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의 시선] 법무차관이 뭐길래
그때 그 자리 탐하지 않았다면..
이성윤, 차기 법무차관 가나
#어느 차관
뇌물수수 혐의로 수감 중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불법 긴급 출국금지의 피해자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아린 기억이 떠오른다. 대전고검장이던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첫 인사에서 법무차관으로 영전(2013년 3월 15일 금요일 발령)했다. 그게 신호탄이 됐는지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 폭탄이 작렬했다. 임명 사흘 뒤 월요일(18일), 정부과천청사 집무실로 첫 출근한 그를 찾아갔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얬다. 물어볼 게 많았지만 혼비백산한 표정만 담아 그냥 나왔다. 사흘 뒤 그는 전격 사퇴했다.
‘6일 차관’ 사태 직전, 동영상 존재를 제보받고 그에게 전화로 세 번 물었다. “윤중천을 아느냐?” 모른다고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두드렸다. 대답은 같았다. 노파심에 첨언했다. “그분이 인사 때 영전하면 큰 사달이 날 수 있으니 챙겨보시라”고. 그 말이 씨가 됐다. 출세가도를 달리다 ‘성접대 검사’로 추락했다. 허물이 만천하에 공개될 위기가 닥쳤는데 그는 왜 차관직을 뿌리치지 못했던 걸까. 권력에 눈이 멀어 설마, 설마 하다가 고꾸라진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지며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 권력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든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이언 로버트슨, 『승자의 뇌』)
#지금 차관
권력 추구는 진보라고 뒤지지 않는다. 민변 출신 이용구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초 졸지에 차관에 발탁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 개최를 목전에 두고 고기영 전 차관이 절차적 위법성을 지적하며 사표를 내자 사표 수리 하루 만에 대타로 투입됐다. 윤 총장 징계가 그만큼 시급했다는 의미다. 급조된 징계위가 ‘정직 2개월 징계’ 결정을 내렸으나 법원은 징계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순식간에 이용구 카드는 악몽으로 변했다. 차관 임명 한 달 전 야간에 만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드러나면서다. 현직 차관이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의 피의자로 변신하는 건 국내에서만 연출되는 독특한 경험이다.
경찰은 내부 매뉴얼이라도 있는지 ‘유권무죄 무권유죄’ 방식으로 처리했다. 택시기사만 조사한 뒤 눈을 질끈 감고 6일 만에 내사종결했다. 너무나도 경찰스러운 ‘권력 봐주기’였다. 실세 법무부 법무실장, 공수처장 후보 1순위 거론 친정부 인사에 대한 형사사법적 특별대우 시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차관 발탁은 맹독이 됐다. 만약 법무차관직을 고사했다면 진실은 아직 묻혀 있었을지 모른다.
“공감과 나눔을 통해 권력을 얻고 유지했지만 권력을 자각하면서 탐욕스럽고 오만하고 공격적이 됐다.”(대커 켈트너, 『권력의 역설』)
#다음 차관
검찰사상 보직 경력이 가장 화려한 이는 김두희 전 장관이다. 검찰 내 빅3인 대검 중수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법무차관, 대검 차장, 검찰총장, 법무장관을 섭렵했다. 그가 밟은 경로가 검찰 보직 서열로 정립됐을 정도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불과 2년여 만에 빅3(중수부장 후신 격인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포함)를 다 거친 검사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현 정부의 ‘검찰 황태자’라 할 만하다.
안타깝게도 주 업무는 사법시험 동기인 ‘우리 윤 총장’의 ‘산 권력’ 수사 방해다. 이른바 ‘검언유착’, 김학의 불법 출금, 최강욱 기소 사건 등의 고비마다 등장해 정의를 지체시키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거악 척결 수사를 독려하고 외풍을 막아줘야 할 전국 최대 검찰청의 수장이 할 일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입장이 정반대로 갈린다. 청와대와 박범계 법무장관은 곧 있을 검사장급 인사에서 이 지검장을 현 위치에 두고 싶어할 것이다. “여권으로선 장관 인사만큼이나 이 지검장 거취가 중요하다. 공수처가 본격 가동되기까지 2개월 남짓, 윤 총장의 속도전을 온몸으로 막을 적임자가 또 누가 있겠느냐는 점에서다.”(검찰국장 출신 변호사)
그러나 이 지검장은 교체하는 게 맞다. 검찰총장과 척진 서울중앙지검장을 그대로 두고 검찰개혁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검찰의 내부 분열을 방치하는 것은 정권 불편한 수사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이 지검장을 영전시키면서도 지금처럼 일하게 하려면 어떤 자리가 적절할까. 장관 옆 법무차관직 아닐까. 이 경우 피의자 이용구 차관의 거취가 변수다. 유독 사달이 많았던 차관직 흑역사는 언제 끝날까.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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