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성희롱도 참으라고요?" 2차 가해에 무너지는 교권
◇"쌤 가슴 예뻐요" 학생 성희롱 알렸더니…교장 "남색 브래지어 맞나" 2차 가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2일 '학생>교사 성희롱 덮고 2차 가해한 학교 관리자에게 징계 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면서 "학생들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한 학생이 '쌤, 자취하세요? 누구랑 사세요? 아 상상했더니 코피난다'며 말하고 웃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에게선 "쌤은 몸도 예쁘고 가슴..마음도 예쁘지"란 말도 들었다.
청원인은 견디다 못해 "학생들의 성희롱 때문에 힘들다고 학교 교장에게 말했으나 아무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면서 "또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에게 '교권보호위원회'를 신청했다. 그런데 교장은 일 크게 만들지 말라며 교사가 참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교보위를 열지 못하도록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절차대로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근무 중에 세 차례나 교장실로 불러 교보위를 열지 말라고 압박해 결국 교보위를 열지 못했다"면서 "학부모의 사과같지 않은 사과를 받고 끝내라고 학교가 요구했다"고도 했다.
청원인은 이 과정에서 "'예뻐서 그런 거다', '옷을 그렇게 입는 게 문제다', '붙는 청바지를 입지 마라', '요즘 젊은 애들 미투다 뭐다 예민하다', '교사가 참고 넘어가야 한다'라는 발언의 2차 가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소매가 넓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수업했던 날엔 교장으로부터 "반팔 안에 브래지어가 보인다고 학부모에게 전화가 왔다. 남색 브래지어가 맞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청원인은 "성희롱 탓이 제게 오는 게 너무 끔찍해 그 이후로 흠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더 가리고 두꺼운 옷만 입고 다녔고 긴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면서 "트라우마로 정신과에서 상담받고 약도 먹는다. 너무 괴로워 경기도교육청에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있는지 물었지만 연차가 부족해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희롱 사건을 은폐하고 2차 가해한 교장의 공무원 직을 박탈하길 원한다"면서 "정년 퇴임을 앞둔 교장이 앞으로 평생 월 몇백씩 연금 받지 못하길 바라고 성희롱 사건 은폐에 일조한 교감도 징계받기 원한다"고 촉구했다.
해당 청원은 게시된지 하루만인 3일 오후 4시 20분 기준 1만6595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이날 자신의 성희롱 사건을 은폐하고 2차 가해를 한 혐의로 학교 교장과 교감을 교육청 성폭력신고센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교육청은 해당 사건을 이관받아 절차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다.
교사에게 학생들이 폭언·성희롱 등 교권을 침해하는 사례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교사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성희롱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남자애가 좀 그럴 수도 있다' '선생님이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에 너무 충격받았다"면서 "학생을 신고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넘어갔더니 그 학생은 잘 살고 나만 1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B씨도 커뮤니티에 "남학생이 '신혼여행가면 뭐하냐' '수영하고나면 뭐하냐'고 질문했다는 여자친구의 말을 듣고 정말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19년도 교권보호 및 교직상담 활동보고서'를 살펴보면 교총에 교권을 침해당했다며 상담을 신청한 건수가 513건으로 2018년(501건)보다 12건 늘었다. 2008년 249건과 비교하면 교권침해 상담 건수는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중 학생의 교권 침해 상담 건수(87건)는 2018년(70건)보다 24% 급증했다. 작년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를 유형별로 나눠보면 폭언·욕설이 32건, 명예훼손이 24건, 수업 방해가 19건, 폭행이 8건, 성희롱이 4건이었다.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해에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개정이 개정되기도 했다. 개정안에 따라 학생이 교사를 대상으로 폭력·성폭력을 저지르는 등 교육 활동을 침해할 경우 퇴학 같은 강도 높은 처분이 가능해졌다.
다만 초·중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학생이 교사를 상대로 문제를 일으켜도 퇴학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9년 교사를 상대로 한 성범죄 4건 중 2건이 초등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사례였다.
초·중학생의 경우 폭탄 돌리기처럼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 청원인의 사례처럼 교권 침해를 호소하는 교사가 주변 강요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면 가해 학생과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보며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학교 교보위가 열리는 과정도 쉽지 않다. 교권 침해를 당한 교원을 보호하기 위한 위원회지만 청원인처럼 교육 현장에선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꾸준히 실효성이 지적돼 왔다. 시도 교육청 교보위 신고를 통해 형사 처벌도 가능하지만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의 경우 지지부진하게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성재 한국교총 교권강화국장은 "(교사 입장에서) 참 어려운 문제"라면서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어서 아이들을 징계하고 책임을 묻는 것을 언밸런스 한 상황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신고에 소극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국장은 "다만 학교 측이 교사의 신고를 받고도 교보위를 여는 데 있어서 심리적 부담을 주는 등 강요를 했다면 협박이 될 수 있다"면서 "피해 교원이 원한다면 내부 프로세스를 통해 교보위를 개최해야 하는데 (청원인의 주장처럼) 작위에 의해 생략됐다면 2차 피해라고 볼 수 있으며, 지난 문제로도 교보위를 열수 있다"고 설명했다.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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