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설 방역 대책.. 며느리 표심 얻기?
며느리들 표심이라도 얻으려는 것일까. 정부의 설 연휴 방역 대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1일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설 연휴 때까지로 연장했다. 직계가족이라도 사는 곳이 다르면 5인 이상 모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도 민족 대이동은 어려워졌다. 그때는 자발적이었지만 이번에는 강제적으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당장 ‘남편들’ 사이에서는 묘수를 찾아 전략들이 나온다. 민심의 창구 페이스북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결론은 예상대로 ‘며느리 빼기’다. “보통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들 며느리 손주의 구성인데, 4인이면 며느리를 열외시켜 올해 설에는 정부 지침을 명분으로 며느리들을 설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게 좋을 듯∼.” 경상도 종손인 남자 후배의 전략 역시 며느리 빼기다. 그는 “아내는 빼고 아들만 데리고 고향에 간다. 남동생 가족과도 시차를 두고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차례를 안 지낼 수는 없지 않으냐”라고 했다.
자녀가 2명 이상인 경우 셈법이 복잡해진다. ‘갈라치기’를 해야 할 판이다. 자녀 중 누구를 데려가야 하나.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싶지만 ‘코파라치’(코로나+파파라치)에 걸려 내는 과태료보다는 주변에 알려져 당할 창피가 더 걱정이다. 어딜 가도 찍어야 하는 QR 코드가 감시자가 됐지만 이제는 이웃조차 잠재적 감시자로 만드는 정부가 됐다. 그런 고민을 먼저 헤아린 건 노부모들이다. 지방에 사는 한 퇴직 교수는 이런 글을 올렸다. “설에도 5인 이상 모임 금지. 이걸 지키려 하니 두 아들 내외와 손녀가 설날에 와서는 안 될 거 같다. 모두 공직에 있으니 국법을 어기고 몰래 오라고 할 수도 없다. 재롱떠는 손녀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는데….”
정부는 올 들어 신규 확진자가 300∼400명대로 떨어지자 거리두기 완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다 ‘IM선교회’발 집단감염 여파로 확진자가 증가세로 돌아서자 방역의 고삐를 다시 죄기로 한 것이다. 수긍이 갔던 방역지침의 ‘진정성’에 의심이 든 건 스키장은 심야영업 제한을 완화해 오후 9시 이후에도 운영토록 했기 때문이다. 공연장과 영화관도 좌석 거리두기 규제가 완화돼 부부라면 나란히 앉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설 대책은 고향에 가는 대신에 가족이 스키장 가고, 부부가 영화관에서 나란히 앉아 관람하며 경기를 살리기를 권하는 것 같다.
그런데 스키장은 안전한가. 지금 유럽에선 지난해 겨울 코로나19 진앙지로 지목된 스키장이 시즌을 맞아 개장 준비에 들어가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런 상황에서 스키장 방역 기준을 풀어주니 정부가 힘센 대기업에 약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동네 식당은 여전히 심야영업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013년 기준 2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위다.
반발하면 물러서는 경향도 있다. 대구 헬스장 관장의 안타까운 자살 사건 이후 집단반발이 일어나자 헬스장에 대해선 샤워시설 금지를 풀어준 것이 그런 예이다. 떼쓰면 통한다 싶었나. 대한당구장협회 등 19개 단체는 오후 9시 이후 영업제한을 스키장처럼 풀어 달라며 2일부터 ‘야간 점등 시위’에 돌입했다.
어르신들도 손자 손녀 보고 싶다며 5인 이상 모임 금지의 탄력적 적용을 요구하는 시위라도 벌여야 하나. 하지만 그들에게는 응집할 자본도 조직도 없다. 오히려 자식 걱정하는 마음만 앞선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더 가까이’라고 하지만 떨어져 있으면 마음은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안다. 성장주의에 함몰된 정부의 방역 대책으로 명절 때만 유지되던 전통적 대가족 문화는 빠르게 해체될 거 같다. 정부 탓인데 화살이 ‘혜택’을 본다고 생각하는 며느리에게 돌아갈까 걱정된다.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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