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출신들도 피할 수 없는 외인 교체 바람

이준목 2021. 2. 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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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소속팀이 원하는 역할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이준목 기자]

2020-21시즌 프로농구(KBL)는 당초 거물급 외국인 선수들의 격전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올시즌 KBL 무대에 새롭게 데뷔한 선수들은 전원 2미터 이상의 장신자에다가 화려한 NBA(미국 프로농구) 출신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특급 외국인 선수'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숀 롱(울산 현대모비스)이나 타일러 데이비스(KCC)처럼 자기 몫을 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벌써 퇴출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이중에서는 얼 클락(안양 KGC), 제프 위디(고양 오리온), 마커스 데릭슨(KT) 등 NBA 출신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거물급 선수도 다수다.

이는 그만큼 KBL의 리그 수준과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 초창기만 해도 외국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의 수준 차이는 극심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 자유계약시절에는 단테 존스-피트 마이클 등 특급 외인들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원맨쇼'만으로 리그를 초토화하던 시절도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보니 일부 선수들이 과도한 스타의식을 드러내거나, 주역이 되어야 할 국내 선수들이 들러리로 전락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하지만 KBL의 수준이 높아지고 외국인 선수제도도 여러 차례 변화를 거듭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수비 전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아무리 뛰어난 외인이라도 팀수비를 통하여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해졌다. KBL의 수비 조직력은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더 이상 선수 개인이 30-40점씩 몰아넣거나 '나홀로 플레이'만으로 리그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또한 최근에는 국내 선수들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김선형이나 허훈, 이대성같이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로도 주눅들지 않고 공격을 전개하거나 에이스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현재 KBL 득점과 리바운드 선두는 모두 숀 롱(20.9점, 11.4리바운드)이 차지하고 있다. 경기당 평균 20점을 넘긴 것이나 리바운드를 포함한 20-10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롱이 유일하다. 리빌딩 시즌을 보낼 것으로 예상했던 모비스가 리그 2위에 오르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롱의 활약이 컸다.

롱은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휴스턴 로켓츠 등에서 잠시 활약했고, KBL보다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 호주-뉴질랜드-중국 리그에서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일찌감치 가장 검증된 외국인 선수로 꼽혔다. 이런 롱조차도 시즌 초반에는 KBL의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으로 유재학 감독으로부터 자주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반면 이제는 아무리 개인기량이 뛰어나거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외국인 선수들이라도 KBL의 리그 스타일 혹은 팀이 원하는 전술적 역할에 녹아들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KGC에서 뛰었던 클락은 리그 적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NBA 1군무대에서도 제법 비중있게 활약했던 공격형 포워드였지만, KBL에서는 빅맨의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신임에도 외곽 플레이만 펼치거나 수비에서 몸싸움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KBL 유경험자인 크리스 맥컬러와 교체되는 굴욕을 겪었다.

제프 위디는 KBL에서 '수비형 외인'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위디는 NBA와 유럽무대 등에서 활약할 때도 수비에 특화된 선수였다. 213cm의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포스트업이나 중거리슛 등 공격 스킬이 부족했고 현대농구의 트렌드인 빅활동량이나 기동력있는 빅맨과도 거리가 멀었다. 주로 자신보다 작은 선수들과 매치업을 이룬 KBL에서도 위디는 공격적인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했다.

위디의 부진으로 오리온은 득점을 주로 국내 선수들에게 의존해야 했고, 승부처에서 뒷심이 떨어지는 한계로 이어졌다. 또한 오리온이 올시즌 KCC전(4전 전패)에서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인 데는 위디가 상대 외인인 타일러 데이비스와의 매치업에서 번번이 밀린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공교롭게도 위디가 교체되고 첫 경기였던 3일 LG전에서 오리온은 무려 118점을 폭발시키는 화끈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디드릭 로슨이 21득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시즌1호 트리플 더블을 기록해고, 위디의 대체선수로 들어온 데빈 윌리엄스는 8득점 8리바운드를 올렸다.

시즌 초반 선두를 달리다가 6위까지 내려앉은 전자랜드도 외국인 선수 교체를 앞두고 있다. 헨리 심스(14.7점·7.5리바운드)와 에릭 탐슨(7.9점·7.9리바운드)은 다른 팀 외국인 선수들과 의 매치업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전자랜드는 최근 206㎝의 장신 빅맨 자원인 데본 스캇을 대체자원으로 입국시킨 상태지만 비자 발급과 자가격리 문제 등으로 교체가 늦어졌다. 기존 두 선수 중 누가 교체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기록상으로는 수비형 선수인 탐슨이 교체될 가능성이 좀 더 높지만, 몸값을 못한다는 점에서는 NBA 출신이자 1옵션 역할로 기대를 모았던 심스의 부진이 더 뼈아픈 전자랜드다.

기존 선수들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프로농구 선두를 달리고 있는 KCC마저도 데이비스의 기량이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데이비스는 올시즌 KCC가 10연승을 달리는 동안 안정적인 골밑플레이로 팀 상승세에 기여했지만 최근 2연패를 기록한 SK, DB전에서는 한 자릿수 득점에 그쳤고 느린 수비가담과 소극적인 골밑플레이로 전창진 감독의 불만을 샀다. 원래 주전이었던 라건아의 컨디션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는 것도 데이비스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자밀 워니(SK)는 NBA급 선수들과 매치업에서도 밀리지 않는 활약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최근 전자랜드전에서 감독의 지적에 불만을 품고 경기중 자리를 무단 이탈하는 돌출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우승후보로까지 꼽혔던 SK는 올시즌 7위에 그치며 6강플레이오프 진출도 힘겨운 상황이다. 또다른 외인인 미네라스의 경기는 이겼지만 팀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가운데 전력의 핵심인 워니의 이기적인 행동은 많은 질타를 받았다.

과거의 경력이나 이름값으로 농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KBL 구단들은 이제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외국인 선수 한 명에게 무작정 끌려다니지 않는다. 외국인 선수들도 KBL과 소속팀이 원하는 역할에 적응하기 위하여 더 많은 존중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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