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직원 수시로 빌려준다? 일본서 '출향' 대유행인 까닭

김규식 2021. 2. 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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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항공기 부품 사업 부문은 요즘 일거리가 많지 않다. 코로나19로 항공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품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요 감소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니 인력 수요도 줄었다. 감원 압력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회사는 일본의 파견 방식인 ‘출향(出向·사외 근무)’을 선택했고 토요타그룹이 이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토요타가 이미 가와사키중공업 등에서 출향받은 직원에 미쓰비시 파견 인원까지 합치면 수백여 명에 달한다. 이들 수백 명은 토요타그룹에서 차체와 관련된 작업 등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즉 미쓰비시·가와사키중공업이 남는 인력을 토요타에 임대·파견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토요타 입장에서는 위축됐던 자동차 수요가 회복되면서 일손이 달리던 차에 숙련된 중공업 인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됐고 미쓰비시·가와사키중공업은 감원 압력을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출향은 직원을 다른 기업에 임대하는, 일본식 파견이다. 기존 기업 소속을 유지한 채 새로 파견된 기업에서 업무 명령을 받아 일하는 방식이다. 흔히 대기업이 그룹 자회사에 직원을 보낼 때 활용되지만 한편으로는 좌천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들 들면 좌천 성격으로 직원을 계열사나 관계사로 보내면 이 직원은 본사로 돌아오지 못한 채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

▶日 기업들, 파견 제도 ‘출향’ 활용

불황에도 숙련된 인력 투입 가능

파견하는 업체 인건비 부담 줄여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부쩍 전혀 다른 기업들이 출향 인력을 주고받으며 고용 유지와 인력 조달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최근 나타나는 기업 간 출향은 같은 그룹 내 계열사나 관계사가 아니라 인력 수요가 있는 전혀 다른 업종이나 업체로 파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인력이 남아도는 회사가 있는 반면 일부 호황을 누려 일손이 모자란 기업도 있는데, 이 둘 사이 차이를 메우는 데 출향이 이용되는 것이다.

출향을 받는 회사에서는 숙련된 인력을 적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출향을 보내는 쪽에서는 감원 압력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불황이 지나고 나면 상대 기업과의 협의를 통해 어렵지 않게 자사 인력을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직원을 다른 업종으로 출향 보내 해고를 피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방식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많이 활용됐다. 어려움을 겪던 기업이 직원을 출향 보낸 후 실적이 좋아지면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인데, 주로 조선·철강업 등이 출향을 보냈고 자동차업 등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경기가 악화된 후부터는 항공·유통업계 등에서 이런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전자제품 양판업체인 ‘노지마’는 최근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로부터 300여명을 출향받았다.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지마가 지급하지만 부족한 금액은 JAL과 ANA가 보전하는 구조다. 노지마는 또 대형 호텔체인 기업들에서 직원을 출향받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력 파견회사인 파소나그룹은 항공·여행·호텔업계 등을 대상으로 출향 직원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유통업체 이온그룹은 이자카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출향을 받았다. 일본 외식업체 관계자는 “출향을 활용하면 인건비 부담은 줄이면서 숙련된 인력 고용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출향을 적극 활용하는 이유는) 지금 직원을 해고하면 업황이 좋아진 뒤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 김규식 특파원 kks101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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