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공익제보'에 집착한 언론, 의심스럽다
[김언경 기자]
최근 공익제보의 가치를 강조하며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나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폭로한 인물에 대한 보도이다. 언론은 그가 한 행위는 기밀누설이 아닌 공익신고이며, 그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가 공익신고를 하겠느냐고 걱정한다.
▲ 김학의 전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폭로한 제보자의 행위가 ‘공익신고’인지 ‘비밀누설’인지 따져보는 보도 |
ⓒ TV조선 |
앵커 : 그렇다면 현재 법무부와 여권 일각에서 나오는 기밀 누설 혐의, 이건 분명히 공익신고자 보호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합니까?
기자 :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에서 앞으로 누가 공익신고에 나서겠냐 하는 점이죠.
곽지현 변호사(국가인권위 상담위원) 발언 녹취 : 법무부가, 오히려 법치를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공익제보자에 대한 고발을 실행한다면 이를 본 어떠한 국민도 공익제보를 하기 꺼려지게 될 것입니다.
앵커 : 예 그럴 겁니다. 공익신고에 있어서는 좋은 신고 나쁜 신고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가슴에 와닿는군요.
틀린 말은 아니다. <중앙일보>는 조금 더 적극적 주장을 담았다. '김학의가 공수처 1호 사건? "文정부 공익신고 잔혹사 재현"'(1월 16일)에서 '文 "신고자 보호" 약속했지만 줄줄이 불이익·형사처벌'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공익제보자를 보호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공익신고자 잔혹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 대통령은 2012년과 2017년 대선 땐 "공익신고자를 더 잘 보호하는 체계적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후 공익신고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기획재정부 적자 국채 발행 시도 논란을 폭로한 신재민 전 사무관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폭로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략)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법무부와 검찰의 조직적 국기 문란 사건의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보호해주지 않으면 공익신고 제도 자체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라며 "사건 연루자들은 적반하장 할 것이 아니라 진상 규명과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올바른 처신일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뉴스 검색에서 '공익제보 김학의'로 검색하면 2021년 1월 9일 <조선일보>의 '김학의 출국 막은 날, 검사가 내민 건 조작 된 출금서류였다'부터 481건(2일 기준)이 검색된다. 이들 기사는 대부분 김학의 출국금지라는 이슈를 신고한 사람은 공익신고자이기에 법무부의 신고자에 대한 '공무상 비밀누설죄' 고발 검토는 부당하다는 주장이 들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언론은 모든 공익제보자의 인권에 관심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경우에만 촉을 곤두세운다는 것이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공익제보가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언론보도가 넘치는 현실에서, 언론으로부터 외면받은 공익제보자 이야기를 해보자.
▲ 혜강행복한집 2심 판결 관련 유일한 기사 |
ⓒ 더인디고 |
2019년 6월, 경주의 '혜강행복한집'에서 입소자에 대한 인권유린과 비리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설 설립자이며 시설장이 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보조금과 후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었다. 재판 결과 시설장이 국고인 시설운영비를 빼돌리도록 지시하고 그 이익을 착복했으며, 장애인을 폭행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 사안의 공익제보자에 대한 판결이다. 이 사안을 구체적으로 제보한 이는 시설 사무장이었다. 법원은 2020년 10월 1심에서 보조금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범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공익제보자에게 벌금 700만 원 형을 선고했다. 법원이 그를 공범으로만 보고 공익제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법원은 1심, 2심에서 모두 제보자의 기여와 공익신고를 인정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1심 판결문 속 양형 이유서만 보더라도 "피고인의 죄질이 불량하다. 다만, 범행 반성하고 있고, 여러 불이익을 감수하고 공익 제보를 함으로써 진상 규명에 기여한 점, 피해자 시설의 장애인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적혀 있다.
1심 판결 이후 장애인 시민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심 재판부에 제출할 탄원서를 모았다. 시민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한 탄원서에는 해당 공익제보자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공익제보자는 "상급자이자 인사권자인 당시 원장의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스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 원장의 보복성 전횡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원장의 부당한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랐을 뿐"이었으며, 공익제보자 본인은 횡령한 금액 일체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탄원서는 공익제보자가 자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고 피의사실에 대해 부인하거나 증거를 인멸하지 않고 혜강 사태의 수사와 해결을 위해 성실하게 협조했으며, 재발 방지와 재단 정상화, 지역사회 장애인 시설 거주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경주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비롯한 여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탄원서의 핵심은 공익제보자에게 100만 원 미만의 벌금형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업법' 규정에 따라 사회복지사는 벌금 100만 원 이상이 선고될 경우 시설에서 파면되고, 나아가 이후 5년간 사회복지시설에 종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당 시설의 입소 장애인과 이를 지켜본 많은 시민은 그의 제보가 없었다면 혜강행복한집에서 수년간 일어난 갖가지 비리와 장애인 인권 유린은 그대로 은폐된 채 반복되었을 것임을 고려해달라며 그가 사회복지사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기를 기대했다.
공익제보자 지원 활동을 하는 호루라기 재단도 2심 재판부에 같은 맥락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1월 18일, 2심 재판부는 1심에 비해 200만 원이 줄어든 50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선택적 보도
2심 판결 이후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아래 공투위)은 경주 혜강행복한집의 시설 비리 및 장애인 폭행 등에 대한 2심 판결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했다. 1월 28일에는 같은 사안으로 호루라기 재단에서 '공익제보하면 다친다는 메시지 남긴 재판부'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 두 성명 모두 보도되지 않았다.
김학의 출금 제보자에 대해 그렇게 많은 보도를 쏟아내던 언론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네이버 뉴스 검색에서 '공익제보 혜강'으로 검색해보면 <대구일보> 1건, <노컷뉴스> 2건, <비마이너> 1건, <뉴시스> 1건까지 총 5건의 사건 보도가 나올 뿐이다.
그마저 모두 2020년 기사이고 2021년 2심 관련 보도는 한 건도 없었다. 구글에서 더 찾아보니 <더 인디고>라는 저널에서 '경주 혜강행복한집 판결, 공익제보 위축'이라는 제목으로 1건 보도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경주의 한 장애인시설 보조금 횡령에 대한 판결이라 관심 두지 못했을 뿐이라는 변명할 수 있을까? 뉴스 가치가 없는 논평이었다고 일축할 수 있을까? 두 성명이 담은 이슈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성명에는 많은 고민 끝에 자신의 생업이 걸린 일터의 문제점을 제보한 뒤 고통받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 입소 시설의 인권유린과 비리를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와 공익제보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충분히 뉴스 가치가 있는 성명이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이 사안을 보도하지 않았다.
공투위는 성명에서 "문제 해결에 나선 이유로 당장의 사회복지직을 박탈당할 수준의 형량이 선고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공익제보자가 놓인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번 혜강행복한집 항소심 판결은 사회복지법인과 시설 운영진의 인권유린과 부정부패에 책임을 물은 동시에, 공익제보에 나선 자는 어떠한 사회적 보호망도 없이 자신의 생계와 일상에 심각한 타격을 감수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호루라기 재단도 "공익제보자가 사회정의를 위해 용기를 내 내부 비리를 고발한 것에 대한 대가가 그의 가정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라면 과연 누가 공익을 위해 제보하려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설령 본인이 관련되어 있는 부패 비리 건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내부고발하면 정상이 충분히 참작되어야 한다. 공익제보자까지 엄벌에 처한 이번 판결은 잠재적 공익제보자들에게 '공익제보를 하지 말라'는 경고가 될 수 있다. 이런 잘못된 경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법원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관심과 극단적 무관심
김학의 출국금지 제보자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혜강행복한집 공익제보자에 대한 극단적 무관심은 우리 언론의 편향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언론과 공익제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사회의 비리를 고발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언론, '단독'과 '특종'을 찾아 헤매는 언론은 그 누구보다 공익제보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사회를 흔든 많은 이슈는 공익제보자들의 용기 있는 신고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앞서서 용기 있게 호루라기를 불어준 공익제보자들은 정작 제보 이후 인생이 흔들리는 수준의 고통을 경험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거에는 투옥되기도 했고, 지금도 자신이 속해 있던 조직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면서 생계를 잃는 경우가 많다. 공범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언론은 이들이 고발한 사안의 가치를 판단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보도할 책무가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익제보자들이 인사상 불이익, 소송, 왕따,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고충은 없는지 이를 개선하도록 촉구하고 이런 정보를 국민에게 전할 의무도 있다. 그게 언론이 그렇게 주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주는 실질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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