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끝난 트럼프 탄핵 가능" 美하원이 들고온 1876년 사례

이유정 2021. 2.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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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탄핵 심판(2월 9일)을 앞두고 미 의회 대표와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의 변론 요지가 공개되면서 치열한 법리 공방의 막이 올랐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양측의 준비 서면과 답변서 전문을 각각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양측 서면에 따르면 탄핵 심판의 최대 쟁점은 임기가 끝난 대통령의 탄핵 재판을 할 수 있느냐 여부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13일 탄핵안을 의결한 하원은 “미국 헌법의 역사, 과거 판례를 검토할 때 퇴임한 대통령도 탄핵의 대상이 되며, 트럼프의 공직 출마를 금지해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트럼프 측은 “재판권이 없으므로 각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집권 여당이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법관의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임기를 마친 공직자에 대한 탄핵이 가능하냐를 놓고 법적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트럼프 탄핵 심판의 핵심 쟁점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정리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이 1월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안을 의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① “퇴임해 의미 없어” vs “탄핵 심판, 대통령 모든 임기 대상”
제이미 라스킨 의원(민주당ㆍ메릴랜드) 등 9명이 대표로 상원에 제출한 80쪽 분량 서면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이유가 조목조목 담겼다. NYT에 따르면 하원은 1월 6일 의회 폭동 사건에 “트럼프 대통령의 각별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탄핵 규정은 상원이 '모든 탄핵'의 (심리)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당연히 대통령의 임기 말인 지난 1월도 포함된다” 강조했다.

미 역사상 물러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원은 이에 따라 미 헌법이 참조한 영국의 관습 헌법, 과거 판례 등을 총동원해 '퇴직 후 대통령'도 탄핵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원에 따르면 과거 네 차례의 전직 공직자에 대한 탄핵 사례가 있었고, 탄핵이 부결된 경우에도 일관되게 상원의 재판권 자체는 인정됐다. 반역 혐의를 받은 윌리엄 블런트 전 상원의원(1797년), 리베이트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윌리엄 벨크냅 전쟁부 장관(1876년), 소송 당사자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로버트 아치볼드 전 순회법원판사(1912년), 부패 혐의로 탄핵당한 조지 잉글리시 지방판사(1926년) 등의 전례가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벨크냅 전 장관은 의회의 탄핵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을 설득해 재빨리 사임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당시 상원은 논의 끝에 37대 29로 “사임을 했더라도 탄핵 재판의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하원은 이 같은 검토에 따라 “내란을 선동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전임자들과 비교해도 매우 엄중하며, 이를 외면하는 것은 의회가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 같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퇴임한 대통령은 탄핵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이번 심리는 지체없이 각하돼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미 헌법상 탄핵 규정은 “(대통령은)반역, 뇌물, 또는 다른 중범죄나 잘못 등의 유죄 판단에 의한 탄핵으로써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돼 있는데, 이 구문 자체가 현직일 것을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측은 “명백히 헌법의 구문에 반하기 때문에 탄핵 심판도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상원의 대통령 탄핵 재판은 통상 연방 대법원장(현 존 로버츠 대법관)이 주재하지만, 이번 심리는 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 상원의원이 대행할 예정이다. 트럼프 측은 이것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②“내란 선동” vs “정치적 자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의회 폭동에 앞서 연설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이번 탄핵을 촉발한 사건은 지난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였다. 하원은 이날 시위대가 의회를 습격하기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연설이 내란을 선동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옥같이 싸우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거나 “우리가 이번 대선을 이겼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 한 대목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문제의 연설이 “의회 폭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일반적인 선거제도 보호를 위해 싸우자’는 의미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에 따라 선거 결과가 의심스럽다는 자신의 믿음을 표현한 것뿐”이라며 “미 헌법은 대중적이지 않은 연설이라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미국이 보호하는 자유의 핵심”이라며 “(하원에 의한)정치적 증오심은 미국의 정의를 실현하는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설사 탄핵 재판의 대상이 되더라도, 무죄 취지로 기각돼야 한다”고 덧붙인 배경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합주였던 조지아주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주지사에게 “표를 더 찾아내라”는 압박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번 답변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시인하면서도 “내용이 지나치게 상세해 주지사나 측근들이 불법 녹취를 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의혹의 초점을 유출 쪽으로 돌렸다.


③또 선거 부정 의혹 풍긴 트럼프, 바이든 발목 잡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변호인들은 앞서 “탄핵 심판에서 선거 부정 문제를 앞세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공개된 답변서를 보면 이 문제를 은근히 부각했다. “지난 대선에서 일부 지역 정치인들이나 판사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편리한 핑계로 필요한 입법 절차 없이 선거법과 절차를 변경했다”고 주장하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우편투표 부정 의혹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정치전문매체 더 힐은 이에 대해 트럼프 측이 “선거 부정은 증거 불충분으로 반증이 되지 않은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변호인들은 “앞으로 철저한 청문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향후 공개석상에서 대선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암시를 계속함으로써 조 바이든 신임 행정부를 흔드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반면 하원은 의회 폭동 사건의 감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전략을 쓴다는 계획이다. 하원은 서면 말미에 “트럼프가 이 나라에 입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상원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전복하려는 대통령에 맞서 미국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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