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도 베이조스처럼..최고 실적 축포 속 왕관 내려놓다
“27년 전 이 여정을 시작할 때 아마존은 그저 아이디어였다. 이름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마존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 중 하나가 됐다. 그 원동력은 발명이다. 우리는 함께 미친 짓을 했고, 그 미친 짓은 정상(normal)이 됐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57)가 지난 2일(현지시간) 임직원에게 이런 내용의 고별사를 보냈다. 올 3분기에 CEO 자리를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깜짝 퇴진’ 발표다. “아마존이 가장 독창적인 시점에 있는 지금이 가장 적합한 전환의 시기”라고 덧붙였다. 베이조스의 자리는 앤디 제시(53) 아마존웹서비스(AWS) CEO가 물려받는다.
아마존과의 절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사회 의장으로 기업 인수합병(M&A)과 전략 수립, 신사업 확대 등 주요 의사결정에는 참여한다. 아마존 대주주(10.6% 지분 보유)로서 “환경기금과 우주사업회사 블루오리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조스는 2년 전 불륜 등으로 타블로이드 커버를 장식하며 이혼한 뒤 아마존의 일상 업무와 거리를 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다시 복귀했다.
베이조스의 퇴진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보기술(IT) 기업의 리더들이 메인 무대에서 내려서고 있다.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각종 재단과 기금 등을 만들어 사회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회사의 미래 전략과 관련한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행보에 베이조스도 동참한 것이다.
베이조스가 아마존 CEO란 왕관을 내려놓기엔 더없이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날 아마존은 분기 최고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 아마존의 4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44% 늘어난 1225억6000만 달러(136조 6000억원)를 기록했다. 1994년 창업 이후 분기 매출로는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쇼핑 급증에 연말 쇼핑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베이조스가 그저 아이디어 하나를 가지고 자신의 돈 1만 달러로 94년 미국 시애틀 자신의 집 차고에서 시작한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은 세계 최대의 물류 거인이 됐다. 2018년 9월 아마존 시가총액은 1조 달러(약 1115조원)를 돌파했다. 97년 기업공개(IPO)로 주당 18달러에 상장한 주가는 2일 기준 3380달러를 기록하며 시총은 1조7000억 달러(약 1894조원)에 이른다. 포브스에 따르면 베이조스의 순 자산은 2000억 달러(약 223조원)를 넘는다.
베이조스와 아마존이 만든 길은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됐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어떤 물건도 주문해 살 수 있게 됐다. 아마존이 내건 ‘A부터 Z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파는 가게(Everything Store)’란 모토는 세상의 표준이 됐다.
베이조스의 행보는 ‘모든 것의 상점’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2007년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을 내놨고 2013년에는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를 사들였다. 동영상 제공업체인 트위치 인수(2013년)와 식료품 유통업체 홀푸드를 사들이는(2017년) 등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우주사업회사인 블루오리진을 세우고 인공지능(AI)인 알렉사와 인프라 클라우드 컴퓨팅 등 새로운 분야 개척에 앞장서 왔다.
베이조스의 뒤를 이어 아마존이란 거함을 이끌게 된 앤디 제시는 ‘급성장하라’는 아마존의 기업 문화를 이어갈 인물로 꼽힌다. 헝가리계 이민자로 1997년 아마존에 합류한 제시는 90년 하버드대 학부를, 97년에는 하버드 MBA를 졸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제시는 ‘베이조스의 그림자’로 불리며 모든 사업 미팅과 출장에 베이조스와 동행할 정도”라고 보도했다.
2006년 아마존의 클라우드 사업부인 AWS가 설립됐을 때부터 이끌어왔고 이후 자회사로 독립한 뒤 CEO를 맡았다. 현재 아마존이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이 클라우드에서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AWS의 영업이익(35억60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37% 늘었다. 아마존 전체 영업이익의 52%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마존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제시 앞에는 풀어야 할 여러 과제가 있다. 영업 환경은 팍팍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 세계 물류비용의 60%가량이 급등하며 아마존의 운영지출도 40%가량 급등했다. 월마트의 도전도 거세다. 미국 내 최대 소매 체인이 월마트가 내세운 월마트플러스가 아마존 프라임의 대항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빅테크 업체에 대한 의회와 규제 당국의 반독점 조사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 근로자들과의 껄끄러운 문제도 있다. 2016~19년 배달직원의 봉사료를 갈취한 혐의로 연방거래위원회(FTC)와 620만 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하현옥·염지현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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