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심창초교 할매들 "우리 진짜로 졸업해요. 중학교에도 가요"

김용권 2021. 2. 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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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입학한 할머니들, '즐거운' 학창시절 보내고 4명이 9일 졸업
만경여중 진학 예정 .. "내친김에 대학까지.." "아이고 거시기혀.."
김제 심창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교실에서 자기 얼굴이 나온 졸업 앨범을 펴고 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부터 서공순, 박금옥, 권금순 할머니와 김성현 군. 뒷줄에 담임인 김용희 교사가 최근 허리 수술을 받아 이날 나오지 못한 정안순 할머니의 앨범을 대신 들고 서 있다.


입춘이었던 3일 만경평야를 가로 질러 전북 김제 심창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이 학교 6학년 교실에서 늦깎이 초등생들을 5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박금옥(72), 정안순(73) 권금순(68) 서공순(68) 할머니…. 이들은 2015년 3월 다른 동기생 2명과 함께 1학년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손주같은 어린 학생들과 알찬 학창시절을 보내고 마침내 오는 9일 졸업장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우리 진짜로 졸업해요. 진짜로….”

할머니들은 “지난 시간들이 꿈만 같았다”며 “6년간 정말 즐겁게 지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할매들은 난생 처음 한글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웠습니다.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여러 곳으로 놀러 가기도 했습니다.

서공순 할머니는 “아침마다 설렜어요. 화장을 하고 등교해서 언니들 만나고 친구랑 공부하는 게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합니다. 권금순 할머니는 2학년 때 제주도에 체험학습을 가 감귤을 땄던 기억이 제일 신났다고 얘기합니다.

“처음 ‘ㄱ’ ‘ㄴ’자만 떼자고 했는데, 여그까지 왔어요.”

박금옥 할머니는 “친구들 만나서, 선생님 만나서 정말 즐거웠다”고 말합니다. 서 할머니는 “선생님들이 욕보셨다”며 감사함을 전합니다.

심창초등학교 6학년의 졸업 앨범과 시화집.


할매들은 지난해 시화집도 냈습니다. 5학년 때부터 2년 연속 담임을 자청한 김용희(40) 교사의 도움으로 그동안 써온 글과 그림을 모아 ‘어울림+동행’이라는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들 할매들의 학업이 소문이 난 뒤 심창초교엔 할머니 신입생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현재 5학년에 3명, 4학년에 2명이 더 있습니다. 모두 9명으로 전교생 18명의 절반에 이릅니다.

학사 일정은 ‘아이들’ 중심으로 사실상 복식수업이 진행됐습니다. 선생님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할매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하는 것보다 이미 익힌 것을 유지케 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심창초등학교 6학년 졸업 앨범속 사진. 할머니 학생들과 김용희 교사(뒷줄)와 김성현 군(왼쪽)이 졸업을 앞두고 예쁜 한복을 입고 잔디밭에서 포즈를 취했다. 심창초교 제공.


그러나 이들에게 수학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과 아픈 몸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더하기 빼기는 어찌 해보겠는데, 나눗셈은 여전히 까마득해요.”

권 할머니는 “영어도 대문자만 기억하지, 소문자는 도통 모르겠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느 할머니는 천식 때문에 지난 해 수업시간에 119 차량에 실려 병원에 가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이겨내고 이들 4명은 동기생인 김성현(12)군과 함께 빛나는 졸업장을 받습니다. 또 새달에는 모두 만경여중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졸업에, 진학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 들입니다.

마침 이날 만경여중 교장과 1학년 담임 교사, 행정실장 등 3명이 학교를 찾아와 할머니들에게 인사하고 입학에 대한 정보를 줬습니다.

“언니들과 같이 중학교 간다/ 4명 모두가/ 신난다.”

서 할머니는 진학의 기쁨을 ‘만경여중’이란 제목의 시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김병윤(60) 교장은 “(할머니들이) 다른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며 “늘 건강하시라”고 당부합니다.

2016년 5월 심창초등학교 할머니 학생들의 이야기를 보도했던 국민일보 지면.


해냈다는 기쁨이 크지만 할매들에게 정든 교정을 떠나는 아쉬움도 큽니다. 몸이 불편했던 동기 1명은 중간에 학교를 그만뒀고 1명은 1년을 쉬어 후배가 됐습니다.

박 할머니는 “섭섭하다. 선생님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니 너무 서운하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걱정도 숨길 수 없습니다. 박 할머니는 눈도 어둡고 다리도 아프니 (중학교에) 제대로 진학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합니다. 서 할머니는 여기에 “(수업시간에 잘 이해하지 못해) 선생님들 애통 터지게 할 것 같아 걱정이다”고 덧붙입니다.

졸업식은 코로나19 때문에 간소하게 열립니다. 가족이라도 교실에 들어오지 못하고 운동장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할머니들이 인사하자 담임인 김 교사도 환하게 답합니다.

“어머니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김용희 교사는 그러나 “헤어지는 것이 시원섭섭하다”며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것처럼 어머니들도 마음속 꿈을 하나씩 이뤄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후배 할매들에게 전해줄 덕담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할머니의 대답에 큰 웃음이 터집니다.

“부지런히 한 자라도 더 배워라.”

인터뷰 끝자락, 농담 섞인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에도 진학하는 게 어떠시겠어요?”

“아이고, 거시기혀….”

교실에 또 한아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글·사진 김제=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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