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호기심, 첫날".. 떠나는 베이조스가 당부한 것들
“방황하라. 호기심을 나침반 삼아라. 오늘도 ‘데이 원(Day 1)’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2일(현지시간) CEO직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직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베이조스는 이날 “올 3분기에 CEO를 앤디 제시에게 넘겨주고 아마존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흥분된다”는 글로 시작되는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베이조스의 메일이 공개된 후 특히 마지막 문단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SNS에서 널리 공유됐다.
“Keep inventing, and don’t despair when at first the idea looks crazy.
Remember to wander. Let curiosity be your compass. It remains Day 1.”
여기서 ‘데이 원’은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갓 창업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입버릇처럼 써왔던 말이다. 2019년 12월 비즈니스인사이더 보도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1997년부터 2018년까지 22년 동안 매년 주주 서한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조스는 자신의 사무실이 위치한 본사 건물에도 ‘데이 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데이 원’은 우리말로 ‘첫날’ 또는 ‘초심’ 정도로 일단 옮길 수 있다. 하지만 베이조스의 경영 철학에서 이 말이 담고 있는 함의를 감안하면 번역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베이조스 본인의 설명과 외신 분석을 종합하면, 갓 창업한 기업은 ‘데이 원’ 상태에서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의사결정이 민첩하고 위험을 과감히 무릅쓰는 등 전반적으로 활기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랬던 기업이 시간이 지나고 점차 규모를 키워가면서 ‘데이 투(Day 2)’ 상태로 이행한다는 게 베이조스의 분석이다.
‘데이 투’인 기업은 의사결정이 더디고 위험을 떠안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데이 원’ 시절의 활력을 잃고 정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이조스의 철학에서 기업은 언제나 ‘데이 원’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데이 투’로 전락해서는 결코 안 된다.
베이조스는 2016년도 아마존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서 “데이 투는 정적이다. 무심함, 괴로움, 고통스러운 쇠퇴로부터 비롯된 결과다. 이는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항상 ‘데이 원’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베이조스는 당시 서한에서 ‘데이 원’ 상태를 유지하는 비법으로 네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첫째, 고객에게 집중할 것. 고객이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아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포착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조스는 “고객은 언제나 아름답고 훌륭하게 불만족한다. 심지어 그들이 우리에게 만족하고 훌륭하다고 평가해줄 때조차 그러하다”며 “고객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더 좋은 것을 요구한다. 고객을 기쁘게 하려는 여러분의 열망은 고객을 위해 더 좋은 것을 발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회비를 지불한 고객에게 무제한 무료 배송을 해주는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을 예로 들었다. 베이조스는 “어떤 고객도 아마존에게 프라임 멤버십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만들고 나서 보니) 고객은 이를 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이런 사례를 더 많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 대체물(proxy)에 저항할 것. 회사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는 관성이 생기는데 이는 전형적인 ‘데이 투’ 현상이다. 결과가 아니라 절차에, 고객의 실제 욕구가 아니라 시장 조사 수치에 의존하는 게 대표적이다. 언제나 본질에 초점을 맞추라는 조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베이조스는 “절차가 훌륭하다면 여러분은 고객에게 봉사할 수 있겠지만 여러분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절차 자체가 걸림돌로 변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조직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일”이라며 “(이 경우) 여러분은 결과물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그저 절차를 올바르게 따랐는지를 살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훌륭한 발명가와 설계자는 그들의 고객을 깊이 이해한다. 그들은 이런 직관을 얻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다”며 “그들은 시장 조사가 제시하는 평균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 대신 수많은 개별 사례들을 연구하고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바깥 동향을 끌어안을 것. 인공지능(AI)과 안면 인식, 드론 등 최신 기술 동향을 발 빠르게 습득해 상용화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드론 배송 서비스인 ‘프라임 에어’, 안면 인식 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편의점 ‘아마존 고’, AI 스피커 ‘알렉사’를 선보인 바 있다.
베이조스는 “만약 여러분이 강력한 동향을 끌어안지 않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바깥 세계는 당신들을 ‘데이 투’로 밀어낼 것”이라며 “(동향에) 저항하는 것은 곧 미래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넷째, 빠른 의사결정. ‘데이 투’ 회사도 훌륭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속도가 느리다. 반면 ‘데이 원’ 회사는 훌륭한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빠른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 방법은 다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포괄적·불가역적 결정을 내리지 말 것’이다. 상황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과거에 내렸던 의사결정이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베이조스는 2015년도 주주 서한에서 “의사결정이 가변적, 가역적이라면 (잘못된) 결과에 그렇게 오래 집착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저 방금 지나쳤던 문을 통해 원점으로 되돌아가면 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전체의 70% 정도를 이해했을 때 결정을 내릴 것’이다.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에 따라 의사결정도 지체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정보가 수집됐다 싶으면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베이조스는 “여러분이 원했던 정보의 70% 정도 수집된다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당신이 90%를 수집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반대하되 저지를 것’이다. 본인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있지만 회사 구성원 사이에서 분명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그들에게 “반대하되 저지르라”고 요구하라는 것이다. 다수의 구성원 사이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려면 상당한 시간 낭비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시간을 아끼려면 일단 실행부터 해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대하되 저지르라’는 말은 상급자가 부하 직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CEO라도 자신의 반대 의견을 일단 접고 실행해보는 경우도 얼마든 가능하다는 게 베이조스의 설명이다.
베이조스는 아마존 산하 ‘아마존 스튜디오’에서 신작 영화를 제작하는 문제를 두고 자신과 직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던 경우를 예로 들었다. 그는 “나는 영화가 재밌을지 확신할 수 없고 제작도 어려우며 계약 조건도 그렇게 좋지 않다. 또 이것 외에 다른 기회가 얼마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었다”며 “하지만 그들은 나와 의견이 달랐고 제작을 진행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나는 ‘반대하지만 저지르겠다. 신작이 우리가 작업했던 영화 중 가장 흥행하기를 기원한다’고 즉각 회신했다”고 말했다.
네 번째는 ‘조직 간 의견 불일치를 즉각 해소할 것’이다. 부서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이들끼리 무수히 많은 논의와 회의가 이뤄지는데 이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게 만든다. 따라서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이를 즉각 경영진 차원으로 올려 해소하라는 것이다.
베이조스는 “이런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통상적인 해결 시나리오는 그저 어느 누가 탈진할 때까지 논쟁하는 것이다. 체력이 더 많은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셈”이라며 “이는 끔찍한 의사결정 절차다. 느린데다 활기도 떨어뜨린다. 차라리 윗선에게 신속하게 (결정을) 맡기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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