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베테랑의 품격
‘You’ll Never Walk Alone’은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리버풀을 상징하는 응원가다. 약칭 YNWA로 불리는데, 응원가는 모름지기 빠르고 힘이 넘쳐야 한다는 통념을 깬다. 느린 데다 구슬픈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선수들은 수만 명의 서포터가 목놓아 부르는 이 노래에 용기와 힘을 얻는다. ‘힘든 순간에도 계속 나아가라. 당신을 홀로 걷게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주는 묵직한 울림 덕분이다.
‘폭풍 속을 홀로 걸어도/고개를 당당히 들고/어둠을 두려워 말라/그 폭풍 끝나면/금빛 하늘 펼쳐지고/종달새의 달콤한 은빛노래 들려올 테니’
이 노래는 원래 미국 뮤지컬(회전목마) 의 삽입곡이지만 영국 내 여러 가수들이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그중에서도 1960년대 리버풀 출신의 밴드 ‘게리 & 페이스메이커’가 리메이크한 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리버풀이 응원가로 채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영국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고인이 된 위대한 노병(老兵)을 추모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 가수인 마이클 볼은 지난해 4월 100번째 생일은 맞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톰 무어 경과 함께 이 노래를 불러 발매했다. 무어 경이 영국인들에게 선사한 감동을 YNWA의 노랫말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어 경과 이 노래는 궁합이 딱 맞아 떨어진다. 무어 경은 이 노래처럼 느리지만 진한 감동으로 영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다.
무어 경은 지난해 4월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위해 위대한 도전을 펼쳤다. 1000파운드(150만원) 모금을 목표로 보행 보조기에 의존해 집 뒤 25m 길이의 정원을 100바퀴 걸었다. 피부암 투병과 엉덩이 골절로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그의 도전에 영국 전역에서 150만명이 기부에 동참했고, 모금액은 3890만 파운드(596억원)에 이르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고, 국방부는 대위로 전역한 그를 명예 대령에 임명했다.
무어 경은 지난 2일(현지시간) 코로나19 치료 중 숨을 거뒀다. 여왕은 “고인이 나라 전체와 전 세계에 제공한 영감을 인정한다”고 애도했다.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는 조기를 걸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장주영 EYE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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