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무나 쓸 수 없는 기적의 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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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부모님의 계좌에 연결돼 있던 자동이체 항목을 취업 후 모두 내 계좌로 인계하면서 실감했다.
하지만 암 가족력이 있는 부모님이 노심초사하며 준비해주신 보험들을 함부로 깰 수는 없었다.
평소 암보험료 자동이체 출금 알람이 달마다 네다섯 번은 울리던 사람도 해당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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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라운 고정비용은 보험료였다. 30만원이 넘었다. 6개 상품에 가입되어 있었는데, 실비보험과 저축보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암보험이었다. 독립 후 보험부터 깼다고 말하는 사회초년생이 많은 이유가 이해됐다. 하지만 암 가족력이 있는 부모님이 노심초사하며 준비해주신 보험들을 함부로 깰 수는 없었다. 보험료를 두고 투덜거리자 엄마가 내 등짝을 치며 한 말이 뇌리에 박혔다. “이게 없으면 너는 더 좋은 치료 방법을 두고도 많이 고생하는 치료 방법을 선택하게 될거야. 더 빨리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오래 아프게 될지도 몰라.”
암을 치료하는 기술이 발전한다고 모든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치료제는 경제력에 따라 신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뉜다. 1세대 치료제인 화학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높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2세대 표적항암제와 3세대 면역항암제는 대부분 2차 치료부터 건강보험을 적용받는다. 최근 표적항암제 ‘타그리소’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1차 요법 급여화가 기대되고 있지만, 암질환심의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돈이 없는 암 환자는 더 많이 아파야 한다. 1차 치료에서 초기부터 최선의 치료제를 쓰면, 신속히 건강을 되찾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름길은 건강보험 혜택 없이도 치료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환자에게만 열려있다. 평소 암보험료 자동이체 출금 알람이 달마다 네다섯 번은 울리던 사람도 해당할 수 있겠다. 치료제 비용을 부담할 여력이 없는 환자는 최선의 선택을 단념하고 차선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비극이 따로 없다. 경제력과 상관없이 아프기 싫고, 죽기 싫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이런 비극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을 것이다. 국가암등록통계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암을 진단받는 신규 환자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8년에는 24만3837명이 신규 발생해, 전년보다 8290명(3.5%) 늘었다.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환자를 포함한 ‘유병자’ 수치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만여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5130만여명인 점을 고려하면 국민 25명 중 1명은 암유병자인 셈이다.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는 암이 아니라 돈일지 모른다.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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