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에 6.3km, 시민 2백명과 함께 걸은 김진숙의 희망뚜벅이

김종훈 2021. 2. 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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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복직 요구하며 30일째 걷기, 7일 청와대 도착.. "문 정부, '최선 다한다' 말 뿐"

[김종훈, 유성호 기자]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입춘인 3일, '희망뚜벅이' 30일차를 맞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이날 김 지도위원은 경기도 평택시 진위역을 출발한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6.3km 떨어진 경기도 오산시 수청공원에 도달했다. 참고로 성인 남성이 평균 보폭 70cm기준으로 1시간을 걸었을 때 약 4km 정도 이동이 가능하다.

- 왜 이렇게 걸음이 빠르냐.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쁘다. 걸음을 빨리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청와대 앞에선 김 지도위원의 쾌유와 복직을 바라며 송경동 시인과 정홍형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 수석부지부장,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 등이 이날 기준으로 44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30일, 40일 동안 단식을 진행했던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급격한 건강악화로 병원에 긴급 이송된 바 있다.

그러나 김 지도위원은 이날 걷는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걷기 위해 전국에서 20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김 지도위원은 "함께 걷는 대부분이 해고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면서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권의 노동정책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나 때문에 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들 자기 아픔이 있고 자기가 내고 싶은 목소리가 있어서 몸자보까지 직접 만들어온 거 아니겠느냐. 어쩌면 이 현장이 '노동을 존중한다'라고 밝힌 이 정권의 실체가 아닌가 싶다."

전날인 2일 오후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청와대 앞 단식농성장을 찾아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28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구체적 해법을 찾아보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까지 김 지도위원은 정부로부터 확답을 듣지 못한 채 푸른색 한진중공업 작업복 차림에 파란색 목도리를 두르고 분주히 걸음만 재촉했다. 평택에서 오산, 오산에서 화성으로 가는 길목마다 경찰은 '감염병 예방'을 이유로 인도로 걷는 행진단의 걸음을 막았다. 

김 지도위원이 "국가인권위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총리, 여당대표, 경사노위 위원장 모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하지만 정해진 결과가 없다"면서 "이는 곧 그들이 무능하거나 립서비스만 했다는 의미 아니겠나. 이 정권에 대해 기다리고 기대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안타깝다"라고 평가한 이유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한진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회사 매각만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 김진숙 "문재인 정권은 왜 계속 '최선 다한다'는 말만 하나?" ⓒ 유성호

 
이날 김진숙 희망뚜벅이 행진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시민 정지현씨도 함께 했다.정씨는 <오마이뉴스>를 만나 "김 지도위원의 얼굴이 너무 수척해 보이더라" 면서 그를 향한 걱정부터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나 혼자 잘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은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 자체로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81년 김진숙은 대한민국 최초로 조선소 여성 용접공 출신이 된다. 그러나 불과 5년 뒤인 1986년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으로부터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당시 스물여섯 나이에 노조 대의원이 된 그는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전단을 배포했다. 한진중공업은 김진숙이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직업훈련소로 발령을 냈다. 그는 이를 거부했고 회사는 해고 통보를 했다. 당시 경찰은 김진숙을 검은색 보자기에 씌운 채 대공분실로 끌고 가 고문을 했다. 

이에 대해 김 지도위원은 자신의 책 <소금꽃나무>에 "벽도 빨갛고 천장도 빨갛고 욕조 변기 세면기가 다 빨간 방에서 나를 빙 둘러선 사내들의 눈빛마저 붉은 이곳에서 시커먼 보자기에 덮여 싸인 채 끌려왔다. 그곳에서 생사조차 몰랐던 삼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면서 "(고문을 한) 저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인간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그 몸서리쳐지는 사실이,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온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절망이었다"라고 고백했다. 

당시 김진숙을 끌고간 경찰은 김 지도위원의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빨갱이로 몰았다. 이후 김 지도위원은 해고 36년의 기간 동안 대공분실에 세 번 끌려가고, 두 번의 징역살이를 하며 수배생활 5년을 하는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김 지도위원은 이날 행진 중 밝은 표정으로 "함께 걷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면서 "(2011년) 크레인 농성 때도 그랬지만 계속 빚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걸으니 희망도 생기는 것 같고 기분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직하는 그날까지 웃으면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 지도위원의 희망뚜벅이 걸음에는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울산 대우버스(자일대우상용차) 해고노동자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각자 만든 자보를 몸에 걸친 채 함께 했다. 

한편 암 투병 중인 김 지도위원은 항암 치료도 중단한 채,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뚜벅이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1일차인 4일은 병점역, 32일차인 5일은 수원역, 33일차인 6일은 인덕원역, 희망뚜벅이 마지막날인 7일은 흑석역을 출발해 최종목적지인 청와대에 닿을 예정이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영화 <광주비디오:사라진4시간> 연출한 이조훈 감독(맨 오른쪽)이 3일 경기도 오산 수청근린공원에서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희망 뚜벅이’ 30일차 도보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을 위해 자비로 마련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 유성호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오산 수청근린공원에서 도보행진을 진행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제지하고 있다.
ⓒ 유성호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으로 도보행진 도중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을 경찰이 가로막자 바닥에 앉아 허탈해하고 있다.
ⓒ 유성호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철도노조 조합원이 3일 경기도 화성 병점역에서 김 지도위원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며 복직을 기원하고 있다.
ⓒ 유성호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한국게이츠, 대우버스 노동자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복직을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복직을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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