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에 '떡상'한 주식.. 그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한 이코노미스트의 말에 의하면 주식투자는 물 위에 떠 있는 게임이라고 한다. 물 위에 잘만 떠 있으면 언젠간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런데 대부분이 더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내다 무리하여 중간에 빠진다고. 주식 투자와 관련한 내 처절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말>
[남희한 기자]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가 시작되자 대한민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들썩임은 주식 시장도 요동치게 만들었다.
탄핵 사유에 대해 하나씩 짚어 나갈 때마다 관련주들이 고장 난 온도계처럼 움직였다. 오르락내리락. 도통 방향을 잡지 못했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언론 자유의 침해 부분에서 증거 부족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좀 전까지 스멀스멀 오르던 차기 대선 주자와 관련된 테마주가 -10%~-20% 급락했고 이와 반대로 박근혜 관련주로 분류된 종목들은 그대로 상한가로 직행했다(주식계에서는 이를 '떡상'이라 부르더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최순실의 국정 개입에 대한 판결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 반전했다. 사람들의 탄성이 멈추고 끄덕임이 이어졌다. 그에 맞춰 어느새 해당 종목들이 정반대의 위치에 와 있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판결과 주가의 급등락. 이런 롤러코스터는 처음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말초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희대의 조합, 그리고 마침내...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많은 사람이 박수를 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이 바쁘게 스마트폰 화면을 만지기 시작했다. 이날 자신의 바람을 더 절실하게 만들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파면 관련주에 베팅했었다.
-15.70%~22.09%. 내가 당일 매수했던 관련주의 등락폭이다. 나 역시 나의 바람을 더 절실하게 만들고 싶었는지 수중에 있던 대부분의 돈을 대통령 파면 관련주에 실었다. 당연하게도 탄핵은 만장일치로 가결됐고 다행히 나는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 개인적으로 이래저래 의미가 큰 날이었다. 그리고 이날은 어찌할 수 없었던 떨림과 환희를 얻는 동시에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날이기도 했다.
환희라는 환상 속에서 탄생한 돈키호테
단 몇 초 만에 -500만 원의 평가 손실에서 다시 몇 초 만에 200만 원의 실현 수익을 얻은 나는, 갑자기 용감해졌다. 이때 겁을 먹었어야 했는데, 자이로드롭을 경험한 누군가에겐 바이킹이 우스워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만만해 보였다.
▲ 테마계의 돈키호테 납시오~ 아픔을 잊고 달려드는 돈키호테 개미. 그게 나였지... |
ⓒ 남희한 |
처음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대부분의 테마는 나름의 흐름이란 것이 있어, 마치 파도타기하듯 출렁거리는 파도를 잘만 타 넘으면 즐거울 수 있었다. 몇몇 종목에서 당시엔 소소하게 느껴졌던 5%~10%의 수익이 지속됐다.
근질근질했다. 수익률에 비해 수익금이 미미했다. 너무 적게 투자한 것 같았다.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치솟는 불기둥에 돈을 들이부었다. 역시. 땔감이 충만하니 불길은 강해졌고 그 열기에 나는 흡족했다.
하지만 근거 없는 테마는 언젠간 저물게 되어 있는 법. 테마의 열기가 식기 시작하자 이내 수익이 손실로 변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손실이 불어났다. 어쩜 그리도 쉽게 내려가던지... 파도를 즐기려 서 있던 판이 서핑 보드인 줄 알았는데 골판지였다. 살려달라고 외쳐야 했지만, 있는 힘껏 해안가로 나왔어야 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주위에 널려 있는 다른 골판지에 손을 뻗었다. 돌아가기엔 해안가가 너무 멀었고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기에.
손실이 커질수록 현실감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뭔가 사이버머니를 잃는 듯한 느낌이랄까. 눈앞의 숫자가 심하게 무감각해졌다. 멈출 수 없었다. 환상 속에 사는 돈키호테답게 그냥 풍차를 향해 달려들 수밖에.
돈키호테의 몰락
테마의 급격한 소멸로 인해 -800만 원의 손실이 "추가로" 찍히던 날, 나는 이성을 잃었다. 이런저런 생각할 여가도 없이 손이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어느새 급등 중인 'OO전자'를 매수하고 있었다. 일부 종목을 손절하여 만든 1000만 원으로 이뤄진 매매. 당시 몇 주째 급등 중인 종목으로 어서 빨리 손실을 메꾸고자 했던 자동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내 손실은 -900만 원으로 늘어났다. 'OO전자' 역시 절묘한 타이밍에 -10% 급락을 한 거다.
그제야 계좌가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돈을 넣었지?', '미쳤나?'
이날은 우리 팀이 벚꽃 가득한 공원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아름다운 벚꽃 세상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모두가 꽃이 되던 날. 그 환한 꽃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내가 진 짐을 어렵사리 떠받치고 있었다. 그렇게 환한 빛도 짙은 어둠을 밝혀 주진 못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기간, 2000만 원이라는 손실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몇 주 동안 오히려 무덤덤할 정도였다. 200만 원 수익에 기고만장했던 주식 초보는 그렇게 만신창이가 됐다. 이후, 반도체 대세 상승기(2017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로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에도 내 계좌는 내내 손실을 기록했다. 이차전지니 반도체니 바이오니 하는 종목이 신고가로 역사를 써나가는 동안, 손실을 빨리 만회하고자 테마주 일색이었던 내 계좌도 손실의 역사를 써"내려"갔으니까. 그렇게 한 방을 노린 종목들은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차근차근 무너져 내렸다
상대적 박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 오르는데 내 것만 내려갈 때의 기분은 모두가 즐거운 파티에서 혼자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말 치명적인 문제는 금전적 손실과 소외감이 아니었다. 돈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으로 인한 보다 크고 무거운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일상의 망가짐이다.
떨어진 노동 의욕과 기회 비용에 대한 아쉬움. 이것의 파괴력은 상당했다. 스쳐지나갔지만 언제나 반가웠던 월급이 너무 왜소해 보였고 사람들과 기분 좋게 떠들다가도 뜬금없이 떠오르는 막대한 손실에 급격히 우울해지곤 했다. 외식 한 번 하고 싶어 하던 아내에게 절약 운운했던 일이,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을 10만 원으로 할지 20만 원으로 할지 고민하던 일이 사무치게 아팠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랬던 걸까.
▲ 어쩌면 고마운?아픔인지도?모르겠다. |
ⓒ pixabay |
잘해보려고 했다는 말만으로는 그 후회와 아픔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무책임한 행동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화끈한 것이 좋았다. 그래서 화끈하게 한 번 놀아봤다. 따뜻해서 좋다고 첨벙 대며 놀던 나는 그렇게 서서히 끊어 오르는 물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익어 버렸다. 비커 속 개구리, 아니 개미가 바로 나였다. 누구보다 위기 감지 능력이 뛰어나야 할 개미가 그렇게도 태평하고 무감각했다.
테마주. 해본 입장에선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다. 철저히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사람으로서 이게 참 어렵다. 감정이 섞이고 상상력을 통해 희망과 공포가 가미되면 기계적 대응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이걸 하지 않는 게 굉장히 어렵다. 눈앞의 사탕을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주식 초보의 입장에서 테마주는 들어가서 맛있게 먹고 나오면 되는 맛난 음식이 천지에 깔려 있는 놀이터처럼 보인다. 그래서 절대 말릴 수 없다.
달콤한 맛을 본 주식 초보는 말할 것도 없다. 그 맛의 황홀함에 취한 주식 초보를 본 주식 초보는 물론이며, 누군가의 황홀함을 옆에서 엿들은 주식 초보도 솔깃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 위험과 중독성을 경고해도 절대 가 닿지 못한다. 그래서 애초에 절대 하지 말라는 얘기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열이면 아홉은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감당 가능한 수준에 대한 판단이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정신력이 유지된다면 그게 적성이거나 무리하지 않는 자제력이 있기 때문일테다. 경험상 나는 아니었다. 과하게 무리했고, 정신력이 무너졌고, 생활이 무기력해졌다.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급등락 하는 차트를 보면서 한없이 작아졌다. 겪어보면 안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힘겹게 힘겹게 등을 돌렸다. 모든 경험이 소중함에도 결코 누구에게도 권할 수 없는 경험, 그런 경험을 참 길게도 이어갔다.
이후에도 후회와 반성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나는 원래 느린 사람이란 걸, 주식을 대할 때면 자주 잊게 된다. 그래서 조금씩 바꿨다. 템포를 늦추고 모든 자극과 반응을 생생하게 맛보고 곱씹었다. 그리고 유쾌함과 찜찜함에 경로를 조금씩 수정했다. 내겐 그게 맞았다. 정치인들의 소식에 여전히 속이 쓰리다. 맞지 않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게 해줘서, 어쩌면 고마운 아픔인지도 모르겠다.
물 위에 떠 있기로 했다면
중요한 것은 물 위에 떠 있기로 했다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다. 버티는 데 자책과 자기 비하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힘만 더 빠진다. 하마터면 그만둘 뻔했다. 혹시 누군가 나와 같이 속상해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말해 주고 싶다. 속상함은 잘하고픈 마음이니까, 그 마음으로 다시 잘 버티면 된다고. 어디에나 시행착오는 있기 마련이라고.
금연했다는 것이 흡연했었다는 부끄러움이 아닌 것처럼, 더 이상 테마주(정확히는 급등락하는 종목)에 휘둘리지 않는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려 한다. 하~ 이렇게 합리화하는 데 참 오래도 걸렸다.
가치투자든 장타든 단타든 묻지 마 투자든, 잘해보려는 모두의 최선이 자신에게 맞는 길로 인도하기를 바라본다. '한 달에 200% 수익 보장', '극소수만 아는 특급 비기' 뿐 아니라 '기업과의 동업', '가치에 투자하라'는 귀가 솔깃하고 그럴싸한 투자에 막연히 현혹되지 말길. 부디 모두가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과 신발에 맞는 길을 '큰 무리 없이'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그 길이 부디 꽃길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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