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눈치본 김명수..사법부 수장이 삼권분립 무너뜨렸다
"사법농단 사태로 뭘 배웠나"
4일 대한민국 사법부가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22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면담 녹음파일이 공개되며 탄핵 발언을 한 게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국회와 언론에 거짓말을 한 데 대해 하룻만에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한 데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문제는 사법부 수장의 거짓말로 법원의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걸 넘어선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육성으로 공개된 발언 자체가 헌법상 삼권분립과 법원 독립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헌법 101조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돼있다.
원로 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 외풍으로부터 삼권분립과 사법의 독립을 위해 나서야 할 사람”이라며 “대법원장의 자질이 전혀 없다는 걸 스스로의 말로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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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법원장 문제 세 가지 발언 뜯어보니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22일 오후 5시쯤 대법원장실에서 독대한 자리에서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제출한 임 부장판사에 했던 헌법상 책무를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육성 녹음으로 공개된 세 가지 발언을 요약하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탄핵 얘기를 못하니 내가 비난을 받을 수 있어 수리 못 하겠다"이다.
■ 김명수 대법원장의 녹음파일 문제 발언 ①
「 "이제 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그 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 지난 번에도 얘기했지만 임부장이 사표내는 것은 난 좋아. 내가 그것에 관해서는 많이 고민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도 지켜봐야 되는데."
」
김 대법원장은 첫 번째 발언에서부터 "사표 수리 법률적 문제와 별도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부 수장이 면담 직전 지난해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등이 180석 압승한 상황과 관련해 여권 눈치를 보고 사표 수리와 연관지은 셈이다.
이에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 이외의 사정으로 정치권과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국회와 내응(內應: 몰래 적과 내통)하는 듯한 발언이 대법원장 입에서 나왔다는 건 완전한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 판사는 “피라미드로 그리면 여당 일부 의원이 맨꼭대기에, 그 다음 대법원장, 그 다음이 법관으로 비칠 수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지법의 다른 판사는 “지난해 총선 직후면 법관 탄핵론이 본격화되기도 전의 일”이라며 “대법원장이 왜 이런 이유로 사표를 반려했는지 시기적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국회와의 교감이 이전부터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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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표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 김명수 대법원장 녹음파일 문제 발언 ②
「 "지금 상황을 잘 보고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그리고 게다가 임 부장 경우는 임기도 사실 얼마 안 남았고 1심에서도 무죄를 받았잖아."
」
녹음파일 두 번째에서도 김 대법원장은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라고 말했다. 법관 사표 수리가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임을 알면서도 국회 탄핵 논의와 비난을 더 신경 썼다. 헌법 104조 3항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돼 있고, 106조는 “법관은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 ‘임명’이라는 말 안에 사표 수리권까지 포함된 것”이라며 "김 대법원장이 자신의 헌법상 책무를 국회에 넘기는 발언을 했고 그 시기는 임 부장판사의 징계 절차(견책 결정)도 끝난 시점이란 점에서 임 부장판사에 법에 의하지 않고 불리한 처분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권이 할 수 있는 것은 징계 처분 뿐이라고 헌법에 명확히 나와있다. 탄핵은 사법부의 권한이 아니니 생각조차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게 정상적인 법관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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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리하면 국회가 탄핵 얘기 못하잖아”
■ 김명수 대법원장 녹음파일 문제 발언 ③
「 "(법관) 탄핵이라는 제도 있지.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일단은 정치적인 그런 것은 또 상황은 다른 문제니까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대법원장이)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
」
김 대법원장의 진의는 이 세 번째 발언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가장 위배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탄핵소추는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입법부 권한이다. 국회 탄핵소추 이후엔 헌법재판소가 법원과 독립적으로 탄핵심판권을 갖는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가 형사재판 1심 무죄, 사법부 자체 징계 절차에서 '견책' 처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직서 수리가 불가능한 이유를 '탄핵'으로 들었다.
더군다나 김 대법원장은 3일 '탄핵' 발언 의혹에 대해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다”고 입장문을 냈다. 만 하루도 안 돼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본인 육성으로 확인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고등법원의 부장판사는 “이른바 '사법농단'사태 이후에도 대법원장은 배운 것도, 바뀐 것도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행정부에 너무 예속됐던 것이 문제이고 지금은 그 상대가 입법부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법원이 홍역을 치르던 지난 2017년 9월 26일 제16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취임사에서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법원과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런데 취임 1227일 만에 서약을 스스로 깬 사법부 수장이 됐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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