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경제읽기]질서있는 싸움으로 바뀐 美·中 갈등..한국 경제엔 시험이자 기회

2021. 2. 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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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통상정책..동맹국과 연대 강화해 대응 밝혀
中은 아세안국가들과 RCEP 맺어..유럽과는 포괄적투자협정 접근
안보는 美·경제는 中과 가까운 韓, 美·中 모두 포섭땐 입지 넓어져

난타전이냐 질서있는 싸움이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중관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처럼 통상, 기술, 금융 등 모든 방면에서 전방위로 치고 받는 난타전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 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행정부처럼 일방적이면서 예측하기 힘든 방식에서 벗어나 일관되고 협력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국 우선주의가 뒤로 물러나고 동맹국과 연대를 통해 세계 통상질서가 유지되는 모습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중 관계의 본질은 트럼프 행정부 때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갈등이 계속되고 갈등 양상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쟁의 양상이 난타전에서 질서 있는 싸움으로 바뀔 뿐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미국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자 기반의 통상정책 추진’을 내놓았다. 세부 목표로 ‘미국 내 제조(Made in America)’와 ‘미국산 구매(Buy American)’를 꼽았다. 이는 제조업 부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의미인데 러스트벨트 부활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목표가 다르지 않다. 둘 다 경쟁력 강화를 통해 자국 중심의 통상정책을 펴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미·중 갈등은 중국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됐다. 1870년대에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제일 큰 나라가 됐다. 그리고 150년간 한번도 절대적인 위치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는데 중국의 부상으로 이 구도가 흔들리게 됐다. 당초 2030년으로 예상되던 중국의 미국 추월 시점이 코로나19로 더 빨라졌다. 몇 년 후면 미국이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일에 부딪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 미국이 두려움을 갖는 게 당연하다.

그 동안 미국 경제에 도전한 나라가 없었던 게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간 소련과 경쟁을 치렀고 1970년대에는 일본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두 나라 모두 국민총생산(GDP)이 미국의 50%를 조금 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가 경쟁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지난 30년간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단일 축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을 때 GDP가 미국의 17% 수준이었다. 19년이 지난 지금 해당 수치가 71%로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경제가 이륙 단계를 지나 성숙 단계로 진입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소련이나 일본과 달리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과 경쟁에서 갑자기 탈락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현실성 있는 그림은 미국이 경제 규모에서 중국에 이어 2위가 되고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는 형태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지금 미국이 할 수 있는 전략은 하나밖에 없다. 대세를 바꿀 수 없으면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소련이나 일본을 제압했던 때처럼 효과적인 카드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도 미국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점이다. 소련은 경제 규모를 키우기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했지만 그 과정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일본은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 엔화 절상을 거부할 수 없었다. 중국은 오랜 전부터 시장경제를 시행하고 있다. 환율을 포함해 어떤 경제정책에서도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 앞으로 경제 규모가 더 커질 경우 외부 압력을 통해 중국을 제어하는 게 더 힘들어질 것이다.

동맹과 함께 중국을 압박한다는 미국의 전략이 잘 먹혀 들지도 확신할 수 없다. 작년 상반기에 중국의 최대 교역국이 유럽연합(EU)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으로 바뀌었다. 전세계 교역의 절반이 아시아권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앞으로 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더 높아졌으면 높아졌지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해 중국은 기존 아세안 국가들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맺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느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는 틈을 중국이 뚫고 들어온 것이다. 이 협정을 통해 중국은 자유무역에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미국의 고립화 전략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유럽과는 포괄적투자협정으로 접근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EU가 중국을 위해 벌인 외교적 쿠데타" 라고 비판할 정도로 미국을 당황하게 만든 협정이다. 체결 내용을 보면 중국이 기존 입장에서 크게 양보해 EU가 자동차, 의료, 클라우드컴퓨팅, 항공운송 서비스, 금융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중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 공정경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합작 투자사를 차려야 하는 조건도 폐지해 외국기업이 중국에 강제로 기술을 이전해야 줘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었다. 내용에서 양보를 하더라도 유럽과 협상을 통해 보호무역 강화로 인한 고립에서 벗어나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중국과 관련된 우리 입장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립주의적인 통상정책을 썼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을 경우 다른 나라가 어떤 통상 관계를 맺든 신경쓰지 않았다. 중국과도 미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협력적인 통상관계를 맺는 걸 묵인했다. 그 덕분에 우리도 통상관계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을 분리해 대응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모든 통상관계에서 미국의 존재를 의식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국과의 연대강화를 통해 중국과 통상분쟁에 대응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데 미국이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어느 쪽에도 속할 형편이 못 된다.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전통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더 가까이에 있다. 오래 전에 중국이 우리의 제1 교역국이 됐는데 앞으로 중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한쪽에 설 경우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때 그 경험을 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우리 경제에 시험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미·중 모두 우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 할 텐데 그럴수록 우리의 입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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