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면전서 "항소하시오"..초대 대법원장 꺼낸 김종인
“이의가 있으면 항소하시오.”
1956년 당시 사법부와 마찰을 빚던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우리나라 법관들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권리를 행사한다”고 비판하자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이 이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려 들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
4일 오전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공개한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 녹취록을 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 발언을 꺼내 들며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김병로 선생의 손자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성 확보를 위해 법관들을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운을 뗐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정권 하수인 노릇을 했다. 정권의 판사 길들이기에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사표 수리를 거부하면서 후배를 탄핵의 골로 떠미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비판했다. 앞서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탄핵안이 추진 중이니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반려했다.
김 위원장은 김병로 선생의 발언을 소개하며 “초대 대법원장은 대통령과 맞서면서까지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했다.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는 그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그분의 흉상이 배치돼 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을 향해 “한심스러운 행태”라고 꼬집은 김 위원장은 “비굴한 모습으로 연명하지 말고 본인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1일 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론을 제기한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날 “오욕의 이름을 사법부에 남기지 말고 본인의 거취를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김 대법원장은 코드에 맞는 재판부를 인사주기를 넘어서서까지 그대로 두고, 중요사건을 모두 거기로 보내서 판결을 왜곡하거나 지연하기도 했다”며 “사법부 독립성 차원에서 해도 해도 너무하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돌아보고 거취를 결정하라”고 말했다.
성일종 비대위원은 “사법부 수장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후배판사에게 정치적 논리로 사법살인을 저지르고 있다”고 했고, 김미애 비대위원도 “삼권분립이 처참히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박대출 의원은 “권력의 시녀를 자처한 행태, 사법부 능욕”이라고 꼬집었다. 배준영 대변인은 공식논평에서 “우리나라가 중우정치의 민낯을 보고 있다. 이탄희 의원의 선동에 탄핵의 수렁에 몸을 던지는 민주당은 무모한 행진을 즉각 멈추라”고 촉구했다.
앞서, 김 대법원장이 국회에 제출한 답변자료에서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3일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자료에서 “임 부장판사가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한 게 아니며,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녹취록과 배치되는 이 답변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명백한 허위공문서 작성”이라고 비판했고, 유승민 전 의원도 “사법부의 수장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 법을 떠나서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법농단”이라고 비난했다.
야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들은 법관 탄핵을 추진 중인 민주당을 향해 “전체주의”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삼부를 권력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30년 민주당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의회 민주주의는 질식상태에 빠지고 전체주의의 검은 유령이 어른거리고 있다”고 비꼬았다. 판사 출신인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은 “신독재의 중요한 퍼즐이 바로 사법부 무력화”라고 비판했고, 박형준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김 대법원장은 판사를 정치의 제물로 바친 대법원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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