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동무' 부르던 책 주인은 누구였을까?
[이준희 기자]
똑같은 형태와 내용으로 많은 양이 한꺼번에 만들어진 인쇄본과 달리, 하나하나가 사실상 유일본일 수밖에 없는 필사본은 왠지 더 특별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필사본이라 하면 마치 중세에나 존재했을 법한 느낌도 있지만, 아직 백 년이 안 된 20세기 필사본에서도 종종 흥미로운 내용이 발견되곤 한다. 오랜만에 들춰 본 <신유행 창가집>이 바로 그렇다.
▲ <신유행 창가집> 표지 |
ⓒ 이준희 |
▲ <신유행 창가집>에 수록된 <황성의 적> 가사 |
ⓒ 이준희 |
필사자가 노래를 직접 들으면서 채록한 것인지, 아니면 가사지를 보고 베껴 적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그가 처했던 경제 상황이 그렇게 풍요롭지 않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음반이나 그에 딸린 가사지를 직접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었다면, 굳이 이런 필사본을 애써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축음기나 SP음반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고, 큰 도시도 아닌 면 지역에서 그 정도 경제력을 갖춘 집은 드물었을 것이 분명하다.
▲ <신유행 창가집>에 수록된 <레닌 동무> 가사 |
ⓒ 이준희 |
일천구백이십삼년 정월 스무하룻날/ 모수코부 저(?) 땅에서 레닌 동무 죽었다/ 동무들아 동무들아 레닌 축원(?)하기로/ 배우고 또 배워서 전 세계를 깨우라
<레닌 동무> 전문
가사에서 주목되는 점은 레닌 이야기를 하면서도 '혁명'이나 '해방' 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배움'을 유독 강조했다는 것이다. 필사자가 직접 지은 가사일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고 어디선가 듣고 배운 노래일 텐데, 그 어디가 어디인지는 또 다른 작품 <야학 동무>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쉴 새 없이 일만 하는 몸/ 밤으로 공부하기 고단하지만/ 그러나 동무들아 글을 배우자/ 눈뜬장님 아니 되기 위하여서
<야학 동무> 1절
▲ <신유행 창가집>에 수록된 <노동가> 가사 |
ⓒ 이준희 |
부모처자는 기한(飢寒)에 울고/ 동지들은 철창 속에 있으니/ 골수에 맺힌 우리 원한을/ 복수하지 아니할 수 있으랴/ 노동자들아 단결하자/ 우리 농촌의 깃발 아래로/ 우리의 흘린 피땀 흘린 값으로/ 자유의 새 사회는 보인다
<노동가> 2절
전반적으로 보아 <레닌 동무>보다 오히려 더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노동가>라고 할 수 있다. 자칫 삼랑진면 순사에게 적발이라도 되었다간 만만치 않은 곤욕을 치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가요는 결코 할 수 없는 이런 발언을 담은 <노동가> 같은 노래는, 일반적인 인쇄본에서는 역시 결코 소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필사본 <신유행 창가집>의 의미와 가치는 바로 이런 점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 <신유행 창가집>에 수록된 <황금의 부자유> 가사와 악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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