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배후설' 불지핀 왕이 대화.."미얀마 군부, 中도 안믿는다"
흘라잉 "적극적 역할" 화답 후 쿠데타
"실상은 미얀마 군-정부 '양다리' 외교"
"정치적 승리-경제적 패배" 지적도
“미얀마는 핵폭탄처럼 폭발할 수 있는 불쏘시개다.”
그웬 로빈슨 미얀마 쭐랄롱꼰 대학의 선임 연구원은 4일 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인화성을 '핵폭탄'급에 비유했다. 실제로 상황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런 팽팽한 신경전 와중에 쿠데타 ‘중국 배후설’ 혹은 ‘묵인설’도 불거졌다. 근거는 지난 1월 12일 미얀마를 방문한 왕이(王毅·68)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65) 총사령관의 만남이다.
중국 외교부는 회담 후 웹사이트에 왕이가 미얀마 군부의 ‘합당한 역할’에 지지를 밝히고 흘라잉은 군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고 기록해 이런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이에 따르면 당시 왕이 국무위원은 “중국은 미얀마가 국가 주권, 민족 존엄,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는 것을 계속 지지한다”며 “미얀마 군부가 국가 발전 과정에서 ‘합당한 역할(due role)’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공헌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에 흘라잉 총사령관은 “미얀마와 중국의 우호 협력은 끊임없이 발전 심화시켜야 한다”며 “미얀마 군부는 이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active role)’을 계속하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상당수 중국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이 쿠데타를 지지했다는 근거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간 중국이 미얀마 군부뿐 아니라 아웅산 수지의 문민정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는 이유에서다.
미얀마는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유일한 순방국이었다. 1월 우한(武漢)에서 코로나 19가 번지던 시기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미얀마를 단독 방문해 양국 관계를 ‘운명공동체 관계’로 격상시켰다.
미국 스팀슨 센터의 쑨윈(孫韻) 시니어 펠로는 “중국이 타국의 군사 지도자와 쿠데타를 논의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2일 ‘미국의 소리(VOA)’에 말했다.
그는 대신 “흘라잉이 지난해 대선에 불만을 표시하자 왕이가 ‘합당한 역할’과 ‘적극적 공헌’을 말했다”면서 “중국은 ‘합당한 역할’을 국가 안보 유지, 국방 수호로, ‘적극적 공헌’은 국가 발전과 평화 건설에 공헌을 의미했겠지만, 미얀마 군부는 ‘합당한 역할’을 현재 위협받고 있는 (군의 정치 참여를 보장한) 2008년 헌법을 군사 정변이라는 수단으로 수호하라는 식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아웅산 수지와흘라잉을 오가던 중국의 ‘줄타기’ 외교가 비용을 치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독립 역사학자인 장리판(章立凡·71)은 트위터에 “왕이가 종용(慫慂)한 결과 중국은 정치는 이기고 경제는 졌다”고 논평했다. 중국이 미얀마와 추진 중인 각종 경제 프로젝트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왕이는 지난 1월 미얀마 방문 기간 12항목의 컨센서스를 도출하고, 8개 경제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2009년 급변사태가 발생했던 국경 인근 코캉 지대의 쿤롱(중국명 군눙·滚弄) 대교 건설 지원, 미국의 믈라카 해협 봉쇄를 뚫기 위한 만달레이-차우크퓨항 철로 건설의 타당성 연구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난마처럼 얽힌 미얀마 사태의 저변에는 미얀마 군부와 중국의 갈등이 잠복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의 국제방송 도이체벨레는 3일 “중국은 오랫동안 미얀마 군부가 내전을 벌이고 있는 라카잉(미얀마 서부의 소수민족) 군대를 지지했다”며 “이 때문에 미얀마 군부의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다”고 지적했다.
실제 흘라잉 총사령관은 왕이와 회담 직후 세르게이 소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만났고, 지난해 말에는 인도로부터 잠수함을 도입했다. 미얀마 군부의 배후가 중국만이 아니라는 근거다. 러시아는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유엔 상임이사회 결의에 중국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했다.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얀마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지정학적 각축을 벌이고 있는 나라로 동북아의 한반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서 “미·중의 대처 전략을 눈여겨 봐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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