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시골군수가 "이재용 사면" 호소문 쓴 사연

박형수 2021. 2.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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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석 기장군수는 3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이나 삼성과 전혀 인연이 없다. 서민경제 회복을 위해 용기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군수는 지난 1일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호소하는 글을 청와대에 보냈다. [중앙포토]

“나 같은 시골 군수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알 리도 없고, 삼성전자와 인연도 없습니다. 서민경제·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감히 용기를 내 대통령께 읍소한 겁니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송한 오규석(63) 부산 기장군수는 3일 오후 늦게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호소문에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 방역뿐 아니라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 중에는 벌을 받던 장수도 전장에 나가 싸우게 했다”며 “대통령님께서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결단해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썼다. 이어 “기장군은 148만㎡의 부지에 군비 3197억원을 투입해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산업단지’를 조성 중이다. 이곳에 대기업과 강소기업이 입주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공격적 투자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호소문 내용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기장군에 투자 계획을 세웠다가 이 부회장 구속으로 무산된 거냐”는 추측성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다음은 오 군수와의 일문일답.

Q : 직접 쓴 내용인가.
A : “그렇다. 직접 썼고, 직원이 컴퓨터로 타자 작업만 해줬다. 진짜 간곡한 마음이었다.”

Q : 호소문은 어떻게 전달했나.
A : “1일 오전 10시 등기우편으로 청와대 비서실로 보냈고, 이튿날(2일) 도착했다는 우체국 문자를 받았다. 만으로 이틀이 지났지만 청와대에서는 아무 연락 없다. 호소문 관련 기사가 보도된 뒤 지금까지 지인과 군민들에게 격려와 응원 전화가 밀려오고 있다. 대부분 편지 내용에 공감한다는 내용이다.”

Q : 삼성전자와 인연이 있나. 삼성이 기장산단에 투자 유치를 검토했나.
A : “삼성을 포함해 국내 대기업의 투자 유치를 물밑에서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특정 기업과의 사업 진행은 대외비라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Q : 그러면 호소문은 왜 썼나.
A : “어쨌든 대규모 투자 결정은 전문경영인이 내릴 수 없다. 기업의 총수가 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지역경제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 안타까웠다.”

Q : 이 부회장이 사면된다고 해도 기장군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지 않나.
A : “기장군의 현안만을 위해서 호소문을 보낸 게 아니다. 국가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데, 대기업이 활력을 불어 일으켜야 일단 파이팅이 되지 않겠나. 수도권부터라도 경기가 회복되면 점차 지역경제에도 투자를 늘려갈 거란 기대감도 있다.”

Q :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려는 정치적 의도로 ‘사면’ 얘기를 꺼낸 건 아닌가.
A : “절대 아니다. 이건 절박함의 표현이다. 내가 ‘야간 군수실’을 운영하는데, 예전엔 ‘일자리 좀 구해달라’던 민원이 지금은 ‘끼니가 걱정’으로 바뀌었다. 인근 시장과 군수를 만나보면 상황이 다 어렵다. 예전에도 죄 지은 장수를 전쟁터에 내보내 죗값을 치르게 하지 않았나. 이재용 부회장에게 그 기회를 줌으로써 무너진 지역경제를 보살필 수 있게 해주길 대통령께 감히 부탁드린다.”
오 군수는 1995년 무소속으로 민선 1기 기장군수를 지냈다. 이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10년 기장군수 선거에 재출마해 지금까지 내리 3선을 했다.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일반산업단지 현장. [사진 기장군]


앞서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달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바 있다.

손 전 대표는 SNS를 통해 “사면 절차가 까다로우면 우선 가석방을 하고, 아니면 즉각 보석이라도 실시해주길 바란다”면서 “국내 최대 기업이자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의 총수를 가둬 두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한민국 경제 회복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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