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판사 탄핵..필요하지만 늦었다
입법부의 탄핵은 사법견제기능..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
1.
국회에서 4일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를 표결에 붙입니다.
초유의 일인데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타이밍이라 3일 정치권이 소란스럽습니다.
여야의 주장이 워낙 갈립니다. 여당은 탄핵을 ‘사법개혁’이라 하고, 야당은 ‘판사 길들이기’라 합니다.
여론도 마찬가지. 리얼미터 3일 발표에 따르면 탄핵 찬성44.3% 반대45.4%로 팽팽합니다.
2.
사안이 복잡할 때엔 원칙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법관탄핵은 필요한 제도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입니다. 3권분립은 상호견제로 권력남용을 막자는 취지입니다.
물론 사법부의 독립성, 재판의 독립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서 판사탄핵이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죠.
그러나 판사가 진짜 잘못했으면, 누군가 견제해야죠.
견제할만한 힘을 가진 곳이 국회입니다. 물론 최종판단은 헌법재판소가 합니다.
3.
그렇다면 핵심은‘임성근의 행위는 진짜 탄핵당할만큼 잘못된 것인가’입니다.
임성근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감이 잡힙니다.
임성근은 2015년 중앙지법 수석부장 시절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가토 다쓰야) 재판과정에 간섭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2월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가토는 세월호 사건 당일(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 정윤회(최순실 남편) 만났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를 인정받아 무죄가 됐습니다.
4.
문제의 출발점은 박근혜 청와대였습니다.
정윤회 만난 것이 사실이 아니고, 비록 무죄선고가 불가피하지만 ‘가토의 행위는 잘못됐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나 봅니다.
두번째 문제는 법원행정처였습니다.
청와대의 이런 의중을 직간접으로 전달받은 행정처가 임성근을 통해 담당판사에게 압력을 넣었습니다. 청와대 요청사항을 판결문에 반영하라고.
세번째 문제는 임성근입니다.
행정처의 요구를 담당판사에 전달했을뿐 아니라 판결문을 사전에 보고받고, 확인하고, 행정처에 보고했습니다.
5.
임성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법원의 엄격한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임성근의 행위는‘위헌적’이지만..임성근에게는 이런 행위를 할 직무권한이 없기에 ‘직권남용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형사법정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형법상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그러면서도 임성근의 재판관여는 ‘판사의 재판 독립성을 침해했기에 위헌적’이란 점은 판결문에 명시했습니다.
6.
판결에 따를 경우 ‘위헌’여부는 형사법정에서 다툴 사안이 아니라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다룰 사안인 겁니다.
따라서 국회에서 소추할만한 사안이 됩니다. 같은 판사가 그렇게 판시했을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탄핵소추가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타이밍’입니다.
정치는 타이밍입니다.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7.
문재인 정권은 출범하기도 전부터 사법개혁을 외쳐왔습니다.
2018년 11월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농단판사 탄핵’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전달됐습니다. 민주당이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임성근의 행위를 ‘위헌적’이라고 명시한 선고가 2020년 2월 14일입니다. 여전히 민주당은 침묵했습니다.
진짜 타이밍을 다 넘겼습니다.
8.
최근 법원은 윤석열을 구제해주고, 정경심을 법정구속하고, 친문강경파 최강욱에게 ‘의원직박탈’형을 때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161명 의원이 탄핵을 발의했습니다.
친문들이 공동발의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에게 ‘배신자’라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법개혁보다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탄핵을 주도한 이탄희 민주당의원의 진정성은 믿습니다. 그는 스스로 사법개혁을 위해 판사직을 던지고 나왔고, 시종일관 같은 주장을 해왔으니까요..
9.
임성근은 억울할 겁니다.
사실 청와대나 국회는 늘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관여를 해왔으니까요. 박근혜 시절 법원행정처 청탁창구인 임종헌 차장의 공소장에서 드러났습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지인 아들의 형량을 낮춰달라’고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지금도 현역 중진입니다.
관행에 충실했던 임성근만 왜 탄핵됩니까?
사법개혁은 청와대와 국회 같은 원인제공자들까지 함께 개혁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10.
임성근은 억울하겠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탄핵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까요.
국회에서 소추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선 각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성근이 2월말 임기만료 퇴임하니까요.
물론 헌재에서 ‘임성근의 행위가 위헌이었는지 아닌지’가려보는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법농단의 기준을 정리하는 의미겠죠.
변호사개업을 못하진 않을 겁니다.
〈칼럼니스트〉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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