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 미로의 독창적 초현실주의 "꿈을 꾸듯 그렸다"

2021. 2. 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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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스페인의 거장 예술가 하면 당신은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회화 역사상 최초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 바로크 대가 벨라스케스, 또는 인지도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역대 가장 높은 경매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모던 천재 피카소, 혹은 특징적인 콧수염으로 널리 알려진 초현실주의 거장 달리를 꼽는 이들이 많을 테다. 하지만 풍부한 상상력이나 다양한 재료, 기법에 대한 정통에 있어서는 이 예술가를 따라올 수 없으리라. 회화, 벽화, 판화, 의상 디자인, 시, 조각, 세라믹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시도한 모든 것에 통달한 정말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명인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년)다.

당대 많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학교에 진학, 곧 세계 미술의 메카였던 파리로 떠난다. 초창기에는 야수파와 입체파의 영향이 크게 엿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아이티의 부두교 미술 등 원시미술로 관심이 옮겨 가면서 이내 자신만의 회화적 기호 개발을 통해서 독창적인 초현실주의풍 그림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 좋은 예가 추상적인 여백의 배경과 서정적이면서 자유로운 이미지 그리고 손 글씨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회화-시(Painting-poem)’ 연작이다.

추상적인 여백의 배경과 서정적이면서 자유로운 이미지 그리고 손 글씨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회화-시’ 연작 중 하나. ‘검은 머리 여인의 몸(1925년)’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2012년 2월 7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1700만파운드(약 257억원)에 낙찰됐다. 당시로서는 미로의 전 작품 가운데 최고 경매가에 해당했다.
이 연작 중 ‘검은 머리 여인의 몸(Le corps de ma brune)’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 점이 2012년 2월 7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1700만파운드(약 257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당시로서는 미로의 전 작품 가운데 최고 경매가에 해당했다. 이 작품은 1985년 뉴욕 경매에서 77만달러에 낙찰된 적이 있었는데 30여년 만에 다시 경매에 출품돼 20배가 넘는 높은 가격에 판매된 것이다. 꿈이나 환상 같은 몽환적인 상태를 표현한 이 매력적인 그림은 무의식의 세계를 추구하는 초현실주의라는 당대 유행 화풍을 미로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준 훌륭한 예다.
회화(여인들, 달, 새들, 1950년)’. 유기적인 율동감과 촉각적인 표면의 표현,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2015년 2월 4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4배에 달하는 금액(약 1550만파운드, 약 227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1920년 파리로 이주한 이후 미로는 전위적 성향의 시인, 작가들과 주로 어울렸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립자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1896~1966년)과도 절친 관계였다. 초현실주의의 발견은 미로에게 있어 커리어의 전환점이나 다름없었다. 훗날 그는 초현실주의가 “무의식, 욕망을 자유롭게 해줬고 예술에 다른 힘을 부여했다. 완전한 자유를 갖고 꿈을 꾸듯이 그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가 중시하는 무의식 세계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무의식적 자아에 도달할 수 있었다. 회화적 기호의 발명에 기반해 매우 개인적인 시각 언어를 개발하고, 이로써 직관적인 창조성을 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과 상상력을 중시하기 위해 사실주의를 버리고 미로가 선보인 첫 번째 연작은 서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형태가 돋보이는 ‘회화-시’ 연작이다. 그리고 이 연작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검은 머리 여인의 몸’이다. 이 그림에서 그녀의 흔적은 유령 같은 하얀 붓 자국과 두 개의 작은 파란 동그라미로 표현된 가슴에서 엿볼 수 있다.

파리 생활 초창기 시절, 미로는 극심한 허기에 시달리다가 환상을 보고는 했다. 천장과 벽에 생긴 갈라진 틈에서 흥미로운 형태들을 봤고 이를 공책에 기록했다. 이것이 미로 회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즉흥적으로 그려진 다양한 형태의 출발점이었다. 1925년에 그린 ‘검은 머리 여인의 몸’은 회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무의식의 표출을 통해 새로운 정신적 공간 창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상징주의자들의 시에 등장하는 다의적 단어와 은유를 회화적으로 창조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미로는 파리와 스페인을 오가며 작업하던 중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다시 파리로 터전을 옮겼다. 그러나 1939년 독일의 파리 점령으로 급히 프랑스 교외 지역으로 탈출해야 했다. 미로는 이 과정에서 전쟁의 흔적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를 ‘별자리(Constellations, 1940~1941년)’ 연작으로 구현해낸다. 이 연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에게 또다시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되는데, 미국으로의 여행과 벽화 작업이다. 이 벽화 주문으로 그는 각각 9m와 6m에 달하는 대형 벽화를 만들게 된다. 여기서 ‘별자리’ 연작을 비롯, 과거 자신의 작품에서 실험했던 다양한 요소들이 집대성되는 결과를 얻는다.

그의 기념비적인 대형 청동 조각 ‘여성(Femme, 1969년)’. 2013년 2월 6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두 배가 넘는 630만파운드(약 95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1950년작 ‘회화(여인들, 달, 새들)-Painting(Women, Moon, Birds)’를 보라. 이 작품은 미로가 대형 벽화 작업을 통해서 얻은 예술적 성취가 그대로 반영돼 있는 대표작이다. 자연과 우주, 인간의 따뜻하고 생기발랄한 조우가 바로 그것. 이 그림은 그의 작품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새, 달, 여인이 주요 모티브다. 특히 미로의 회화에서 새는 마법의 촉매제이자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화가 자신을 대변하기도 한다. 달은 우주와 자연을 상징하며, 여인은 대지의 비옥함과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성을 각각 의미한다. 물감의 자유로운 유희를 통해 전체 공간을 제시하고 있으며, 얇은 붓으로 재료를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가느다란 테두리 선만으로 등장인물 등 구성 요소를 즉흥적으로 조직해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미로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에 정통한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일례로 그의 기념비적인 대형 청동 조각 ‘여성(Femme, 1969년)’을 보라. 원초적인 본능, 대지의 비옥함과 풍부한 상상력에 대한 축복을 표현한 작품이다. 몸 전체가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조각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자유롭게 변형하는 미로의 출중한 감각을 보여준다. 50대에 들어 조각 기법을 혼자 터득하고 개발한 이의 조각이라고 믿기 어려운 완성도가 아닌가. 처음에 그의 조각은 회화의 부수적인 성과물 정도로 평가됐다. 하지만 미로가 2차원 회화와는 또 다른 창작의 즐거움을 발견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대형 청동 조각은 그의 또 다른 예술적 성취이자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인정받는다.

오랫동안 잊힌 고대의 신화들과 무의식적인 태초의 형태들을 떠올리는, 마치 한 편의 새롭고 독창적인 시와 같은 그의 매혹적인 작품들이 당신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가.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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