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멈춰선 쌍용차 공장 가보니 "다들 심란..협상 잘 되길"
협력업체도 붕괴 위기 "이대론 생태계 무너져"
[아시아경제 평택=유제훈 기자] "공장이 멈췄는데 동네가 조용할 수 밖에 더 있나요. 다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심란해 하는 분위기에요. 그저 협상이 잘 타결되길 바랄 뿐이죠."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히 쌓인 4일 오전 6시40분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 평소라면 지각을 면키 위한 직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을 정문 앞 인도는 한산했다. 정문 인근에 위치한 주차장도 반 쯤은 빈 상태였다.
오전 7시가 되자 조업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지만 불이 들어온 곳은 사무동 뿐이었다. 펜스 너머로 보이는 공장엔 외부 조명만이 켜져 있을 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건물 외벽에 붙은 '가장 혁신적이고 존경받는 대한민국 자동차회사'란 슬로건만 선명했다.
쌍용차가 또 다시 위기에 놓였다. 산업은행, 마힌드라, HAAH오토모비스 등과의 인수협상에 진전이 없는 데다, 주요 부품사들의 납품 거부로 공장 마저 '셧다운' 된 상태여서다. 쌍용차와 협력업체들은 이대로라면 상당 폭의 고용위기가 불가피한 만큼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희망·우려 교차하는 출근길 = 이날 오전 출근길이 한산했던 것은 쌍용차가 부품사의 납품 거부로 오는 5일까지 공장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약 3500명에 이르는 생산직 직원들은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고, 사무직 직원들도 일부만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 관계자는 "서울사무소 등 근무인력을 감안하면 평택공장 내 근무인원은 1000명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쌍용차 및 협력사 직원들은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 등과 관련해 굳게 입을 다무는 분위기였다. 대부분은 답을 피했고, 더러는 손사래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직원들은 희망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이날 오전 출근길에서 만난 쌍용차 및 협력사 직원들은 교착상태에 빠진 인수협상과 관련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분위기 였다. '잘 모르겠다'거나, 더러는 손 사래를 치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직원들은 희망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한 사무직 직원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다. 협상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짧게 답했고, 협력업체에 근무한 지 약 1년 반 가량이 됐다는 한 직원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들 심란한 분위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협력사 "이대로는 생태계 붕괴" 호소 = 오전 9시 휴식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고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출고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뤘을 후문 출고센터 인근도 고요했다. 인근엔 출고를 기다리는 재고차량들이 늘어서 있는 가운데 군데 군데 빈 곳이 눈에 띄었다. 쌍용차 노동조합 한 관계자는 "생산차질이 빚어지다 보니 자동차 재고도 예전만 못 하다"고 귀뜸했다.
문제는 다음 주에도 공장 가동 재개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잠재적 투자자인 HAAH오토모티브가 출국한데다 산은 마저 HAAH가 투자계획서 등을 제출하지 않고 한국을 떠났다며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쌍용차의 이런 위기는 고스란히 주변으로 옮아가고 있다. 당장 공장 정문 앞에 위치한 상가 일부에도 공실을 알리는 쌍용차 인근에서 5년째 식당을 운영 중이라는 한 여성은 "그 전에도 장사가 잘 된 건 아니지만 코로나19에 더해 쌍용차가 2교대 생산체제로 전환하면서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평택시민 김모(52)씨도 "쌍용차 직원들이 자주 찾던 세교동, 비전 2동의 상권은 침체된 지 오래"라면서 "그나마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자리잡은 것이 다행"이라고 전했다.
쌍용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협력사들은 속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다. 업력 30년차인 A사가 대표적이다. A사는 쌍용차에 자동차 관련 부속을 납품하는 협력사로, 매출의 대부분을 쌍용차에 의지하고 있다. 쌍용차의 위기가 곧 A사의 위기로 전이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A사는 수 개월간 부품 대금을 받지 못했고, 최근엔 쌍용차가 공장 가동까지 중단되면서 매출이 제로(0)가 됐다. 버티다 못한 A사는 인근에 위치한 약 9900㎡(3000평) 규모의 A사 부품공장은 며칠 전 사실상 문을 닫았다.150여명의 직원들도 일단 연차를 소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A사 대표 B씨는"연차 소진도 이달 중하순이면 끝날 것이고, 이후엔 무급휴직을 선택하겠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차후 쌍용차가 재가동 되더라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인력 이탈 등으로 협력업체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면서 "정부는 자금수혈을 통해 협력업체의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고, 대기업 또는 외자 부품사 들도 쌍용차 공장이 일단 가동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쌍용차 측은 P플랜을 통해 경영정상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생계획안을 미리 제출하는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은 일반 법정관리에 비해 회생에 걸리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현재 원활한 P플랜 추진을 위해 마힌드라 그룹 및 잠재적 투자자와 P플랜 관련 절차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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