드(Alex Moazed) 설립자 겸 대표는 미국 경제 매거진 INC닷컴에 기고한 ‘현대 독점이 긍정적인 이유(Why Modern Monopolies Are Good)’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오늘날의 플랫폼 기업들은 규모와 시장 지배력 외에 19~20세기의 독점 기업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 과거 독점사는 회사 절정기에는 아무도 판매는커녕 경쟁력 있는 제품조차 만들 수 없었다. 반면 플랫폼 기업들은 더 많은 공장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내에서 점점 더 많은 사용자를 연결함으로써 성장한다. 그들은 산업 독과점처럼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는다. (중략) 현대의 독점은 20세기의 산업 독점보다 훨씬 더 빨리 ‘철의 왕좌’에서 오르내릴 수 있다.”

‘창조적 파괴’ 이론으로 유명한 조지프 슘페터도 알고 보면 ‘독점 옹호론자’였다. 그는 정상적인 경제 환경에서는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독점하게 되고, 그 독점은 영구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 상태’일 뿐이며, 따라서 독점 기업은 잠재적 경쟁자에 대비해 끊임없이 혁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경계할 것은 독점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이지, 시장 지배력 그 자체가 아니라는 얘기다.

슘페터는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사업자가 자기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경우, 외부에서는 경쟁 압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늘 경쟁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결국 완전 경쟁 상태와 마찬가지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경쟁이 독점보다 언제나 바람직하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적인 혁신자가 차지하는 독점이윤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국적 기업 맞서려면 ‘토종 독점’ 必

▷中, 독점 우려에도 디디추싱 합병 승인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국가 간 경쟁의 축소판이자 대리전이 된 작금의 경제 지형 변화는 ‘독점 불가피론’으로 이어진다. 초국적 기업이 전 세계를 휘젓는 글로벌 시대에 압도적 토종 기업이 없으면 국내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른바 ‘토종 플랫폼 기업 육성론’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인 사례는 중국이다. 중국은 야후(1999년), 이베이(2003년), 아마존(2004년), 구글(2005년), 우버(2009년)가 잇따라 진출하며 글로벌 IT·유통 공룡의 타깃이 됐다. 이에 중국은 자국 기업인 알리바바, 바이두, 디디추싱 등을 대항마로 내세워 이들을 집중 육성했다. 구글은 ‘티베트 해방’ ‘톈안먼 사태’ 등 민감한 문구 검색을 금지하며 검열에 나서고, 디디추싱에 대해서는 독점 우려에도 경쟁사인 콰이디다처와의 합병을 승인, 몸집 불리기를 허용했다. 결국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지 10년도 안 돼 모두 철수하기에 이른다. 물론 중국 시장 분석과 현지화에 실패한 탓이 크지만,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감싸기 영향도 적잖다는 평가다.

미국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화웨이(통신장비), DJI(드론), 틱톡(SNS) 등 중국 IT 기업들이 북미 시장을 장악하려 들자 미국은 물론, 동맹국에도 이들 제품과 부품까지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며 ‘보복’에 나섰다. 제재 이유로는 ‘국가 안보론’을 내세웠다. 미국에서 이들 기업이 수집한 데이터가 중국으로 전송되면 미국 인프라 감시에 활용되고 공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자국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은 제한적으로 용납해도, 해외 기업의 그것은(적대국이라면 더더욱) 절대 안 된다는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공공연히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같은 규제는 자유무역 기조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중국 같은 강대국이나 선택할 수 있는 카드라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해외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글로벌 시대에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 환경만 가혹하다면,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종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 전문연구원은 “디디추싱의 성공 모델이 한국 경제 환경에서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한국은 지나친 규제로 신(新)산업 성장이 더딘 상황이라는 점에서 디디추싱 사례에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독점이라 가능한 투자와 혁신

▷우주 산업·로켓배송 조 단위 투자

어떤 독점은 정부가 합법적으로 보장한다. ‘지적재산권’ 같은 특허 제도가 대표 사례다. 특허를 통한 배타적 이익 추구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굳이 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해서 남 좋은 일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 복지에 중요한 의약품의 경우, 필요하다면 5년 더 연장해주며 독점권을 훨씬 보장해준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이 각 분야에서 조 단위 초대형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민간 기업으로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나사(NASA)로부터 우주왕복선 사업권을 따낸 스페이스엑스는 지난해 2조원 넘는 신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쿠팡이 지난 7년간 5조원 가까운 누적 적자를 내며 로켓배송 서비스 구축에 지속 투자 중이다. 사업 성공 시 독점적 이익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불가능한 프로젝트들이다. 독점 기업이어서, 또는 독점에 대한 기대가 있어 소비자 후생을 위한 막대한 투자와 도전에 나설 수 있는 ‘독점의 역설’인 셈이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도 “독점 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며 독점을 두둔한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바이블로 불리는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독점 기업은 규모가 커질수록 더 강해진다. 판매량이 클수록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고정비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라면 제품 하나를 추가로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다 극적으로 누릴 수 있다. (중략) 경쟁은 패배자를 위한 것이다.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포착하려면 독점하라(Competition Is for Losers. If you want to create and capture lasting value, look to build a monopoly).”

시선 2부정론

“독점은 독점”…공급자 역할 엄금해야

한쪽에서는 ‘그래도 독점은 독점’이라며 독점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플랫폼 기업들이 비대해지며 사용자를 ‘연결’하는 초기 역할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공급자’ 역할까지 확장해가는 데 대한 경계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구글, 애플 등 플랫폼 독점 기업이 즐비한 미국이 대표 사례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이 자사 앱이 스마트폰에 선탑재되도록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에 수십억달러를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고 독점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불법 행위라고 힐난했다. 지난해 12월에도 구글은 두 번이나 미국 주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텍사스를 비롯한 10개 주는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콜로라도 등 38개 주는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구글이 독점 지위를 구축해 소비자와 광고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페이스북도 지난해 12월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와 주요 주정부로부터 반독점 소송에 휘말렸다. 페이스북이 자사 사업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큰 기업들을 인수합병한 것이 경쟁을 저해하는 불공정행위라는 것이 FTC 의견이다.

최창수 국회도서관 법률자료조사관은 “과거 미국은 플랫폼 기업 규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무료로 혹은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나자 거대 플랫폼 업체 대부분이 자국 기업임에도 관련 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플랫폼 독점 기업의 ‘월권’ 행위도 도마 위에 오른다. 최근 트위터를 비롯한 SNS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한 것이 대표 사례다. 트위터는 지난 1월 미국의 의회 난입 사태와 관련해 “추가적인 폭력 선동의 위험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페이스북·인스타그램·스냅챗 등 다른 소셜미디어도 트럼프의 계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트럼프는 백악관 공식 계정을 통해 입장을 전해야 했다. 이를 문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앙숙으로 꼽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그는 특정 소셜미디어 기업이 자의적 판단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면 안 된다며 트위터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플랫폼 기업이 유해한 메시지를 제한할 때는 자체 규정만 적용하도록 내버려 둘 게 아니라 이를 법률로 제한한 독일을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2018년 온라인의 증오 발언을 소셜미디어 기업이 24시간 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5000만유로(약 670억원)의 벌금을 매기는 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1월 26일(현지 시간)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자유와 공정 경쟁뿐 아니라 민주주의, 안보, 정보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거대 IT 기업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거대 IT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규정을 함께 만들어 IT 기업이 책임을 지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해외에서는 플랫폼 독점 기업 어떻게 규제하나

美, ‘반독점 총괄’ 신설 검토…EU, 매출 10% 벌금

미국은 전통 산업 시절부터 독점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스탠더드오일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1870년 설립 이후 스탠더드오일이 시장점유율을 약 90%까지 끌어올리자 미국 법무부는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1911년 연방법원이 정부 손을 들어주며 스탠더드오일은 무려 34개 회사로 분할됐다. 같은 해 미국 담배 시장의 90%를 차지하던 아메리칸토바코 역시 16개 기업으로 쪼개졌다. 방송사 NBC, 통신사 AT&T도 독점 우려 때문에 강제 분할됐다. 이 같은 기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독점 정책을 총괄하는 ‘반독점 차르’ 보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가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등이 시장에서 독과점 행위를 일삼는다고 지적하며 기업 분할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보고서를 발표한 점도 눈길을 끈다.

EU는 지난해 12월 ‘디지털 시장법’과 ‘디지털 서비스법’ 초안을 공개했다. 디지털 시장법은 거대 IT 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금지하고 인수·합병 계획을 EU에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담았다. 디지털 서비스법은 IT 기업의 플랫폼 악용이나 불법 콘텐츠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규정을 어기면 매출의 10%까지 벌금을 부과하거나 서비스 중단, 사업 매각 등을 명령할 수 있다. 연매출 65억유로 이상, 이용자 4500만명 이상, EU 회원국 3곳 이상에서 쓰이는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이 적용 대상이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에서도 플랫폼 기업이 지배력을 남용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중국은 지난해 ‘플랫폼 경제 분야 반독점 지침’을 발표했다. 높은 점유율을 보유한 플랫폼 기업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들여와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행위, 끼워팔기, 민감한 정보 수집, 담합 등을 규제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불공정 경쟁을 단속하는 기구인 ‘반부정 경쟁 부처 연석회의’도 설치했다.

일본 국회에서는 지난해 ‘특정 디지털 플랫폼 투명성·공정성 개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려는 사업자에게 서비스 제공 조건 혹은 서비스 거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검색 결과 표시 방식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호주 역시 2019년 말 디지털 플랫폼 규제와 관련된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로드맵에는 플랫폼이 인수합병을 통해 잠재 경쟁자를 제거할 수 없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고 플랫폼 규제 전담 기관을 통해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규제를 시행하겠다는 계획 등이 포함됐다.

잠깐용어*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어느 특정 상품 수요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효과.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SNS플랫폼, MS워드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 온라인 커뮤니티 등 타인과의 교류가 중요한 분야에서 주로 발생한다.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 품질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에반 윌리엄스 트위터 창립자는 “잘 설계된 네트워크는 거래 과정에서의 마찰을 줄여주며 좋은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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