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 택배 상하차 해보니..정신은 '아득' 몸은 '아작'
쉼 없이 돌아가는 대한민국 경제 현장의 곳곳을 직접 경험하고 들려주는 체험기 ‘반 기자가 간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힘겨운 노동의 현장부터 수없이 많은 돈이 오가는 투자의 세계까지 구석구석 생생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남한의 ‘아오지탄광’이라 불리는 택배 상하차를 아는가. 설날 특집기사를 준비하는 와중에 떨어진 ‘택배 상하차 체험기’ 기사 배정. “뭐 별거 있겠어” 하며 달려들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힘들다는 감정을 표출할 시간도,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없다. 오직 물건을 내리고 분류하고 다시 차에 올리는 동작만 무한반복되는 곳.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돈 급해서 했더니 병원비가 더 나온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서 도중에 추노했다(도망쳤다)’는 살벌한 후기가 넘쳐난다. ‘21세기 최후의 노동지옥’ ‘기계가 점령하지 못한 마지막 단순노동’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사는 택배 상하차의 세계를 직접 체험해봤다.
▶치열한 경쟁 끝에 ‘자리 획득’
▷40명 가득 실은 차량 타고 남양주로
“상하차는 힘들어서 지원자가 적을 거야, 명절 근처라 사람도 많이 구할 테고… 금방 찾을 걸?”
지난 1월 22일 금요일, 상하차 알바를 구하기 전, 혹여나 자리가 없을까 봐 택배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들에게 현황을 물어봤다. 한결같이 ‘구하기 쉽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 말을 믿고 한 곳에만 문자를 넣고 편하게 대기했다. 웬걸, 바로 탈락 문자가 날아왔다. 지원자가 많아서 ‘뽑을 수 없다’고. 순간 ‘큰일 났다’ 싶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문자를 보내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다시 연락주세요’라는 대답만 남기고 전화는 모두 끊겼다. 문자를 보낸 곳은 2시간을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던 중, 마침내 한 곳에서 답장이 왔다.
“업무 보느라 연락이 늦었습니다. 1월 25일 월요일 3시까지 석계역으로 오세요.”
마음속으로 ‘예스!’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월요일 3시, 설렘마저 느끼며 석계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나와 전화를 하니 근처에 있는 인력사무소로 오란다. 알려준 대로 인력사무소에 들어가 신분증을 보여주고 계좌번호를 적어 냈다. 이후 물류센터로 가기 전 인력사무소장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설명이 끝나자 남양주행 셔틀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셔틀버스 탑승장은 이미 물류센터로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시가 급한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치였다. 버스는 40명을 꽉꽉 채워 하나씩 남양주로 출발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택배 상자
▷‘인간’ 반진욱이 아닌 물류기계
남양주 물류센터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현장 배치를 받았다. 신규라고 말하자 현장 담당자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명단을 살피더니 나를 가리키며 ‘소화물’ 라인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운이 좋네, 덩치 좋은 애는 무조건 상·하차대로 보내는데, 담당자 배려라고 생각해라.”
라인에 도착하자 40대 남성의 사수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소화물 라인은 극악이라 불리는 상하차 업무 중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한다. 의류·서류·소형 가전 등 크기가 작은 화물을 지역별로 분류한 뒤 ‘행낭’이라 불리는 마대자루에 넣어 차에 실어 나르면 끝이다. 주변 사람들이 ‘쉽다’ ‘편하다’는 말을 계속하자 막상 실망감이 들었다.
“힘든 거 체험하러 왔는데 편한 것 해도 괜찮을까?”
“인간이기를 포기하자, 나는 그저 기계다.” 마음을 고쳐 잡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부품이다’를 되뇌며 마대를 쉴 새 없이 날랐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니 마음이 편했다. 일의 능률도 다소 올라갔다. 시간을 새까맣게 잊고 일한 지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끝’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2시다. ‘전반야’ 작업이 끝났다. 터덜터덜 목장갑을 벗고 식당으로 향했다.
▶진짜 지옥은 따로 있다
▷‘공포의 까대기’에 몸은 아작
식사를 마치고 후반 작업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희소식을 들었다. 새벽에 분류할 소화물이 얼마 없다는 것. 생각보다 빨리 끝내고 ‘쉴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소화물 분류 빨리 끝내고, 밑에 까대기(트럭에서 물건을 물류센터 레일로 내리는 작업) 도우러 가야 한다.”
상하차는 전체 물류센터가 ‘한몸’이란다. 자기 일이 끝났다고 해서 쉬는 일은 결코 없다고. 소화물 분류는 새벽 3시쯤에 끝나고 본격적으로 까대기, 물건 하차 업무를 하러 몸을 옮겼다. 일을 시작하자마 왜 소화물은 ‘쉽다’고 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설 명절 특수를 맞아 온갖 식품·선물 상자가 쏟아졌다. ‘××산 털보네 사과’ ‘명품 한우 세트’ ‘이천 특산 쌀’ 잠시 들기만 해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물건이 쉴 새 없이 나왔다. 트럭을 비우고 내보내면 곧 새로운 트럭이 들어와 상자를 토해냈다.
“어때? 힘들지? 돈 쉽게 벌기 힘들어. 그래도 익숙해지면 이건 일도 아냐. 빨리 적응하는 게 답이야. 앞으로도 자주 나와, 이만한 돈벌이 없다.”
담당자의 보챔을 뒤로하고 석계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황급히 올라탔다. 그렇게 장장 14시간에 걸친 택배 상하차 알바가 끝이 났다.
총평. 왜 ‘극한 알바’라 불리는지 실감이 났다. 아무리 돈이 급하더라도 심사숙고하길. 몸이 금방 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병원비가 더 나올 확률이 높다. 체험한 기자도 이틀 동안 근육통·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또 앞으로 택배가 도착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길. 수십 명의 피·땀·눈물이 담긴 화물이니까.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