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인구 위기의 다른 측면
인구 감소는 통치의 위기
주체적 개인의 관점에서는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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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점에서 올해는 한국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연간 기준 주민등록인구가 역사상 최초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등록 인구는 5182만9023명이다. 이는 1년 전보다 2만838명(0.04%) 감소한 숫자이다. 대규모 재해나 전쟁 없이 인구가 이토록 급격하게 줄어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부와 평론가들은 대개 인구 감소를 심각한 문제로 간주한다. “총체적 국가 실패의 산 교과서”라고 부를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 인구가 급격하게 줄면 세금이 줄고, 연금제도 운용이 어려우며, 경제가 성장하기 어렵다. 정부 지출을 감당하기 위하여 세금을 올리거나 빚을 져야 할 것이고, 경제 성장으로 무마할 수 있었던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통치자들은 인구 감소의 정치 경제적 여파를 두려워했다. 고대 중국의 문헌 『국어』(國語)는 말한다. “인구가 감소했다는 게 드러나면, 이웃 나라가 멀리하게 됩니다.”(臨政示少, 諸侯避之)
고대에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람들이 재생산에 실패하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버린다는 의미였다. 동원할 수 있는 인구의 감소는 곧 국력의 약화를 뜻했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부심했다. 『국어』는 말한다. “아들을 낳으면 술 2병과 개 한 마리를 주고, 딸을 낳으면 술 2병과 돼지 한 마리를 주고, 세쌍둥이를 낳으면 유모를 주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례시 기준 인구 100만명 사수가 절박한 경남 창원시는 최근 혁신적인 결혼·출산 장려대책이라며 세 자녀 출산 때 1억원을 빌려주는 ‘결혼 드림론’ 도입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관점이다. “인구”라는 표현에는 통계에 의지해서 통치해야 하는 국가의 관점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인구 감소는 개개인의 “의식적인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 낸 집합적 현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선택하는 존재라지만, 사실 인생에서 진정한 선택은 많지 않다. 자고, 먹고, 배설하는 생리 활동은 엄격한 의미에서 선택이 아니다. 사회가 주입한 욕망을 실현하는 것 역시 진정한 선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겠다는 결심은 좀 더 “주체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낳겠다는 선택은 대개 성욕을 매개로 한다. 그런데 성행위는 얼마나 인간의 주체적 선택일까. 성욕이란 채우기 전에는 사람을 갈급하게 만들었다가, 정작 채우고 나서는 허탈감에 빠지게 하는 요물이 아니던가. 지난 세기 일본의 한 소설은 성행위를 이렇게 묘사한다. “욕망을 채운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육체를 빌린 전혀 별개의 존재 같다. 본래 성이란 개별 육체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 종(種)의 소관 사항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속임수에다가 야성의 사랑이니 뭐니 하는 미사여구를 뻔뻔하게 잘도 갖다 붙였다.”
반면, 피임하는 사람은 숙고하는 사람이다. 충동적으로 성행위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어도 충동적으로 피임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성행위에 비해 피임은 종종 보다 주체적인 선택이다. 피임이 하나의 선택지가 되면서, 재생산도 선택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태어나는 일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태어나 이 세상의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출생자의 의지와 무관하다. 마치 고깃집 불판 위에 올라가는 일이 삼겹살의 동의 여부와 무관한 것처럼. 인간은 “낳음을 당해서” 살아나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 것은 다소 실례이다. 시시포스에게 왜 돌을 굴리느냐고 묻는 것이 실례이듯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시시포스의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다, 돌을 굴리는 일은 운명이고, 운명을 반복하다 보면 별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시포스에게 2세를 낳아 기르겠냐고 묻는 건 사정이 다르다. 그건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시포스는 새삼 자문한다. 과연 이 땅의 삶은 아이에게 권할 만한 것인가. 바로 이 근본 질문을 정부 당국자는 애써 회피한다. 왜일까? 물론, 대답하기 난감해서다. 어린 시절의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질문처럼 인생의 각 국면에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들이 있다. 어른이 되어도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은 계속된다. “다시 태어나도 나와 함께 살 거야?” 난감하다. “꼭 다시 태어나야 할까?”
선생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정부 당국자가 애써 회피한 근본 질문을 학생으로부터 받게 된다. “삶은 살만한 건가요?”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도스토예프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어 보세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두껍다. 보통 학생들은 이 단계에서 포기한다. 그러나 간혹 집요한 학생들이 있다. “읽었는데도 모르겠는데요. 인생은 살만한 건가요?” “살다 보면 사는 게 숙제 같아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숙제의 목적이 뭐죠?” “선생이라고 해서 다 알겠습니까. 술 마실 핑계 찾지 말고, 그냥 의연하게 마시세요.” 이제 술에 취한 학생이 짧은 이메일을 보내온다. “삶의 목적 무엇?” 짧게 답장을 쓴다. “삶에게 물어.”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란 이와 같은 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끝에 내린 주체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한때 그런 선택이 원천 봉쇄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에는 자식이 없으면 안정된 노후를 기대할 수 없고, 친족집단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몰렸으며, 자신의 유한한 삶에 영생의 환상을 부여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그러한 시절에는 자식이 없으리라(無後)는 것은 최대의 저주가 된다.
이제 국가가 과거 친족집단이 하던 역할을 대신 떠맡게 되었다. 전통보다는 개인의 동의 여부가 규범의 기초가 되었다. 자식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성취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인구가 줄어도 세대 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1인 가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후를 자식이 아니라 개인의 저축이나 사회보장제도가 책임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최대의 저주는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 못 할 자식을 많이 두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이제 아이를 낳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출생주의(anti-natalism)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현대의 반출생주의 이론가 데이비드 베너타의 저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가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데이비드 베너타는 태어나지 않았다면 입지 않아도 되었을 심각한 피해를 태어났기에 입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려 든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이 모두 반출생주의자는 아니겠지만, 출산 거부는 점점 더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 되어 간다. 삶의 근본적인 부조리함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택일 수도 있고,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는 선언일 수도 있고, 열악한 삶의 조건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배려일 수도 있고, 자기 인생을 더 자유롭게 누려보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고, 불공정한 사회에서 육아를 하지 않겠다는 거부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인구학자 폴 몰런드가 말했듯이, 소수의 자식에 자원을 집중 투자하여 사회적 경쟁에 대처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각자의 구체적인 동기가 무엇이든, 인구 감소의 상당 부분은 나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의식적 선택의 결과다.
더 엄혹한 시절에도 인구는 이처럼 빠르게 줄지 않았는데, 왜 하필 이 시대에 이토록 빨리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가? 이제 하나의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인구가 줄고 있다. 국가의 관점에서 인구 감소는 문제일지 몰라도, 재생산을 거부하는 개개인에게 인구의 감소는 문제라기보다는 나름대로 문제에 대처한 결과이다.
사람에 따라서, 출산 거부는 삶의 난관에 대한 하나의 주체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한 각성에 이른 인간은 1억을 빌려준다고 해서 낳지 않으려던 애를 갑자기 낳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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