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소리마저 삼켜버린 순백의 설국
전남 장성군은 2015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컬러마케팅 기법을 도입, ‘옐로우시티 장성’을 브랜드화했다. 장성을 가로지르는 황룡강에 살았던 황룡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노란색은 부유함과 희망, 그리고 행복을 상징한다. 이제 장성이라고 하면 노란색이 떠오를 정도다. ‘노란 도시’가 겨울철 눈이 내리면 ‘하얀 나라’로 다가온다. 설경 명소를 찾는 발길이 이어진다.
장성의 대표적인 경치는 북하면에 자리한 백암산(해발 741m)이다. 장성과 전북 정읍·순창 등의 경계를 이루며 산세와 풍광, 생태계, 역사에서 훨씬 넉넉함을 안고 있는 산이다. 가을철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겨울에는 하얀 설국으로 변모한다. 이곳에 눈꽃이 피면 단풍철 못지않게 사진작가들이 찾아온다.
백양사로 접어들면 1.5㎞의 진입로가 하얀 눈꽃 터널을 이룬다. 끝이 살짝 닿을 듯 말 듯 늘어선 눈꽃 나뭇가지는 환상적이다. 눈꽃 터널 끝에는 마치 별천지가 있을 것 같은 신비감이 감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장 걷고 싶은 길’ 등에 선정될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소담스러운 눈꽃을 길동무 삼아 가다 보면 쌍계루(雙溪樓)를 만난다. 두 계곡이 만나 이룬 작은 연못과 눈을 이불 삼아 덮어쓴 단풍나무, 그리고 단아한 쌍계루와 웅장한 자태의 백학봉(白鶴峯·651m)이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놓고 있다. ‘대한 8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풍경의 중심에 자리한 ‘쌍계루’는 예부터 이름난 문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고려 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에 이어 조선 시대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등 이름난 학자와 문인이 아름다운 풍광을 시와 글로 남겼다.
백학봉은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하얀 바위산이다. 연못 앞에 서면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백학봉의 바위봉우리가 개울물에 비친다. 백암산은 ‘희귀식물의 보고’로도 알려져 있다. 백양사 뒤쪽에 자리잡은 비자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53호다. 키가 8~10m,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노거수 5000여 그루가 무리지어 있다. 이곳에서 백학봉을 거쳐 상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백양사 인근 장성호는 필수 방문 코스다. ‘장성호 수변 길’을 따라 적요한 호수를 돌아보는 맛이 각별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현재 다가갈 수 없다.
서삼면 전북 고창과의 경계에 축령산이 있다. 이곳은 편백숲으로 유명하다. ‘조림왕’ 춘원 임종국(1915∼1987) 선생이 일군 것이다. 임 선생은 반평생 나무를 심고 숲과 함께 살다가 숲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그가 조림사업을 시작한 때는 6·25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전인 1956년. 일제강점기 때 소규모로 조성된 삼나무와 편백숲이 그의 손에 의해 덩치를 키워 20여년 만에 여의도의 두 배에 가까운 면적으로 변모했다. 푸름을 자랑하는 길쭉한 원뿔형 나무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도열해 이국적인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타이가 지역의 상록수림을 연상케 한다.
편백은 소나무보다 53% 더 많은 피톤치드를 발산한다. 나무를 심기 위해 만들었던 임도는 건강 산책로로 변모했다. 수직의 숲에 들어서면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장 건강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아토피성 피부염, 갱년기 장애, 호흡기 질환 등이 개선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황룡의 전설을 품은 황룡면에 청백리의 대명사 박수량(1491~1554)의 묘가 있다. 예조참판,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지내며 38년간 공직 생활을 했지만 사후에 장례비가 없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소나무 숲으로 소박하게 둘러싸인 묘 앞에 백비(白碑)가 서 있다. 박수량의 뜻을 기려 아무런 공적을 적지 않은 비석이다. 청렴을 마음에 새기려는 전국 공무원의 체험 교육장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겨울철에만 주로 찾는 곳도 있다. 삼서면 보생리의 ‘외딴집’이다. 이 집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새하얗게 눈 덮인 들판 위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한 채의 집이 동화 속 장면과도 같다. 두툼한 솜이불 같은 눈 위 키 작은 나무엔 잔설이 반짝인다. 소리마저 삼켜버린 순백의 설원 위로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으면 금상첨화다. 아늑하고 정겨운 풍경은 어릴 때 살던 고향집을 떠올리게 한다.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마당으로 나올 것만 같다. 그 눈밭을 도화지 삼아 발자국으로 그린 그림도 풍경의 한 조각이 된다.
외딴집은 ‘보생리 612-5’ 검색
꿩샤부샤부·두부… 먹거리 푸짐
전남 장성 백양사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1번 국도로 들어와 남쪽으로 9㎞ 달린 뒤 16번 군도를 타고 3㎞쯤 가면 닿는다. 축령산은 고창담양고속도로 장성물류나들목에서 가깝다. 추암리 입구는 '서삼면 추암리 산20번지', 모암리 입구는 '모암리 682번지'로 찾으면 된다. '외딴집'은 내비게이션에 보생보건진료소 또는 '보생리 612-5'로 검색하면 된다.
장성의 여행지 가운데 실외 명소는 대부분 별문제 없이 돌아볼 수 있지만 장성호 출렁다리·시네마테크와 필암서원, 홍길동테마파크 등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필암서원 등 건물 바깥은 접근할 수 있다. 서원 바깥에 노거수 은행나무와 홍살문이 자리하고, 서원의 출입구이자 대표적 건축물인 확연루가 돋보인다.
장성에는 먹거리도 푸짐하다. 읍내에 있는 초야식당은 메기매운탕으로 유명하고, 풍미회관은 한정식을 내놓는다. 단풍두부의 두부전골이나 산골짜기의 꿩샤부샤부도 별미다. 장성 곶감은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장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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