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0콜, 3분이상 '빨리 끊어'.. 우수콜센터 건보공단의 실상

이재훈 2021. 2. 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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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상담사 파업 릴레이 기고③] 건강보험 고객센터 직영화가 필요한 이유

[이재훈 기자]

벌써 거의 5년 전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건보공단)을 포함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거부하며 동시 파업을 벌일 때, 여기에 지지하는 기사 '2살 아기가 받은 건보료 고지서'(http://omn.kr/l75z)을 쓴 적이 있다.

공공기관이 실적과 경쟁 방식으로 운영될 때, 결국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노조 간부는 "공공기관의 올바른 사회적 역할을 제기"하는 투쟁이라고 평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파업을 지지했고, 함께 승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정책 기조도 바뀌었다. 공공성 회복을 목표로 사회적 가치 중심의 정부를 표방하고, 공공부문이 모범 사용자로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낡은 유산에 사로잡힌 건강보험 고객센터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여전히 호명되지 못한 채, 경쟁과 효율, 비용 절감이라는 낡은 유산에 사로잡혀 있다.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2006년 3개 센터로 출범했는데, 2012년 12개까지 늘어났다. 모두 민간용역업체들이 24개월마다 도급계약으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2007년 영유아 건강검진,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됐고, 2011년엔 4대 보험의 보험료 징수업무(고지, 수납, 체납)가 건보공단으로 통합됐다.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업무량이 늘었지만, 건보공단 인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공단이 필요한 인력확충 예산을 복지부에 제출하면, 복지부가 줄여서 기재부에 제출하고, 기재부가 다시 더 줄였다. 대신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1623명까지 늘어났다(2020년 계약 기준, 관리인력 172명 포함).

출범 당시엔 "단순, 반복업무의 일괄처리"를 맡기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단순 안내나 관련 부서 연결만 하는 게 아니라, 1069여 개에 이르는 종합적인 상담과 업무처리를 수행하고 있다. 공단의 모든 안내문, 고지서, 홈페이지 지사 발송 문자 등에는 고객센터 번호(1577-1000번)가 안내된다.

게다가 공단지사에서 하지 않는 외국어(영어, 중국어, 베트남, 우즈벡) 상담과 청각 언어 장애인을 대상으로 영상을 통해 수어 상담, 의료급여 수급자의 진료확인번호 승인, 취소 등의 업무까지 처리한다. 공단지사와 똑같이 이뤄지는 금연치료기관 원격상담 업무도 있다. 모두 건보공단이 수행해야 하는 핵심업무다.

애초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상시 지속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용역)에 해당된다.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야 했다. 같은 사회보험기관인,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콜센터 노동자는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경쟁과 실적, 전자감시와 감정노동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10년 넘게 일해도 최저시급만을 받으며, 감정노동과 전자감시에 시달리고 있다. 건보공단은 실적 위주의 수량적 평가 지표로 업체를 평가하고, 업체는 다시 목표 달성과 초과 성과를 위해 상담노동자를 옥죈다. 상담이 길어지면, 받을 수 있는 콜 수 실적이 떨어진다. 3분이 넘어가면 관리자들이 '빨리 끊으라'는 쪽지가 오고, 5분 이상 넘어가면 상담과정을 실시간으로 청취해 채팅으로 지시가 내려온다.
ⓒ pixabay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10년 넘게 일해도 최저시급만을 받으며, 감정노동과 전자감시에 시달리고 있다. 건보공단은 실적 위주의 수량적 평가 지표로 업체를 평가하고, 업체는 다시 목표 달성과 초과 성과를 위해 상담노동자를 옥죈다.

건보 공단의 전산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콜 수가 기록되고, 개인, 팀, 센터 간 순위가 매겨진다. 일일 평가가 모여 월별평가, 분기 평가로 이어진다. 자리를 비운 시간, 평균 벨 울림 시간, 평균 통화시간까지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상담이 길어지면, 받을 수 있는 콜 수 실적이 떨어진다. 3분이 넘어가면 관리자들이 '빨리 끊으라'는 쪽지가 오고, 5분 이상 넘어가면 상담과정을 실시간으로 청취해 채팅으로 지시가 내려온다고 한다. 7분 이상의 긴 상담(장콜)도 따로 기록된다. 상세한 상담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저성과자로 찍히게 되는 구조다.

이런 식으로 1인당 하루 평균 120콜을 받고 있다(2019년 기준). 평균 통화시간이 4분이라면 하루 8시간 업무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아야 그나마 평균수준에 달성하는 셈이다.

초 단위로 이뤄지는 상담업무는 노동강도가 세다. 전화마다 서로 다른 개별적인 사례에 대해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정확하게 상담해야 한다. 게다가 보험료라는 달가울 수 없는 민원까지 담당하고 있으니, 직무 스트레스 또한 극심하다. 국민의 건강보장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책임은 아웃소싱, 성과는 인소싱

실적을 위한 실시간 전자감시, 강한 노동통제 방식의 노무 관리는 기본적인 노동권, 건강권 침해할 뿐 아니라, 인격 모독과 성차별 사례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건보 공단은 "협력사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건강보험 상담업무는 개인의 인적 정보뿐 아니라, 상담내용에 따라 소득, 재상 상황, 병원 진료기록, 건강검진 등 광범위한 개인정보를 취급한다. 이게 건보공단과 상관없는 민간업체 협력사의 일인가.

이런 논리라면, 건보공단 자체를 민간업체가 맡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건보공단은 역할과 책임,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책임은 철저히 외면하면서도, 건강보험 고객센터의 성과는 건보공단의 성과라고 말한다.

한국산업 서비스 품질지수(KSQI) 10년 연속 우수 콜센터로 선정됐다며 "우수한 상담품질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더 가까운 공단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매주 2회 이상 홀몸 어르신과 1:1 전화 말벗, 손편지 쓰기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공단의 사회공헌 특화사업인 '건강드림콜 서비스'다. 이 역시 "공공기관 콜센터로서의 사회적 책임의 수행에 앞장서고 있다"라며 자찬했다.

"건강보험 제도의 최전선에서 국민들과 소통하는 건강보험의 귀"라면서, 왜 실질적인 사용자의 책임은 외면하고 있는가. 왜 가입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창구를 민간용역업체에 내맡기며 스스로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가.

민간위탁, 무책임하고 비효율적이다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이연화 광주센터 조합원이 '조합원이 공단 이사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 연합뉴스
 
건강보험 고객센터가 수행하는 공공서비스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재무적 가치가 우선될 수 없다. 심지어 경제적 효율성도 크지 않다. 민간위탁에 들어가는 일반관리비, 이윤과 부가가치세액 등으로, 예산만 낭비될 뿐이다. 사무공간이나 장비, 전산 인프라 등은 건보공단이 제공하고 있다. 민간용역업체는 건강보험 관련한 전문성 없이, 상담노동자를 쥐어짜는 노무와 실적관리 역할만 할 뿐이다.

오히려 행정업무 효율성, 책임성마저 떨어진다. 상담에 바로 반영되어야 할 법 개정이나 고시, 업무지침 변경 등에 대한 대응 역시 공단의 업무지시를 받아야 하고, 교육 역시 형식적으로 짧게 전달 형태로만 이뤄진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소수업체가 계속 또는 번갈아 위탁받다 보니, 소위 민간위탁의 성과라는 '경쟁 효과'가 생길 리 없다.

일부에서는 고객센터 직영화와 상관없이, 이미 건보공단이 "방만 경영" 상태라며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비용 증가는 국민건강보장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늘어난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심지어 관리운영비는 총수입 대비 1.7%에 불과하고, 관리운영비율 역시 2006년 4.1%에서 낮아져 2019년 1.9%로 10년 넘게 2%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민간보험 중심인 미국이 8.3%(17년 기준)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높고, 같은 사회보험 방식인 프랑스나 독일보다도 4~5%대인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직영화, 실질적인 통합의 완성
       
 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총파업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한국의 사회보장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로 꼽으라면, 주저함 없이 의료보험 통합을 꼽는다.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연대의 정신이 제도화된 것이 국민건강보험이다. 건보공단 역시 역사적인 통합의 산물이고, 현재 건보공단 김용익 이사장 역시 통합 운동을 이끈 주역이다.

이러한 통합과 연대의 정신은 건강보험 고객센터 직영화로 이어져야 한다. 앞으로 건강보장에 대한 사회적 필요의 증대, 가입자의 빠르고 편리한 행정처리 요구 확대, 정보통신기술과 전산화 시스템의 발달, 비대면 선호 등으로 상담업무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청각언어 장애인, 거동이 불편해 지사 방문이 어렵거나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어르신 등 취약계층의 의료접근권 보장을 위해 이미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안정적인 기여를 전제로 한 사회보험 방식의 국민건강보험은 가입자의 제도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직영화는 건강보험 서비스 이용 전반에 대한 가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내실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가입자의 다양한 방식의 참여를 보장하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통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건강보험 고객센터 직영화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이자,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나아가 직영화를 통해 저비용-고감시 모델에서 벗어나, 가입자를 위한 숙련 중심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5년 전 건보공단 노동자들이 실적과 경쟁을 거부하고 공공성을 주장하면서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에 나섰듯이, 지금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2월 1일부터 파업에 나섰다. 내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과 직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건보공단 내부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일부 언론에선 "제2의 인국공 사태"라며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한다. 그 누구도 형식적 공정성에 근거한 등가교환의 편협한 논리로 다른 이의 권리와 존엄을 차별할 수 없다.

건보공단에서 일하는 직업적 자부심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는 우월적 지위에서가 아니라, 고단하지만 하루하루의 노동이 국민의 건강보장을 위한 소중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는 것에서 샘솟기를 바란다.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헌신했던 건보공단 노동자의 공공성 강화실천이 고객센터 직영화의 요구와 마주치고, 함께 연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획 / 건강보험공단 상담사 파업 릴레이 기고]
① 건강보험공단 직원과 통화하기 어려운 이유, 이겁니다 http://omn.kr/1rxd7
② 끝없는 외주화... 누가 나의 의료정보에 손대나 http://omn.kr/1rx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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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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